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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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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처럼 도움이 돼야만 그 세상으로 갈 수 있나요?

발달장애인의 엄마가 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무해한 장애인을 거르고 경증-중증 나누는 구별·차별의 프레임이 아쉽다
등록 2022-07-16 22:50 수정 2022-07-17 14:07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지닌 변호사가 등장하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한 시청자 반응이 뜨겁다. ENA 제공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지닌 변호사가 등장하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한 시청자 반응이 뜨겁다. ENA 제공

‘우영우 신드롬’이 뜨겁다(<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NA, 유인식 연출, 문지원 극본). 자폐성 장애인의 엄마로서 모처럼 마주한 사회적 관심과 발달장애인에 대한 호의적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지만, 무엇보다 나 또한 이 드라마에 몰입해 웃고 울고 있지만, 그러기에 더더욱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우영우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찬란하고 빛나는 캐릭터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 여부를 결정짓는 건 바로 이 드라마에 빠진 시청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으로 하게 될 매 순간의 선택으로 우영우는 정말 의미 있는 캐릭터가 되거나 교묘하게 나쁜 캐릭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애의 무게” 명언에 놓친 논리

드라마 1, 2화는 변호사 우영우의 탄생을 알리는 서사의 시작이었다. 자폐성 장애인이 어떻게 변호사가 될 수 있는지, 변호를 맡을 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이제 우영우가 변호사 명찰을 달고 본격적인 모험을 시작하는 3화로 간다. 작가는 초반부터 승부수를 던졌다. 천재 자폐인을 소재로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중증 자폐인 김정훈을 의뢰인이자 피고인으로 등장시켰다. 세상엔 우영우보다 김정훈이 더 많다는 것을 알렸고 두 사람의 개별성에도 불구하고 우영우와 김정훈 모두 세상으로부터 ‘어차피 장애인’이라는 낙인을 받는 현실을 꼬집었다. 이로 인한 변호사 우영우의 정체성 고민은 4화까지 이어졌다. 7월13일 방영된 5화 이후는 우영우의 성장을 그릴 차례. ‘우당탕탕’ 우영우가 앞으로 마주할 여러 에피소드가 기다려진다.

찬사가 쏟아졌다. 특히 3화에선 발달장애인의 엄마로서 고마운 마음마저 일었다. 그렇고 그런 또 하나의 천재 프레임에서 벗어나 중증장애인을 등장시키며 현실을 담으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함께 시청한 남편이 “아우~ 화난다”고 말한다. “무해함을 증명해야만 받아들여주겠다는 거잖아.”

그랬던가. 극 중 중증 자폐인 김정훈의 엄마로 나온 배우 윤유선에게 감정 이입해 내가 놓친 것은 없는지 다시 한번 시청했다. 이번엔 대사 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히. 그랬더니 보인다. 감성에 휩싸여 놓쳤던 논리가. “그게 우리가 짊어진 이 장애의 무게입니다”라는 드라마 속 명언에 가려져 미처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차별의 프레임이.

3화에서 자폐인이자 변호인으로서 정체성 혼란을 겪은 끝에 사표를 낸 우영우가 4화에 다시 복직한 동기는 ‘나도 도움이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었다. 만약 우영우가 4화에서 맡은 소송(고등학교 친구인 동그라미네 보상금 소송)에서 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영우는 남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자폐인이니 복직하지 않고 그대로 김밥집에 눌러앉았을까. 꼭 남에게 도움이 되는, 다시 말해 어떤 가치(또는 효율성)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비장애인 중심 사회는 그를 공동체 일원으로 받아들여줄 것인가. 게다가 이 생각을 비장애인이 아닌 장애 당사자인 우영우가 스스로 하다니….

우영우를 사회에 유익한 존재로 만들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은 계속 이어졌다. 우영우는 재판 중 정서적 폭력을 저지르는 판사와 검사에 의해 정체성의 압박을 받고 멜트다운(스스로 통제가 안 되고 흥분함) 상태로 들어가지만, 그때도 그는 무해하다. 몸을 만지작거리며 불안해할 뿐 멜트다운 상태에서 자폐인이 흔하게 보이는 소리 한 번을 지르지 않는다.

3화 에피소드에는 다른 자폐인이 등장해 ‘어차피 장애인’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그린다. “무해함을 증명해야만 받아들여주는” 현실. ENA 제공

3화 에피소드에는 다른 자폐인이 등장해 ‘어차피 장애인’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그린다. “무해함을 증명해야만 받아들여주는” 현실. ENA 제공

 

무해함을 위해 모든 부정 요소를 제거하다

아무리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더라도, 아무리 나이가 들면서 발전하고 성장하고 자신의 장애에 적응하더라도, 자폐성 장애 특유의 어떤 ‘자폐끼’(발달장애인의 엄마들끼리 부르는 말, 특유의 어떤 상태를 가리킴)는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불안한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스러운 우영우는 흥분 상태, 불안한 상태일 때조차 귀엽고 사랑스럽고 무엇보다 무해하다.

그렇다면 중증 자폐인인 김정훈은 어떤가. 멜트다운 상태에서 형을 살리기 위해 형의 갈비뼈를 부러뜨릴 정도로 힘 조절을 못했던 김정훈의 엄마는 말한다. 정훈이가 덩치가 커서 사람들이 오해할 뿐 아주 착하다고. 전혀 공격적이지 않다고. 중증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을 불식하기 위해 끼워넣은 한 줄 대사였지만 굳이 그럴 필요 있었을까.

언어로 유창하게 의사소통이 안 되는 중증 발달장애인은 ‘언어’가 아닌 ‘몸’으로 의사소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악의가 없더라도 어떤 상황에서는 충분히 공격적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도 한다. 물론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가 있는 상태에서 가만히 바라보면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단지 말하고 있을 뿐임을 알게 되지만 적어도 단면적으로 봤을 땐 그렇다는 뜻이다. 이게 리얼한 현실이다. 그런데 드라마는 발달장애인의 무해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현실에서 흔하게 보이는 부정적 요소조차 친히 제거해버렸다.

그래. 나쁠 것 없다. 우리 아들 이미지 좋아진다는데 내가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내가 우려하는 건 그 이후다. 사람들이 우영우를 통해 ‘발달장애인은 이렇게 사랑스럽구나. 앞으로 발달장애인을 만나면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야지’라는 장애 인식을 갖게 됐다고 치자.

막상 현실에서 마주치는 발달장애인은 “우우우우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때로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떼쓰며 울고 지하철 문에 머리를 쾅쾅 박기도 한다. 콘텐츠를 통해 습득한 발달장애인의 기존 이미지와 다르다. 무해한데다 유익하기까지 한 우영우에겐 “감동받았어요”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감상평을 올리지만 현실에서 마주치는 진짜 발달장애인에겐 거부감이 든다. 우영우와 다르기 때문이다.

재판 중 멜트다운 상태가 된 우영우는 자폐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ENA 제공

재판 중 멜트다운 상태가 된 우영우는 자폐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ENA 제공

특수교육도 ‘우영우’ 기준

드라마는 판타지다. 드라마에 나오는 실장님은 하나같이 멋진 슈트핏에 조각 같은 얼굴을 하지만 매일 아침 회사에 출근해 만나는 현실의 실장님은 같이 밥 먹고 있는데 바로 앞에서 코를 “흥~” 풀어버리기도 하고 슈트핏은커녕 늘 똥꼬가 바지를 먹고 있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아주 잘 알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왕자님 같은 실장님이 등장해도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판타지는 판타지로 바라본다.

발달장애로 가면 얘기가 다르다. 발달장애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분야다. 기본적으로 정보가 없다. 그러다보니 콘텐츠에서 보이는 일부 발달장애인을 통해 사람들은 ‘정보’를 얻는다. 그 정보가 곧 발달장애인을 대표하는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그 이미지가 너무 부정적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미화될 필요도 없다. 미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현실과의 괴리감은 커지고 그 차이에서 오는 혼란 속에 사람들은 현실이 아닌 판타지를 ‘내 편’으로 인식할 것이다.

기존의 우리 사회가 ‘장애인’ 자체에 낙인찍고 우영우와 김정훈 모두를 이너서클 밖으로 내몰았다면 이제 ‘우영우 신드롬’이 일어난 다음 단계에서는 ‘무해한 장애인’만 공동체 안에 받아들이는 선별 단계에 이를 수 있다. 장애인 안에서도 중증과 경증으로 나뉘어 또 다른 차별의 프레임이 씌워질 가능성이 있다. ‘김정훈의 엄마’이기도 한 나는, 그런 현실이 올까봐 두렵다.

온갖 미덕으로 가득한 예쁜 드라마에 이렇게까지 가혹한 글을 쓰는 건 지금 발달장애계 내부에서 보이는 일련의 흐름이 이 드라마에서도 보였기 때문이다. 바로 ‘엘리트 지상주의’를 말한다. SNS에서 유명한 한 청소년의 질문이 있다. “내신 5등급은 나중에 어떤 인생을 살게 되나요?” 티브이(TV)나 영화나 온라인상에선 공부 잘하는 학생이 좋은 대학을 졸업해 좋은 회사에 취직해 사는 모습만 보여줄 뿐, 내신 5등급 이하는 어떤 삶을 사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게 질문 요지였다.

비장애인 중심 사회의 이런 분위기는 발달장애계에도 흘러 들어왔다. 이제 특수교육은 말 그대로 ‘교육’에 더 큰 비중을 두기 시작했고, 교육에 방해된다고 여겨지는 중증 발달장애인은 ‘분리’나 ‘고립’을 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또 본다. 정책도 마찬가지여서 현 정부가 주력하는 발달장애 관련 정책은 고난도 예술 활동이 가능한 고기능 발달장애인에게 집중돼 있다. 얼마 전 한 기관에 여름방학 프로그램이 있어 등록하려고 살펴봤더니 피아노, 플루트, 회화 등 모두 현 정부 정책과 방향성을 맞춘 프로그램만 가득했다. 우영우라면 얼마든지 이용 가능했을 테지만 어려운 수준의 설명은 이해하지 못해 지시 따르기가 안 되는 김정훈에겐 그림의 떡일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프로그램, 이런 정책, 이런 교육 물론 다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이 모든 방향성이 비장애 중심 사회에서 보이는 ‘엘리트 지상주의’를 고스란히 답습한 건 아닌지 한번쯤 살펴볼 일이다.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 나온 천재 자폐인 이야기가 그 아름다운 미덕에도 불구하고 우려되는 이유다.

드라마의 여러 미덕에도 불구하고 비장애 중심 사회의 ‘엘리트 지상주의’를 드라마에 답습한 건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지하철로 출근하는 우영우의 모습. ENA 제공

드라마의 여러 미덕에도 불구하고 비장애 중심 사회의 ‘엘리트 지상주의’를 드라마에 답습한 건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지하철로 출근하는 우영우의 모습. ENA 제공

우영우의 반향어에 웃음이 났다면

하지만 아직 우영우는 실패하지 않았다. 이 좋은 드라마를 성공하게 하는 건 시청자인 우리 몫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얻은 어떤 감동과 깨달음이 있다면 그것을 배우 박은빈이 연기하는 판타지 속 캐릭터가 아닌 현실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우영우와 김정훈에게 돌려주면 된다. 그러면 드라마는 성공한다.

우영우의 귀여운 반향어를 듣고 웃음이 났다면, 내 아이 반에 있는 자폐 친구가 담임의 말을 따라 할 때 “학업에 방해된다”는 민원을 넣는 게 아니라 우영우에게 보였던 그 미소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으면 된다. 우영우의 신나는 걸음걸이에 내 기분도 덩달아 신났다면 우리 아들이 주말마다 서울 연남동이나 홍익대 일대에서 누가 봐도 신나는 걸음걸이로 날 듯이 뛰어다닐 때 이상하게 쳐다보고 피하는 게 아니라 함께 덩달아 신나면 그만이다. 그럴 수 있는 사회로 변화할 때 이 드라마는 성공할 수 있다. 우영우라는 사랑스러운 자폐인은 역사상 가장 찬란한 캐릭터로 모두의 가슴에 남을 수 있다. 그 여부를 결정하는 건 시청자인 우리의 선택이다.

류승연 작가·<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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