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우리 일상에 각각 다른 첫 얼굴로 찾아왔다. 누군가에게는 문 닫힌 동네 배드민턴장의 모습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배달음식 용기 쓰레기 더미로, 그리고 나에게는 방탄소년단(BTS)의 2020년 월드투어 취소로 찾아왔다.
월드투어는 6개월 동안 전세계 17개 도시에서 37회나 열릴 예정이던, 방탄소년단 데뷔 이래 최대 규모의 투어였다. 당시 내가 팬클럽 선추첨으로 당첨된 서울 콘서트 좌석은 무려 본무대와 돌출무대 사이의 그라운드석이었다. 어느 각도에서 봐도 무대와 가까워서 콘서트 DVD가 발매됐다면 내 뒤통수가 스무 번은 나왔을 거다.
20여 년의 아이돌 덕질 인생에서 가장 좋은 좌석 예매였지만, 콘서트가 취소됐을 때는 덤덤했다. 제1차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감염자 수가 핵분열처럼 늘어나던 시기였다. 이 사상 초유의 상황이 수습되면 콘서트가 열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몰랐다. 지금까지 마스크를 쓴 채 산책하고, 조카들을 만나야 한다는 걸.
월드투어 취소 이후 방탄소년단은 일부 좌석이라도 관객이 입장하는 콘서트를 열기 위해 여러 번 시도했지만, 모두 무산되고 온라인으로만 진행됐다. ‘콘서트 하고 싶다’와 ‘콘서트 가고 싶다’는 코로나19 시대 동안 방탄소년단과 팬들이 서로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이 기간에 방탄소년단 팬덤을 이끈 가장 큰 에너지는 ‘대면 콘서트에서 다시 만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의 대면 콘서트 개최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가장 먼저 폐쇄된 대규모 집합시설 중 가장 큰 대규모 집합시설이 필요하고, 방역 상황이 각각 다른 전세계에서 온 팬들이 긴 시간 동안 밀폐된 공간에서 접촉하는 상황을 전제한다는 걸 알기에 기다림을 받아들였다. 자연히 나는 코로나19 확산 추이와 방탄소년단 콘서트 재개 시점을 연동해서 생각하게 됐다.
일반 대중도 관점은 조금 다르겠지만, 코로나19와 방탄소년단의 활동을 연결해서 생각해왔다고 본다. 방탄소년단은 코로나19 시대와 그 누구보다 가까이 호흡해온 아티스트였다.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힘을 북돋기 위해 발표한 경쾌한 댄스곡 <다이너마이트>(2020), 이 시대를 살아가며 방탄소년단이 체험한 일상의 변화를 음악으로 풀어낸 <라이프 고즈 온>(Life goes on)이 담긴 앨범(2020), 유엔총회장 공연으로 더 잘 알려진 코로나19 시대의 응원가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 2021)를 연속해서 발표했다. 이 노래들은 모두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기록하며 코로나19로 이동이 제약된 시대에, 유일하게 국경과 언어문화적 차이를 서슴없이 넘나드는 방탄소년단의 인기를 증명했다.
2021년 10월에 백신접종 완료, 11월에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작됐다. 내가 가장 회복하고 싶은 일상은 방탄소년단 대면 콘서트에 가는 것이었다. 2년 만의 대면 콘서트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Permission to dance on stage)를 보러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갔다. 최대 수용 인원이 10만여 명인 대형 스타디움의 5층 ‘하나님석’ 표를 겨우 샀다. 코로나19 유전자증폭(PCR) 검사 다섯 번을 감수하고, 영문 백신접종증명서와 KF94 마스크 수십 장을 챙겨서 바다를 건넜다. 4회차 공연의 첫날 공연만 보고 돌아오는 빠듯한 일정이었다.
2021년 11월27일, LA에서 방탄소년단의 코로나19 시대 첫 대면 콘서트가 시작됐다. 오프닝곡은 방탄소년단의 첫 비대면 활동곡이자, 취소된 월드투어의 오프닝곡이기도 한 <온>(ON, 2020)이었다. 감옥을 연상케 하는 무대 세트가 열리고 방탄소년단과 댄서 수십 명이 등장했다. 심장을 두드리는 드럼 비트의 전주가 스타디움을 흔들고, 5만여 개의 팬라이트(응원봉) 아미밤에 방탄소년단의 상징색인 보랏빛이 탁 켜지는 순간, 우주와 우주 사이처럼 까마득했던 지난 2년의 시간이 단숨에 연결돼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소리 질러! 마침내 방탄소년단이 공식적으로 돌아왔습니다!”(Make some noise! Finally BTS is officially back!) 리더 RM의 외침을 시작으로 콘서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시간의 한을 풀기라도 하려는 듯 방탄소년단의 노래 중 역동적인 안무로 체력 소모가 큰 가장 ‘빡센’ 노래가 2시간30분이 넘는 공연 시간 동안 계속 나왔다. 방탄소년단이 직접 짠 세트리스트였다. 음악방송의 자투리 시간에 맞춰 곡 시간을 편곡해 무대에 섰던 중소기획사 아이돌에서, 코로나19 시대 대면 콘서트 개최를 위한 최적의 조건만 고려해 LA를 개최지로 선택하는 전 지구적 아이콘이 된 방탄소년단의 저력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방탄소년단의 LA 콘서트는 모든 면에서 코로나19 맞춤이었다. 콘서트가 열린 소파이 스타디움은 백신접종증명서나 코로나19 음성확인서를 제출한 관객만 입장할 수 있다. 순수 관객만 총 21만4천여 명이고 그들을 태워준 가족과 택시기사, 관객이 찾아간 인근 식당 직원 등 수십만 명이 접촉한 콘서트지만 다행스럽게도 안전하게 종료될 수 있었다. 콘서트 구성도 코로나19 시대 맞춤이었다. 이동과 설치에 많은 시일과 인력이 필요한 대규모 세트 대신, 전광판과 조명 연출을 적극 활용해 리스크를 줄이고 기동성을 높였다.
이 모든 것은 코로나19로부터 일상을 되찾기 위해 인류가 헤쳐온 좌절과 도전의 맥락 위에 세워졌다. 방탄소년단을 포함해 외국인 수만 명이 이 콘서트를 위해 미국에 왔다는 것은, 대량의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처리할 전문인력과 신뢰할 수 있는 국제적 의료체계가 자리잡았다는 의미이다. PCR 결과가 요즘에는 이르면 1시간 뒤면 나오는 데까지 왔다.
방탄소년단의 다음 대면 콘서트는 2022년 3월 서울에서 열린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팬데믹 상황이라 실제로 열릴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부스터샷(추가접종)을 서둘러 예약하고, 가물가물해진 노래 응원법을 미리 찾아본다. 이제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있다. 이 시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코로나19 시대의 진정한 일상회복의 첫 단계 아닐까.
최이삭 케이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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