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과 발견. 발견은 세상에 있던 걸 찾는 것이고 발명은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 발견은 일상에서 하루에도 여러 번 일어나지만 발명이라고 할 만한 일은 좀체 없다. 보통의 소설가는 주로 발견하지만 소설가 김초엽(사진)은 발명한다.
그가 창조한 우주, 세계관, 감각, 캐릭터는 이전의 한국 소설에서 별로 목도한 적 없는 발명의 세계다. 첫 번째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우리가 만난 것은 열여덟 살이면 순례를 떠나는 사회(‘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낯선 행성의 두 발 보행자(‘스펙트럼’), 기억에 없는 행성을 기억하는 사람(‘공생 가설’), 물건에 감정을 넣는 상품(‘감정의 물성’), 항로 밖 여행을 고집하는 노인(‘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죽은 이의 기억이 모이는 도서관(‘관내분실’), 우주에 맞게 몸을 개조하는 우주산업(‘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이었다.
우리는 최근 출간된 <방금 떠나온 세계>(한겨레출판 펴냄)에서 새로운 미끈한 발명품을 만나게 된다. 인간을 기다리는 기계들(‘최후의 라이오니’), 특별한 방식으로 춤추는 시각장애인(‘마리의 춤’), 세 번째 팔을 갈구하는 연인(‘로라’), 먼지 입자를 통한 대화(‘숨그림자’), 종교적 몰입을 거쳐 죽음으로 빠지는 생명체(‘오래된 협약’), 총체적 지식이 모인 공간(‘인지 공간’), 국지적 시간 거품(‘캐빈 방정식’).
김초엽은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에서 ‘관내분실’이 대상,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하 ‘우빛속’, 필명 응모)이 가작에 동시에 당선되면서 시작한 소설 쓰기를 숨가쁘게 이어오고 있다. 두 소설 사이에는 <사이보그가 되다>(사계절 펴냄)와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자이언트북스 펴냄)이 있었다. <사이보그가 되다>는 변호사 김원영과 함께 과학기술 측면에서 장애를 다룬 논픽션이고, <지구 끝의 온실>은 아포칼립스(현대문명의 멸망 이후) 세계관의 장편이다.
출간 직후 바쁜 일정을 끝내고 울산으로 향하는 소설가를 10월28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노란색 슈트케이스를 들고 나타난 그는 “많을 때 하루 인터뷰 3개를 한다”며 씩씩하게 웃었다.
첫 번째 단편집은 과학잡지에 게재됐던 단편이 많은 반면, 이번 단편집은 문학잡지 게재가 많다. 과학소설계 소설에서 한국문학 속 소설로 옮겨온 듯하다.
처음 ‘우빛속’ 때부터 문학잡지 쪽에 싣기로 한 경우가 많았는데, 문학작품 쪽이 사이클이 좀 느린 것 같다. 에스에프(SF) 잡지는 3개월 뒤 실릴 글을 내라고 하는데, 문학 쪽은 1년 뒤에 실릴 것을 청탁하더라.
청탁하는 잡지에 따라 쓰는 방식도 달라지나.
이번은 아니고 ‘스펙트럼’을 쓸 때 <현대문학> 청탁을 받았는데 문학잡지 독자분이 읽을 걸 생각하니 좀더 잔잔하게 써야 하나, 이런 생각을 했다. 특별히 소재 등에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SF가 아니라도 가상공간을 다룰 수 있지만, SF와 상관없이 현실과 조금 다른 공간에서 과학적 디테일을 만들면 좀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개연성을 만드는 데 과학 소재를 끌어오면 더 현실적이기도 하고.
모든 소설이 소재 면에서 새롭다. 아이디어를 어떤 방식으로 떠올리나.
형식 면에서 새로운 게 아주 많지는 않지만, 소재는 쓸 때마다 새로운 공간이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이 쓰다보니 소재를 찾는 게 어려운데, 모아놓은 아이디어를 조합해보면 독특한 게 나오는 듯하다. 장면에서 출발하는 경우도 있다. ‘우빛속’은 우주선이 오지 않는 정거장에 앉아 있는 모습을 떠올리고 써내려갔다. 최근 완성한 ‘선인장 끌어안기’도 제목 그대로 선인장을 끌어안은 장면에서 출발했다. 이번 소설집의 소설은 주제어를 받은 경우가 많아(‘최후의 라이오니’는 팬데믹, ‘마리의 춤’은 광장) 소재에서 출발한 작품이 많다. 특히 감각을 주요 모티브로 한 경우가 많다. ‘마리의 춤’은 시각, ‘로라’는 촉각과 자기수용 감각, ‘숨그림자’는 후각, ‘인지 공간’은 인간의 사고체계가 뇌 바깥에 있는 경우, ‘캐빈 방정식’은 시간 감각을 다룬다. 오감에 시간 감각을 다 더한 거다.
소설의 기본형을 바꾸는 실험<사이보그가 되다>를 집필하며 장애인으로서 출발해 감각 자체를 오랫동안 들여다본 결과물일 것 같은데.
소설이 직접적으로 장애를 다룬다고 하기는 조심스럽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어떤 감각이 없거나 더 가진 상황’이 비참하다기보다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장애가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그려진 측면이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이 겪는 막대한 차별의 경험을 그대로 적는 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맞지 않는다. <사이보그가 되다>도 앞부분에선 현실을 다루다가 뒷부분에서 미래로 밀어붙이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소설은 후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소설 속에서 급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밀어붙인다. 자신의 몸과 불화하는 ‘로라’는 변희수 전 하사 등의 타고난 몸과 원하는 몸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 같고, ‘마리의 춤’에선 일군의 시각장애인이 일반인을 향해 ‘테러’를 일으킨다.
‘로라’의 장애활동 보조 정책은 경험한 적이 있어서 간접적으로 언급됐다. ‘마리의 춤’은 그나마 급진적이다. 과격한 시위가 그 사람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유일한 방법일 때 우리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내가 그런 상황을 바깥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고, 과격한 말을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데, 그런 상황이 녹아 있다. 하지만 ‘마리의 춤’에 여러 아이디어를 넣었기 때문에 그런 해석만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는 없을 듯하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기도 하고 이번에도 주인공은 거의 여성이다.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도 등장인물에서 남성을 찾기 힘들다. 보통 소설의 독서 습관이 남성 캐릭터를 상정한다면, 김초엽 소설에서는 여성 캐릭터를 상정하게 된다.
일단은 대중소설가이므로 독자를 생각하면서 쓴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독자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 독자다. 다른 분들도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하지만 나와 또래 여성이 공유하는 공통된 문제의식이, 여러 콘텐츠에서 여성의 역할이 제한돼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의 ‘기본형’을 바꾸는 실험을 해왔다. 지금은 일부러 여성에 무게를 많이 뒀지만 이제는 성별 자체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써보려 한다. 먼 미래에는 젠더란 게 무의미하고 현실에서는 젠더를 억지로 무의미하게 만들면 이상하게 돼서 그 사이에서 작가적 균형점을 찾으려 한다. 사실 SF 분야에서 N. K. 제미신의 <부서진 대지> 3부작이라든지, 은네디 오코라포르의 <빈티> 시리즈 등 수십 년 전부터 진행된 작업이기 때문에 특별하다고 할 수는 없다. 최근 작품들, 특히 여성이 쓴 작품은 성별이 무의미하거나, 전통적 성별 역할을 수행하면 반드시 그렇지 않은 사람도 같이 보여준다.
풀과 잎. 김초엽의 이름 한자 뜻이다. 아버지의 전공이 원예학이라고 한다. 어머니도 식물을 좋아한다. 김초엽은 <지구 끝의 온실>에 이어 식물에 꽂혔다. 혁신적 사상이 식물을 통해 전개된다. <지구 끝의 온실>에서 ‘모스바나’는 유독가스로 가득 찬 지구의 구원자가 되고, ‘오래된 협약’에서는 “생명을 나눠주”는 식물의 ‘집단지성’이 행성에 도착한 생물체의 생존으로 이어진다. 2021년 겨울 출간될 중편 ‘므레모사’는 “인간이 지닌 움직임에 대한 추구 그것과 식물을 대비시키는 이야기”라고 한다. “식물은 정적이고 감각이 없는 존재라고 알고 있는데 동적인 세계이다. 인간중심적인 생각 때문에 식물 세계가 무생물처럼 멈춰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사실 이들은 인간의 감각 범위와 시간 범위를 넘어선 존재들이다.”
‘감정의 물성’에서 물건에 존재하는 감성을 상상해봤듯, 식물에 ‘공생’ 감각을 불어넣는 것은 역시 인간의 믿음이다. <지구 끝의 온실>에서 자신의 안위를 보존하며 편하게 살 수 있던 사람들은 인류를 위해 길을 떠난다. “그럼 그게 진짜 대안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 똑같은 문제가 다시 생길 거야.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 말도 안 되는 일을 계속해서 벌이는 것 자체가 우리를 그나마 나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거야.”(<지구 끝의 온실>) 풀과 잎을 이끄는 것은 긍정적이고 감정적인 ‘운동’이다.
불완전한 이해, 일반적이지 않은 사랑일반적인 연인 간의 사랑이 드러나지 않지만 작품이 감성적이다. 일반적인 연인의 감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지구 끝의 온실>의 지수와 레이첼의 관계, ‘최후의 라이오니’에서 라이오니를 기다리는 셀이다. 둘 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이들의 마지막 사랑, 둘 다 피가 없긴 하지만 ‘피투성이 사랑’의 느낌이다. 감정은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하는데, 김초엽 소설에서 가장 감정이 고조되는 것은 식물, 사이보그, 로봇 등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형태의 사랑을 다루는 것이 재미있다. 소설은 마음을 움직이거나 충격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충격을 주는 작품도 좋아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이번에 많이 실었다. 마음을 움직이는 건 관계 속에서 출몰한다고 생각한다. 작품 대부분이 이해의 실패를 다룬다. 불완전한 이해는 개인적 관심사이기도 하고 완벽한 이해, 해피엔딩은 재미없다. 마음이 흔들리는 느낌을 주고 싶다. 여운을 남기고 싶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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