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최단 거리를 구하라, 이게 문제가 돼?

모호함 없는 용어를 논리적으로 조합해 소통의 실패를 줄여주는 ‘수학적 사고’
등록 2021-02-24 13:53 수정 2021-02-24 22:41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인체비례도 <비트루비안 맨>(Vitruvian Man).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인체비례도 <비트루비안 맨>(Vitruvian Man).

수학이 아름답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좀체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일찌감치 수학과는 거리를 둔 사람들이 보기엔 더 그렇다. 하지만 가까이, 오래 보면 예뻐 보이는 법. 코로나19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이때,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가 아닌 수애자(수학을 사랑하는 자)가 돼보는 건 어떨까. _편집자

며칠 전 꿈속에서 수학 문제를 풀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꿈이 달아날까 스마트폰 녹음기를 켜고 내용을 저장했다. 오랜만이었다. 20대 후반에도 꿈에서 수학 문제를 푼 적이 있다. 불면증이 심할 때였다. 어차피 답도 없는 생각 몇 가지가 순서를 바꿔가며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이 상태를 벗어나려면 무조건 자는 게 최고다. 하지만 잠이 와야 말이지. 그럴 땐 수학 문제를 풀었다. 불면증 치료제. 이것이 수학을 입시나 돈벌이가 아닌 목적으로 사용해본 첫 번째 경험이었다.

최단 거리란 무엇인가?

글 마감을 앞두고 이것저것 생각하다 잠든 탓인지,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법한 연예인이나 정치인과 꿈속에서 수학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미로처럼 생긴 지도에서 최단 거리를 찾는 문제였다.

문제 자체에 의문이 들었다. ‘갈 수 있는 길’ 중에서 ‘최단 거리’를 찾으라는 것인가, 아니면 ‘최단 시간’이 걸리는 길을 찾으라는 것인가. 문제에 따라 답을 구하는 방식은 달라진다. 전자의 경우 ‘갈 수 있는 길’을 모두 조합한 뒤 거리를 수량화할 수 있어야 한다. ‘최단’ 시간이 걸리는 길을 찾으려면, 길의 상태나 고도 변화도 파악해야 한다. 그렇다면 속도는 일정한 것인가. 나는 여러 해석을 낳을 수 있어 문제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사람들은 꿈속에서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했다.

논쟁이 커지자 각종 음모론이 판쳤다. 누군가는 정권을 비판했고 누군가는 반대편에서 무조건 옹호했다. 또 누군가는 유튜브에서 문제에 신비로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열심히 떠들었다. 그 과정에서 논쟁은 산으로 갔다. 수학 문제로 시작된 논쟁이 더는 수학 문제와 아무 상관 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모호한 용어 사용이 갈등의 씨앗이었다.

수학적 사고가 뭐냐? 이 주제로 첫 책을 쓴 뒤 같은 질문을 계속 받았다. 그보다 세속적인 질문은 더 자주 들었다. 이를테면 수학을 잘하면 주식투자도 잘하냐는 식이다. 당연히 아니다. 뉴턴도 주식을 해서 돈 날렸다. 그럼 대체 수학적 사고란 게 뭘까?

수학과 닮은 법전의 구조

수학적 사고의 시작은 명확한 용어 사용이다. 뻔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뻔한데 소중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의 의미가 모호해서 상황이 복잡해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보자. 며칠 전 카페 이삿짐을 싸면서 친구들과 나눈 대화 장면이다. (협동조합 카페를 운영하는데 코로나19로 상황이 어려워져 이사하게 됐다.)

“야, 그쪽 좀 칼로 찢어봐.”

“(일단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칼질하며) 이렇게?”

“아니 세로로 말고 가로로.”

“(‘방금 가로 방향으로 찢었는데’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위에서 아래로 칼질하며) 이렇게?”

“응, 방향은 맞는데 좀더 깊숙한 쪽으로.”

꿈속에 등장한 얘기와 이 대화의 공통점은 서로 자기가 받아들이는 말의 의미를 상대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착각이 의사소통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수학의 세계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의미가 모호한 용어는 퇴출당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볼록하다.’

배가 볼록하다고 하면 저마다 판단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이 보기엔 볼록한 배도 누군가에게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수학에서는 주관적인, 즉 사람마다 판단이 다른 정의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림1]에서 도형에 포함되는 두 점을 아무렇게나(임의로) 잡아 선분을 만든다. 그 선분이 도형에 온전히 포함되면 볼록하다(convex)고 정의한다. [그림2]처럼 두 점을 잇는 선분이 일부라도 도형 밖으로 나가면 볼록한 도형이 아니다. 이처럼 수학 용어는 ○×를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정의한다. 즉, 언어의 경계가 명확하다는 이야기다.

정의는 언어의 경계를 결정한다. 약속이 명확해야 계획이 가능하고, 토론이 수월하다. 일단 단어를 명확히 정의하고 나면 그다음 문장을, 그다음에는 단락을, 그다음에는 맥락을 논리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수학책 다음으로 수학적 사고를 최대한 잘 지켜서 쓴 책이 법전이다. 현대 국민국가의 구성원리 중 하나인 법치국가의 원리는 수학 언어로 구성됐다. 법전은 물론 공적인 성격의 문서는 모두 그 구조가 수학 언어와 비슷하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에 따르면 청년은 대통령령에 따라 ‘15살 이상 29살 이하인 사람’을 말한다. 지방공기업법에 따라 지방공기업이 청년 미취업자를 고용할 때는 기준이 ‘15살 이상 34살 이하’로 바뀐다. 서울특별시 청년 기본 조례에서는 ‘만 19살 이상 39살 이하인 사람’이 청년이다. 법률의 정의가 수학의 정의와 다른 점은 합의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개 법률은 제1조에 목적을 명시하고, 제2조에 용어를 정의한다.

인간만이 수학을 획득한 이유

수학 문제를 잘 푼다고 수학적 사고에 익숙한 것은 아니다. 다만 수학 문제를 푸는 행위가 수학적 사고를 훈련할 수는 있다. 수학은 언어를 모호함 없이 다듬고, 그 경계를 명확히 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 그리고 그 언어를 조합하는 과정에서 논리적 정합성을 따지는 가장 정교한 학문이 수학이다. 수학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도 이런 수학이란 언어의 특징에서 비롯한다.

사모펀드, 감염재생산지수(수학을 사용했다), 아나필락시스, 이익공유제, 토지임대부 주택 등 매일 새로운 용어가 유통되며 우리 일상을 좌지우지하는 세상이다. 단어 뜻을 분명히 아는 것이 소통의 실패를 줄일 수 있다. 지금부터 수학적 사고를 염두에 두면서 생각하고 토론해보자. 당장은 아니더라도 분명 서서히 바뀔 것이다. 인간만이 수학이란 지구 보편언어를 획득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자. 같은 종에 포함되는 모든 개체가 사회를 이루고 소통을 시도하는 집단은 인간 말고는 없다.

나동혁 수학강사·<수학의 눈으로 보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저자

*기획 - 수학을 사랑한 어른들 모아보기

어른이의 고민은 수학으로 풀릴지니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9990.html

최단 거리를 구하라, 이게 문제가 돼?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9991.html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