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 박기 목적으로 유기견을 방치하고 학대한 ‘개 농장’ 현장을 다룬 <애니멀봐>의 한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탁! 편집기가 멈춰 세워진다.
“커트가 너무 빨라. 7초로 늘려.”
좁은 편집실 안. 1차 편집된 영상물에 선배가 평을 주는 이른바 ‘시사’ 시간의 풍경이다. 편집에 정답은 없지만 안정적 만듦새를 위해선 규칙이 있는데, 가령 ‘자막은 2초 이상’ 등의 박자 감각도 그렇다. 배우는 과정에선 직장인의 대표 구호 ‘넵’을 외치고 시정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때론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순간이 불쑥 찾아온다는 게 문제다. 수정해보니 아무리 봐도 느리게 느껴졌다. 커트 ‘쪼개기’란 표현이 쓰일 만큼 허겁지겁한 영상이 유튜브에 깔렸는데, 무려 7초? 안 그래도 빠른 영상을 1.5배속으로 보는 최신식 동체 시력의 소유자들에게 7초란 화면이 멈춘 거로 오해할 만한 속도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이 봉기처럼 일어나 들썩거리는 동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 얼굴에 가득 어렸나보다. 설명할 필요를 느꼈는지 선배는 몇 마디 덧붙였다.
“우리 시청자층이 1020은 아니잖니. 나이 든 사람들은 이해 못해.”
아! 당시 편집 중이던 프로그램은 선배가 막내이던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장수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 초기 막내 피디이던 선배가 중년의 메인 피디가 되는 동안 시청자도 중년이 되었다. 방송 기준이 ‘시청자’라면, 7초의 박자가 정답일 수 있다. 동년배가 말하는 동년배의 기준에, 어찌 토를 달 수 있단 말인가.
수정을 마치고, 해방감에 날아가야 하는데 발이 무겁다. TV가 ‘올드미디어’라는 것은 당연하고 ‘요즘 애들은 유재석은 몰라도 도티는 안다’는 말도 더 이상 충격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방송은 누구를 위해 만드는가? 당장 시청 지표에 집계되기 쉬운 중장년층을 방송의 ‘페르소나’로 삼으면 되는 걸까? 몇 년 동안 이어진 ‘레트로’나 광고계까지 모두 뒤흔든 ‘트로트’ 열풍까지, 중장년층의 기호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으니 이미 방송계 최고의 VIP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두려운 질문이 도사린다. 미래 세대를 잡지 못하는 매체에 미래가 있을까?
복잡한 심경으로 집에 오니, 소파에서 TV 보는 엄마가 눈에 들어온다. 그녀의 존재감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과연 뭘 보고 있을까? 아뿔싸! 넷플릭스에서 등장인물이 마약조직 두목으로 성장하는 혈투를 보고 있다. 더 가관은 손에 든 스마트폰으로 정치유튜브를 동시에 시청 중이라는 것이다. 엄마… 아니, 5060 시청자님, 이러시면 안 되는 거잖아요.
믿었던 보루마저 잃은 내게 20대 초반 동생이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다. “<애니멀봐>에서 개농장 봤어? 그거 본방 언제 한 건지 알아?” 유튜브에서 보고 본방까지 찾아보려는 모양이다. 내가 잘 모르는 것을 눈치채고 ‘쯧’ 하고 돌아서는, 동물권에 관심 많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를 보고 있노라니 또 머리가 띵하다.
MZ세대든 중장년층이든, 특정 집단의 매체라는 접근이 중요한 걸까. 기본적인 사실은 몇 가지뿐이다. TV는 뭐든 볼 수 있는 ‘기기’일 뿐, TV 방송이 갖는 특별한 우위는 희미해질 것이다. 어떤 세대에서도 방송 시청은 생활방식에 안온히 자리하지 않는다. 재밌게 만들면 알아서 보겠지 하는 우연한 접촉을 기대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이제 사람들의 생활방식에 공격적으로 ‘침투’해야 ‘봐진다’.
기존 독과점에 익숙했던 조직일수록 마케팅 능력이 부족하고 그 와중에 영광이 줄어드는 만큼 소극적으로 기존 판단을 답습하기 쉽다. 그럴수록 과거의 모든 틀을 벗어나, 핵심 부분에서 더 치열해져야 한다. 이쯤 되면 방송사와 유튜버, 아니 모든 콘텐츠를 둘러싼 주자들 사이 차이가 크기보단 오히려 경계가 흐려진다. 바로 그 순간, 방송사는 비로소 미래를 무대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정파리 방송사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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