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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유튜버의 숙명이란

방송사 피디와 유튜버의 기묘한 정체성 공존
등록 2020-12-20 01:19 수정 2020-12-20 13:45
인간세계의 번거로운 위계를 따르지 않는 펭수는 재밌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성별 이분법을 거부하는 펭수에게 남녀 모두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펭수가 오른손을 들어 인사하는 모습. <교육방송> 화면 갈무리

인간세계의 번거로운 위계를 따르지 않는 펭수는 재밌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성별 이분법을 거부하는 펭수에게 남녀 모두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펭수가 오른손을 들어 인사하는 모습. <교육방송> 화면 갈무리

“자위기구를 다루자.”

방송사 건물 앞 횡단보도에서 작가에게 말했다. 건물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읊조린 제법 비장한 목소리였다. 한두 번 하는 아이템 회의가 아니었으나 이번 회의는 확실히 결이 달랐다. 기존 방송분 목록을 찾지도, 팀장님 동태를 신중히 살피지도 않았다. 유튜브용 콘텐츠 회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존 TV 방송에서 다루기 어려웠던 내용을 해보고 싶다! 입 밖으로 꺼내 약속한 적은 없지만 어딘지 약간 반항적인 욕망이 텔레파시처럼 합의된 순간이었다. 동갑내기 피디와 작가는 금기를 깰 상상에 눈을 반짝거리며 그간 봉인됐던 아이템을 쏟아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우리에게 금기의 상징이었던 자위기구는 유튜브에선 이미 흔한 소재였다. 개인 유튜버가 아니기에 거쳐야 하는 사내 여러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기엔 차별점이 뚜렷하지 않았다. 결국 아이템 회의는 근본적인 회의를 마주하게 된다. 이미 모든 것이 넘실대는 유튜브. 방송사에서도 이 북새통에 뛰어들어 콘텐츠를 제작한다면 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기본적인 행보는 기존 방송 콘텐츠 일부를 재가공하는 것일 테다.

문제는 유튜브용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할 때 본격적으로 발생한다. 기존 전문 인력이 고정적으로 움직이면 불규칙한 유튜브 수익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게 불 보듯 뻔한 상황. 대체 얼마를 써서, 어느 정도 퀄리티로, 무엇을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이 아리송한 ‘노답’ 속에 방송사 피디와 유튜버의 기묘한 정체성 공존이 시작된다. 공룡처럼 무거운 몸집으로 미개척지를 탐험하는 동안, 고양이 동영상이 100만 조회 수를 가볍게 뛰어넘을 때의 현타(?)를 맞아가며.

성공 사례가 없지 않다. ‘워크맨’ ‘펭수’ ‘문명특급’ 등 웹예능 성격이 강한 콘텐츠부터 최근 시사교양 피디가 시골 폐가를 사서 개조하는 과정을 담은 브이로그 ‘오느른’(사진) 같은 실험도 좋은 반응을 얻는다. 특히 ‘오느른’은 실제 개인 행보를 쫓는 내밀한 콘텐츠이기 때문에 유튜브 특유의 몰입도가 높은 동시에 영상미나 편집감에서 방송사의 전문성이 뒤받쳐줘 방송사와 유튜브 그 사이 어딘가 매력적인 길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각개전투의 노력에도 방송사 유튜버는 늘 위기다. 아무리 유튜브에 최적화된 개인적 매력을 가진 콘텐츠일지라도 수익은 개인적 수준이어선 안 되는 숙명 때문이다. 방송사 유튜버는 정해진 기간에 확실한 존재 당위를 회사에 증명해내야 한다. 마치 TV 프로그램이 가문의 적자라면 유튜브 콘텐츠는 서자 같은 존재로서 키우긴 해야겠지만 영 탐탁지 않은 차가운 시선이 꽂히기 쉽고, 정작 제작진은 시청률 지표 너머에만 있던 시청자와 초밀착 거리에서 실시간 상호작용하며 뜨끈뜨끈한 정을 쌓은 상태. 이 극심한 온도차 속에 방송사 피디 겸 유튜버들은 하루살이처럼 생존전략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굳이 왜? 아마 ‘유튜브’가 중요한 게 아닐지 모르겠다. 플랫폼이 유튜브인지 깐따삐야인지는 사실 상관없다. 시대 불문 모든 피디가 그랬듯 많은 사람이 보는 걸 제작하겠다는 꿈을 품은 이상, 동시대와 호흡하고 아이디어 회의로 눈을 빛낼 수 있다면, 오늘날 방송사 피디들이 이 간절한 외침에 합류하는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좋아요, 구독, 알림 설정!”

정파리 방송사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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