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말아 먹지 않는다. 경기를 말아먹을 것 같아서.
달걀프라이도 안 먹는다. 경기에서 깨질까봐.
미역국도 금물이다. 경기 때 미끄러지면 안 되니까.
운동선수들에게는 지극히 기본적인 금기 사항이다. 특히 일주일에 여섯 차례나 그라운드라는 전쟁터로 나가는 야구 선수라면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실수에 역적이 되니까.
금기 사항에는 조금은 엉뚱하고 생뚱맞은 믿음도 있다. 공수교대 때 파울라인을 밟지 않는 것도 그런 믿음 중 하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파울라인은 지금도 ‘밟아서는 절대 안 될 선’이 됐다.
이런 믿음이 터무니없다며 깨려고 했다가 낭패를 본 선수도 있었다. 한때 뉴욕 양키스 에이스였던 멜 스토틀마이어는 어느 날 의도적으로 파울라인을 밟고 경기에 나섰다. 그는 첫 타자 정강이를 ‘몸에 맞는 볼’로 내보낸 뒤 5연속 안타를 두들겨 맞고 5실점을 해 패전투수가 됐다. 그다음부터 그는 절대 선을 밟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선을 밟지 않는 것’이 어릴 적 습관에서 기인했다는 점이다. 아마추어 선수들은 연습경기 등을 할 때 하얀 파울선을 직접 그리는데 선을 밟으면 망가져서 다시 그려야만 한다. 그래서 만에 하나 후배가 선을 밟으면 선배들에게 엄청나게 혼이 날 수밖에 없다. 조금은 ‘웃픈’ 징크스다.
이색 징크스도 있다. 새미 소사와 홈런 경쟁으로 유명했던 마크 맥과이어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메이저리그 은퇴 때까지 줄곧 똑같은 낭심 보호대를 썼다. 경기 중에 땀이 스며들기 때문에 보통은 1년가량 쓰고 교체하는데 맥과이어는 20년 가까이 같은 걸 고집했다. 제이슨 지암비는 슬럼프에 빠졌을 때 금색 티(T)팬티를 입었다. 한때 뉴욕 양키스 동료들도 부진 탈출을 위해 지암비를 따라 하기도 했다.
모이세스 알루는 타석에 섰을 때 배팅 장갑을 안 낀 것으로 유명한데, 그가 손바닥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쓴 방법은 매일 손에 오줌을 싸는 것이었다. 알루는 오줌 묻은 손으로 방망이를 휘둘러 17시즌 동안 1942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3, 2134안타, 332홈런을 때렸다. 일부 논문에 따르면 소변에 든 성분이 오히려 피부를 부드럽고 촉촉하게 해준다고 한다. 과연 알루는 경기 내내 다른 선수와 스킨십이 없었을까.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에 들어오면 하이파이브 정도는 했을 텐데….
삼진에 대한 강렬한 열망 때문인지, 아니면 3아웃에 대한 집착인지 저스틴 벌랜더는 화장실에서도 세 번째 칸만 쓴다. 래리 워커도 ‘3’에 집착했는데 그는 원래 시간보다 33분 빨리 시계를 맞췄고, 33번 유니폼을 입었으며, 11월3일 3시33분에 결혼했다. 장애 어린이들을 위해 333번 섹션 티켓 33장을 사기도 했다. 그가 아내와 이혼할 때 준 위자료는? 300만달러였다.
메이저리그 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베이브 루스에게도 징크스는 있었다. 그는 외야 수비를 나갔다가 더그아웃으로 돌아올 때는 2루 베이스를 꼭 밟았다. 이를 깜빡 잊고 돌아오면 이닝 교대 시간에 다시 2루로 나가서 베이스를 차고 돌아오는 수고를 감내했다. 그는 타격 슬럼프를 막아준다는 이유로 여성 실크 스타킹을 신고 있기도 했다.
같은 순서로 타격하고 같은 볶음밥을 먹고징크스와는 조금 다른 결의 ‘루틴’도 있다. 기분 좋은 징크스, 즉 행동규칙이 곧 나날의 루틴이 된다. 루틴 하면 스즈키 이치로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선수 시절 루틴대로 살아간 그는 ‘수도승’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치로는 경기 시작 5시간 전에는 반드시 경기장에 들어갔다. 같은 방식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타격 준비를 했다. 비가 와도 똑같이 했다. 타격할 때는 쪼그리고 앉았다가 어깨를 들고 플레이트 쪽으로 다가가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방망이를 쥔 오른팔을 투수 쪽으로 뻗고, 왼손으로 오른쪽 어깨를 짚는다. 매일 아침 같은 음식을 먹기도 했다. 한때는 국수였고 한때는 식빵, 카레였다.
2020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박용택(전 LG 트윈스) 또한 ‘루틴의 사나이’였다. 프로야구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가진 박용택은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식사하고 오후 1시 즈음 서울 잠실야구장에 도착해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타격 훈련 때도 꼭 차례를 지켰다. 그리고 경기 전 라커룸에서 30분가량 반드시 잠을 잤다. 그는 알람시계를 5개나 맞춰놓고 정해진 시간대로 움직였다.
2020 KBO리그 최우수 신인선수상을 받은 19살 소형준(KT 위즈)에게도 루틴이 있다. 선발 등판 전날 숙소를 아주 말끔하게 정리하는 것이다. 이젠 청소가 경건한 의식 같은 게 됐다. “뭔가 마음이 차분해져서”란다. 이와 더불어 그는 선발 등판날 같은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주문해 먹는다.
어쩌면 잘하고 싶은, 이기고 싶은 욕망의 응집이 징크스가 되는지도 모른다. 우주의 작은 티끌 같은 기운이라도 모아서 ‘승리’라는 달콤한 열매를 따고 싶으니까. 하긴 보통 사람들도 비슷하다. 큰일을 앞두고는 피할 것은 피하고 품을 것은 품는다. 나 또한 뭔가를 간절히 바랄 때 문지르는 행운의 동전이 있다.
최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 훈련장에서 만난 장애인 노르딕스키 대표팀 서보라미는 반문했다. “징크스요? 징크스대로라면 설원에서 잘 미끄러지라고 우리는 경기 때마다 미역국을 먹어야 하는데요?”
유레카! 맞다. 징크스 따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징크스는 변명을 위한 그럴듯한 구실이 되기도 한다. 미역국 따위, 그냥 후루룩 마시면 될걸.
그래도 다가오는 새해, 루틴 하나 정도 만들어놓는 게 괜찮을 듯하다. 루틴도 결국 나와의 약속이니까. 잘 만든 습관 하나, 하나가 쌓이고 쌓여 최소한 1루타는 만들어내지 않을까. 최소한 2021년 말에 허무하게 ‘삼진 아웃’ 당할 일은 없을 테다.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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