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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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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멈추지 않을 옥이네 이야기

충북 옥천 <월간 옥이네>가 만드는 ‘로컬 매거진’의 미래
등록 2020-04-05 17:28 수정 2020-05-03 04:29
왼쪽부터 <월간 옥이네>의 이상윤 문화팀장, 박누리 편집장, 조혜원·신윤아 디자이너.

왼쪽부터 <월간 옥이네>의 이상윤 문화팀장, 박누리 편집장, 조혜원·신윤아 디자이너.

“매호 만드는 게 도전이에요.”

3월30일 오후 충북 옥천군 옥천읍에 있는 (이하 ). 박누리(35) 편집장은 4월호 마감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제작인력이 취재기자 한 명과 자신뿐이라 기사 작성과 편집, 회의까지 1인 다역을 해야 한다. 는 사회적기업 고래실에서 발행하는 지역잡지다. 는 옥천의 ‘비옥할 옥’(沃)을 따 지은 것으로, 옥천의 사람과 문화, 역사 이야기를 담는다. 2017년 7월 시작으로 지금껏 33호를 펴냈다. 올해 3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잡지협회가 선정한 ‘2020년 우수콘텐츠 잡지’로 꼽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청년이 만드는 시시콜콜 시골잡지</font></font>

가 뿌리 둔 옥천군은 5만903명(2020년 2월 기준, 옥천군청 집계)이 사는 농촌 지역이다. 이 중 청년(20∼39살) 인구는 8642명에 불과하다. 충북의 ‘소멸위험지역’ 5곳 중 한 곳이다.

청년들이 떠나는 이곳에서 다른 지역에서 온 청년들이 를 만들고 있다. 박 편집장과 조혜원(23) 디자이너, 신윤아(28) 디자이너, 이상윤(32) 문화팀장. 그들은 를 중심으로 옥천에서 자신들의 꿈을 펼치고 있다.

의 이야기는 이름처럼 정겹다. 거리에 채소 좌판을 펼쳐놓고 파는 한영순씨, 57년째 이발소를 운영하는 이종철씨, 60년간 살아온 집을 홀로 지키는 오점순씨, 자서전 를 펴낸 김수자씨 등 평범한 이웃들의 삶을 담았다. 사람을 중심으로 자치, 자급, 생태, 공동체라는 주제를 매호 다룬다. 농민, 귀촌인, 공동체를 일구는 사람들은 항상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가 추구하는 가치를 몸소 보여주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2019년 8월부터 를 만드는 박 편집장은 에서 기자로 9년간 일했다. 경북 구미가 고향인 그는 일터인 옥천에 뿌리를 내렸다. “연고가 없는 옥천에 와서 기자로 활동하며 정말 많은 분을 만났어요. 읍내에 다니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예요. 인사하기 바빠요. 그게 큰 자산이죠.” 10년간 옥천에서 사는 그는 줄곧 듣는 말이 있다. “언제 서울로 가나? 왜 아직도 옥천에 있어?” 하지만 그는 여기를 떠날 사람이 아니라 살아갈 사람이다. 편집장 자리를 맡은 것도 그래서다. “어릴 때부터 지역에서 살아가고 싶었고 살아갈 방법을 찾았어요. 지역신문 기자를 택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박 편집장은 지역에 있는 청년들, 길고양이 문제에 관심 있는 이들과 대책모임을 꾸리고, 환경을 생각하는 이들과 채식 모임도 만들었다.

귀농·귀촌 매체인 를 운영했던 이상윤 팀장은 올해 3월 에 합류했다. 고래실에서 영상제작, 행사 기획 등도 한다. “종이 잡지라는 매체가 매력이 많아요. 하나의 특집이 문화기획으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원소스 멀티유스’(한 콘텐츠로 다양한 부가사업을 하는 방식)가 가능해요. 요리 기획을 하면 오프라인에서 쿠킹클래스(요리교실)를 열 수 있고, 지역을 소개하며 여행 프로그램으로도 이어질 수 있어요.” 그는 농촌과 청년에 관심이 많다. “지난해 귀농·귀촌 캠프를 열었는데 그곳에 온 이들에게 왜 지역에 내려오는지 물었어요. 서울에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토익점수·학점·봉사점수 등이 필요하다면, 지역에선 존재 자체로 인정받는다고 해요. 자존감이 높아지고 뭔가 치유받는 느낌이라고 했어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4곳 중 3곳 연매출 3억원 미만 영세사업체</font></font>

그러나 지역에서 종이 잡지를 꾸준히 낸다는 것 자체가 녹록지 않다.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발간하는 잡지 수도 적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0년 3월 정기간행물 통계에서 잡지는 총 5410종이고, 그중 지역잡지는 1112종에 불과하다. 잡지산업이 침체기를 겪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공개한 ‘2018 잡지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잡지산업 연간 매출액은 1조354억원으로 직전 조사 기준 연도인 2014년(1조3754억원)보다 24.7% 줄었다. 잡지산업 매출액은 2012년(1조8625억원) 정점을 찍은 뒤 하락하고 있다. 연매출액 1억원 미만 잡지사가 33.0%, 1억~3억원이 42.7%로 4곳 중 3곳이 연매출 3억원 미만 영세사업체로 나타났다.

특히 지역잡지계에선 ‘창간호가 곧 폐간호’라는 속설이 있을 정도다. 지역이라는 특성상 잡지시장도 작고 광고매출도 적다. 제작비와 인건비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재정 문제가 항상 따라온다. 그래서 충북 청주의 , 제주도의 <sum> 등과 같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통해 지역잡지를 만드는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를 지키며 응원하는 이는 바로 독자다. 고래실 이범석 대표는 “독자는 400여 명으로 연령층은 40∼50대가 많고 옥천 주민이 대다수”라며 “독자의 20%는 다른 대도시에 산다”고 말했다.
옥천 토박이인 금현주(47)씨는 창간 때부터 구독하고 있다. “ 그림 표지도 마음에 들고 디자인도 고급스러워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잡지라고 생각해요. 우리 지역 청소년들, 농민들 이야기를 보면 정겹고 좋아요.” 금씨는 모교에 를 보낸다. “옥천 아이들이 잡지를 보고 옥천 역사를 알았으면 좋겠어요.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펴는 사람들을 보고 이곳에서 진로를 찾았으면 했어요. 지역에서 꿈을 키울 수 있게요.”
충북 영동군에 사는 대학생 박호민(20)씨는 올해 2월부터 를 구독했다. 옥천읍에 있는 지역문화공간 ‘둠벙’에 들렀다가 를 봤다. “ 청소년 기자로도 활동했어요. 지역과 농촌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요. 에는 우리 동네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어 보게 돼요.”
가 더 많은 독자에게 다가가려면 30년 된 과 차별성을 확보해야 한다. “옥천을 기반으로 쓰다보니 신문과 취재 내용이 겹치기도 해요. 잡지에선 어떤 시각으로 이야기를 전할까 고민해요. 그 고민 속에서 로컬 에너지, 길고양이 문제 등의 주제를 깊이 있게 다뤘어요.” 박 편집장이 말했다.
의 차별성은 무엇보다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해 기록한다. 박 편집장은 “이웃들의 이야기를 쓸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써요. 우리가 쓴 기사가 단독이죠. 옥천 역사의 한 장을 남긴다는 생각으로 해요”라고 이야기했다.
는 옥천군뿐 아니라 영동군 등 충북 남부 3군을 아우르는 콘텐츠를 담으며 독자층을 넓히고 있다. 그래서 고래실 이범석 대표는 “종이 잡지라는 아날로그를 좋아하고, 시골의 향수를 느끼고 싶은 이들 모두 미래의 독자”라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옥천이 궁금해지게 하는 잡지</font></font>
사람들은 다른 지역 독자들에게 어떤 잡지로 다가가고 싶을까. 그들은 “지역에서 유일한 세련된 잡지“(조혜원), “이웃 소식을 알 수 있는 이야기 보따리”(이상윤), “옥천이 궁금해지게 하는 잡지”(신윤아)로 불리고 싶단다.
다른 이들의 대답을 듣던 박 편집장이 의 바람을 덧붙였다. “처음 를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기존 잡지도 어려운데 왜 종이 잡지를 만드느냐’ ‘3년 버티기 힘들 거다’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대요. 그렇지만 시시콜콜 시골잡지 는 이렇게 살아남았어요. 앞으로 또 3년, 10년을 버텨낼 겁니다. 독자들과 함께요.”
인터뷰를 끝내고 그들은 독자에게 보낼 4월호를 준비하러 로 향했다.

옥천=글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font color="#A6CA37">지역잡지의 대표주자

황풍년 발행인·편집장 </font>


지역 잡지 뿌리 내릴 문화 다양성의 토양을


월간 전라도닷컴 제공

월간 전라도닷컴 제공

전라도의 사람, 자연, 문화를 기록하는 잡지가 있다. 2000년 10월 웹진으로 시작해, 2002년 3월 월간지로 창간한 이다. 20년간 지역에서 뿌리내린 지역잡지의 대표주자다.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 지역잡지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발행인·편집장이자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한지연) 이사로 활동하는 황풍년(사진)씨와 3월31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은 월간지를 펴낸 지 18년째다.
꾸준히 매체를 펴낼 수 있는 이유는 지역잡지이지만 지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아서다. 콘텐츠는 지역에 기반을 두지만, 삶의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한다. 전라도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국 모든 이가 볼 수 있다. 실제 독자도 전국에 있다.
지역잡지 연대 활동도 하고 있다.
2013년 3월 지역잡지 4곳과 지역문화잡지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다들 영세하고 경영이 어렵다보니 외롭고 힘들게 잡지를 만들고 있었다. 지역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이 각자 고군분투하다가 제풀에 넘어지지 않게 격려해주는 연대체가 절실했다. 처음에는 지역잡지만 모였는데 우리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지역출판사도 합류했다. ‘우리가 연대해야 우리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에 2015년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를 만들었다. 지역출판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 지역도서전 등을 열었다. 지역도서전은 2017년 제주를 시작으로 매년 이어진다. 올해는 대구 수성구에서 열릴 예정이다.
로컬의 시대 지역잡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역은 한국 문화의 다양성과 전통문화를 품은 보루이자 생태환경적 삶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다. 가장 낮은 곳인 지역, 마을, 사람의 이야기는 문화의 근원이다. 지역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미래에 지향해야 할 가치가 담겨 있다. 삶과 문화의 중심을 서울과 수도권에서 저마다 발 딛고 사는 지역으로 분산해야 한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금 여기의 이야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그걸 기록하는 게 지역잡지의 역할이다.
지역잡지 활성화를 위한 정책은.
지역잡지가 있는 지역들을 보면 인구가 많아야 5천~1만 명이다. 구독료로 잡지 제작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이들의 마을 기록을 공적 영역에서 생산하고 유통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잡지 활성화를 위한 지원책이 절실하다.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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