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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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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심으로 자란 상추가 보약

6월 장마 전 밭에서 따서 바로 무쳐먹는 ‘상추겉절이’
등록 2019-06-19 10:01 수정 2020-05-03 04:29
강옥란 제공

강옥란 제공

손이 많이 안 가도 잘 자라는 채소가 있어요. 병치레도 잘 안 하고 주는 것도 많아요. 잎을 따도 또 나오고 또 나와요. 상추예요. 집 앞에 있는 밭에서 이 상추를 키워요. 4월 중순께 모종을 심은 게 쑥쑥 자랐어요. 이제 밭에 상추가 지천에 널렸어요. 노지에서 자란 상춧잎을 따면 끈끈한 하얀 진액이 나와요. 이게 건강한 상추예요. 비닐하우스에서 농약 주고 키운 상추에서는 이게 안 나와요. 옛 어른들이 상추를 먹으면 잠 못 자는 사람들이 잘 잔다는 말을 했어요. 상추의 하얀 진액이 잘 자게 해주는 겁니다. 잠 못 자는 사람들 상추 먹으면 돼요. 땅심으로 자란 상추가 주는 보약이죠.

상추는 봄에 심어서 초여름에 먹는 게 제일 맛나요. 상추도 맛있는 때가 있어요. 그래서 6월에 자주 먹어요. 장마가 시작되고 날이 더워지면 노지에서 상추 재배가 잘 안 돼요. 상추가 웃자라요. 너무 더우면 상추 가운데가 검게 변하기도 해요. 상추는 꽃대가 올라오고 꽃 필 때까지 먹을 수 있지만 여름이 되면 쓴맛이 많이 나고 잎이 질겨져요.

상추는 쉽고 편하게 먹을 수 있어요. 꽃대가 올라오기 전까지 수시로 잎을 따 먹어요. 저는 먹고 싶을 때 밭에서 한 번 먹을 만큼만 한 움큼 따와요. 고기 먹을 때 싸 먹거나 밥과 된장만 있어도 쌈으로 먹어요. 상추겉절이를 해먹을 수도 있어요. 만들기 번거롭지 않아요.

일단 상추와 파를 준비해요. 그걸 씻고 마늘, 고춧가루, 매실액, 식초, 간장을 섞어 양념을 만들어 버무려요. 마지막에 통깨도 솔솔 뿌려요. 여기에 당근이나 양파를 채 썰어 넣어도 됩니다. 이런 재료를 추가하면 아삭아삭 씹히는 게 더 많아져요. 저는 식초를 안 넣을 때는 들기름을 넣고 들기름을 안 넣을 때는 식초를 넣어요. 둘이 궁합이 안 맞아 같이 넣지 않아요. 고소한 맛을 좋아하면 들기름을 넣고 새콤한 맛을 좋아하면 식초를 넣으세요. 쌉싸름하면서 단맛이 나요. 입맛 돌게 해요.

상추겉절이를 할 때는 나물 하는 거랑은 달라요. 나물처럼 박박 무치면 숨이 죽고 풋내가 나요. 살살 무쳐야 합니다. 먹기 바로 전에 무쳐요. 밥상을 다 차리고 이걸 준비해요. 미리 해놓으면 숨이 죽고 식감도 떨어지거든요. 조금씩 만들어 바로 먹는 게 제일 맛있어요.

요즘에는 쌈채소가 다양하잖아요. 수입해서 들어온 것도 많고요. 상추도 더 아삭아삭하고 맛있는 품종이 나오고요. 새로운 걸 몇 번 먹었지만 계속 찾진 않아요. 그래도 예전부터 먹어온 상추 모종을 계속 심고 그걸 먹어요. 어릴 적부터 먹던 상추의 익숙한 맛이 제일 맛있는 것 같아요. 지금도 그걸 맛보고 산다는 게 너무 귀한 일이죠. 내가 키운 걸 따 먹는 것도 좋고요. 내 상추는 사 먹는 것과는 다른 맛이 나요. 안 먹어본 사람은 모를 맛이에요. 서울에 사는 자식들 내려오면 상추 한 봉지씩 담아 보내요. 그렇게 자식들과 나누는 맛도 있어요.

상추는 잎만 먹는 게 아니에요. 줄기 부분인 상춧대도 반찬으로 만들어 먹어요. 상춧대 윗부분만 잘라 장아찌를 담그면 됩니다. 아삭아삭하고 짭조름한 맛이 나요. 상추 꽃대를 물에 끊여 차처럼 마실 수도 있고요. 상추는 버릴 게 없어요. 싸고 흔해서 귀한 줄 잘 몰랐을 텐데, 상추는 참 기특한 녀석이에요.

강옥란 1956년생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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