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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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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의 맛, 인생의 맛

4월 말 5월 초가 제철인 두릅…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된장ㆍ고추장으로 무쳐 먹거나
등록 2019-05-24 14:40 수정 2020-05-03 04:29
두릅나무에 있는 참두릅을 따서(왼쪽) 나물로 무쳐 먹는다. 강옥란 제공

두릅나무에 있는 참두릅을 따서(왼쪽) 나물로 무쳐 먹는다. 강옥란 제공

“어머니! 어머니가 손수 만드는 음식 이야기 남겨놓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게 뭐라고 쓸 게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말로도 했지요, 며느리에게. 그런데 전화 한 통이면 별의별 음식이 다 배달되는 요즘 세상에 저같이 자연에서 난 재료로 직접 만들어 먹는다는 게 대단한 일이라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내 요리 경력만 40년이에요. 넙죽넙죽 받아먹기만 하는 사람들은 몰라요. 이게 얼마나 정성이 들어가고 번거로운 일인지. 그런데 나도 그동안 찬밥 취급했던 내 음식 이야기를, 이제야 맛깔나게 보여주고 싶네요. 그런 마음에 침이 꼴깍 넘어갑니다.

그래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시골의 산에서, 밭에서 나온 식재료로 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에 관한 겁니다. 봄이니 이 이야기부터 하렵니다. 봄에 산에 가면 지천에 먹을 게 깔렸는데…. 생각해보니 그것도 30여 년 전 이야기네요. 참나물, 달래, 냉이가 많았습니다. 마을에 사람이 줄듯이 나물도 줄어든 것 같네요.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항금리. 집들이 띄엄띄엄 있고 어르신들이 주로 사는 조용한 시골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서 60대인 나는 젊은 축입니다.

집 뒤 야트막한 산에는 두릅나무가 있습니다. 4월 말부터 5월 초반까지, 이 짧은 제철을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두릅나무에 열리는 새순이 참두릅입니다. 땅에서 자란 새순인 땅두릅도 있어요.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40여 년 전 이곳에 심었어요. 그때 심은 나무는 죽었지만 그 씨가 퍼져 자식 같은 수십 그루의 나무가 자랍니다. 그래서 높고 험한 산에 올라가지 않아도 바로 집 뒤에서 두릅을 딸 수 있어요.

두릅은 귀하디귀한 나물입니다. 양도 적고 딸 수 있는 시기도 짧으니, 먼저 두릅을 찾고 딴 자가 임자입니다. 산에 있는 두릅을 따려면 새벽부터 나가야 합니다. 해가 중천에 뜨면 두릅도 없어요. 나물꾼들이 귀신같이 알고 다 캐갑니다.

두릅은 크기에 따라 맛이 달라요. 작은 어린 두릅은 씁쓸한 맛이 나지만 쭉 자란 큰 두릅은 단맛이 나요. 줄기 부분은 씹으면 씹을수록 맛나요. 사람들은 뭣 모르고 아직 크지 않은 작은 두릅을 따갑니다. 두릅은 봄철 보약 같아요. 입맛 없을 때 다른 반찬 필요 없고 이것만 먹어도 입맛이 돌아요.

두릅 손질은 어렵지 않습니다. 먼저 두릅 밑동을 조금 잘라내 껍질을 벗깁니다. 주변 잔가시를 깔끔하게 없애고 흐르는 물에 씻습니다. 그 두릅을 집 마당에 있는 가마솥에 넣어 데칩니다. 너무 오래 데치면 흐물거릴 수 있으니 살짝 데친 뒤 찬물에 바로 헹구는 것이 좋아요. 데친 두릅에 고추장, 고춧가루, 마늘, 매실액, 들기름, 깨를 넣고 조물조물 버무립니다. 살짝 데친 두릅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을 수 있습니다. 기름기가 많은 삽겹살과 같이 먹어도 좋습니다. 매운 것 싫어하는 사람은 된장으로 무쳐 먹으면 되고요. 나물을 잘 안 먹는 아이들에게는 두릅튀김이나 두릅전을 해주면 됩니다. 그렇게 해줘도 우리 손주들도 잘 안 먹어요. 서른 넘고 마흔 되니 이제야 나물에 손이 가는 내 자식들만 봐도 그러네요. 아마 나물 맛을 알려면 인생을 더 맛봐야 하나봅니다.

*연재를 시작하며
1956년생 주부입니다. 경기도 지평에서 나고 자랐고 스무 살에 양평으로 시집와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부엌에서 음식을 만든 경력이 40년이 넘습니다. 고추장과 된장, 손두부, 김치 등 자연에서 난 재료로 만들어 먹고 있습니다. 제철 재료를 골라 공들여 손질하고 조리하고 먹는 과정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나 시어머니가 말하고 며느리가 기록합니다.
강옥란 1956년생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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