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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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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 끝에 매달린 하청업체

업종 특성상 사고 나도 발주처와 원청에 보상받기 어려워…

정부가 외벽 청소 안전점검 등 사전 감독 나서야
등록 2017-09-14 01:57 수정 2020-05-03 04:28
8월28일 외벽 청소 중 추락해 사망한 조영호(가명)씨의 빈소가 서울 동대문구의 한 병원에 차려졌다. 한산한 장례식장에서 조씨의 여자친구가 울고 있었다. 김진수 기자

8월28일 외벽 청소 중 추락해 사망한 조영호(가명)씨의 빈소가 서울 동대문구의 한 병원에 차려졌다. 한산한 장례식장에서 조씨의 여자친구가 울고 있었다. 김진수 기자

조영호(28·가명)씨는 경력 3년차 ‘로프공’이었다. 국가가 설립한 기술 전문대학인 한국폴리텍대학을 나와 해병대를 전역한 뒤 로프공이 됐다. 부모님에게는 로프공이 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부모님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한 조씨가 ‘아파트 분양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것으로 알았다. 부모님이 아들의 진짜 직업을 안 날은 지난 8월17일, 강원도 원주 단계동의 ㅂ아파트에서 외벽 청소를 하다 조씨가 추락한 날이었다.

8월17일 추락사, 원인은 오리무중

조씨는 여러 외벽 청소팀에서 일했다. 원주에서 함께 일한 외벽 청소팀을 만난 것은 3개월 전이었다. 그전에 있던 팀이 일이 없어 해체되면서 지금의 팀으로 옮겼다. 동료들은 조씨가 일당을 받으면 허튼 곳에 쓰지 않고 저축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목돈을 모아 부모님에게 드릴 것”이라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동료들에 따르면 조씨는 힘이 세고 일 처리도 빨랐으며 성실했다. 한 달에 28일을 일한 적도 있었다. 동료들은 조씨에 대해 “같이 일하면 힘이 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8월16일, 조씨가 속한 외벽 청소팀은 1박2일 일정으로 강원도로 향했다. 원주 단계동의 ㅂ아파트 외벽을 청소하기 위해서였다. 팀원들의 거주지와 작업 거점은 서울과 경기도였지만, 팀장 장아무개씨가 알고 지내던 외벽 청소 업체 ‘ㄱ환경’ 사장 함아무개씨가 “일손이 모자란다”며 지원을 부탁했다. 조씨를 비롯한 ‘원정팀’ 8명과 ㄱ환경 2명 등 모두 10명이 첫날 일정을 무사히 끝냈다. 둘쨋날인 8월17일 오전 8시59분, 조씨가 작업 중에 추락했다.

사고가 난 순간에는 의식이 있었다. 현장에 있던 팀장 장씨와 ㄱ환경 사장 함씨가 조씨의 의식을 확인해 곧바로 병원으로 보냈다. 사고 소식을 들은 가족도 경기도 부천에서 원주의 병원으로 왔다. 수차례 고비를 넘겼지만 사고 발생 열흘이 지난 8월27일 밤 11시 조씨는 사망했다.

사고 발생에서 보름이 지났지만 조씨의 사고 경위는 아직 미궁이다. 사고 당시 조씨는 자신이 맡은 동에서 혼자 작업 중이었다. 관리감독자는 현장을 비우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있었고, 목격자나 폐회로텔레비전(CCTV)도 없었다. 사건을 조사한 원주경찰서 관계자는 “헬멧은 착용한 상태였고 안전벨트는 풀려 있었다는 게 현재까지 확인된 것”이라며 “수사 중이라 그 외에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빈소에서 만난 조씨 외삼촌은 “고용노동부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더라.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왜 사고가 났는지 밝혀내는 사람이 없어서일까, 사고 이후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다. ㄱ환경 사장 함씨는 애초 외벽 청소를 맡긴 발주처인 ㅅ건설이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ㅂ아파트 길 건너편에서 ㅅ건설이 빌딩 공사 중이었다. 공사로 인해 비산 먼지가 발생하자 ㅂ아파트가 민원을 제기했고 ㅅ건설이 외벽과 주차장, 복도를 청소해주기로 약속했다. ㅅ건설이 협력업체인 ㅊ환경에 청소 발주를 맡겼는데 외벽 청소 인력이 없는 ㅊ환경이 우리 회사에 하청을 준 것이다.” ㅊ환경 쪽도 발주처가 ㅅ건설이라고 했다. ㅊ환경 관계자는 “ㅅ건설이 ㅂ아파트 내·외부 청소를 맡겼고 구두로 계약했다. 외벽 청소 인력이 없어서 ㄱ환경에 하청을 줬다. 청소 일정을 아파트 관리소와 잡은 것은 우리 쪽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ㅅ건설 쪽은 조씨 사고에 책임이 없다고 한다. ㅅ건설 관계자는 “외벽 청소를 발주한 것은 맞다. 10월 중에 작업하기로 했는데 8월에 갑자기 사고가 났다. 우리는 ㄱ환경이란 업체 선정을 하지 않았고 작업 지시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구두계약·책임회피… 구조적 문제다

그러나 사고 당시 아파트에는 ‘ㅅ건설의 비용 부담으로 외벽 청소를 실시한다’며 8월16일부터 19일까지 외벽 청소 실시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ㅊ환경 관계자는 “ㅅ건설이 8월이나 9월 중에 아파트 일정을 보고 일을 진행하라고 했다. 그리고 보통 청소 발주가 들어오면 ㄱ환경과 함께 일해왔다”고 했다. 그는 “외벽 청소 능력이 없어 일을 맡겼을 뿐이다. 돈을 떼먹거나 하지도 않았다. 우린 이번 사건과 관련 없다”고 말했다.

발주처→원청→하청 과정에서 구두계약만 있을 뿐 서류로 남은 증거는 없다. ㄱ환경 사장 함씨는 “ㅅ건설이라는 큰 건설사가 일을 맡겼기 때문에 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구두계약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별동대처럼 팀 단위로 움직이는 외벽 노동의 특성상 사고가 발생하면 이처럼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노무법인 삶’의 홍종기 노무사는 외벽 청소 노동의 구조적 문제가 원인이라고 했다. 똑같은 외벽 노동이라고 해도 보수나 도색 같은 외벽 노동은 건설업으로, 외벽 청소는 서비스업으로 분류된다. 홍 노무사는 “서비스업의 경우 발주처와 원청에 사고 책임을 묻거나 보상을 받기 힘들다. 대체로 외벽 청소는 건설사가 발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건설사는 산업재해 횟수가 관공서 입찰에 감점 요인이 돼서 사고 책임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표준산업분류’에 따르면 외벽 청소는 ‘사업시설 관리 및 조경 서비스업’으로 분류돼 있다. 외벽 도색·보수는 건설업에 적용되는 안전 규제나 감시 규정이 준용되지만, 외벽 청소는 서비스업이라 예외다.

정부는 사후약방문식으로 조치한다. 사고가 나면 책임만 묻는다. 이번 사고에서도 ㄱ환경은 사전 안전교육이 미비했다는 이유로 442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사장 함씨는 “그동안 신경도 안 쓰다 갑자기 과태료를 물리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외벽 노동이 언제 어디서 행해지는지 파악할 수 없다. 사전 안전점검은 힘들고, 사고가 나면 안전관리 실태를 파악한다”고 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원장을 맡았던 박두용 한성대 교수는 정부가 ‘사전 감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벽 노동 사고를 막으려면 업체가 미리 고용부에 허가받고, 고용부가 의무적으로 안전점검을 해야 한다. 외벽 노동은 고위험 직업이라 반드시 공식적인 안전 책임자가 있어야 한다. 정부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하청업자와 노동자의 양심에만 맡겨선 안 된다.”

8월27일 밤 11시 원주의 병원에서 숨진 조씨의 빈소는 그로부터 거의 하루가 지난 8월28일 저녁 8시께 서울 노원구의 한 병원에 차려졌다. 조씨 빈소에서 만난 가족들은 지쳐 있었다. 조씨의 아버지는 사고 이후 조씨가 숨진 보름여 동안 하루 반 갑씩 태우던 담배가 두 갑으로 늘었다고 했다. “난 이미 다 잊었어. 그냥 살아가기도 힘든 세상인데…. 애 많이 아낀 엄마가 힘들지.” 아버지는 입으론 잊었다면서 눈으론 울고 있었다. 조문객이 드문 빈소에는 한 여성이 울고 있었다. 조씨의 외삼촌이 그가 조씨의 여자친구라고 했다. “결혼자금을 모으려고 작업비가 높은 일을 했던 것 같다”고 외삼촌은 말했다.

“우린 어디에 하소연하나”

조씨의 동료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팀장 장씨는 “20년 넘게 줄을 탔지만 사고 난 적은 없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 일이라도 해야 하는데 다시 줄을 타기가 무섭다”고 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가운데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팀장 장씨뿐이었다. “영호한테 항상 일을 그만두라고 말했다. 젊은 놈이 왜 줄을 타냐고. 왜 이런 사고가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우리 같은 노동자는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나.” 발인은 빈소가 차려진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8월29일 오후 1시에 했다. ㅅ건설과 ㅊ환경 관계자는 끝내 빈소에 나타나지 않았고, 유족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윤수현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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