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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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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판타지

말하는 대로 이뤄진다면,

영화 <라라랜드> <마스터> <너의 이름은.>
등록 2017-01-17 17:37 수정 2020-05-03 04:28

연말과 연초 흥행 돌풍을 이어간 영화 세 편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무력한 현실을 상상의 힘으로 극복한다는 것. 앞으로 실패밖에 남은 게 없는 듯한 인생, 이번 생에는 밝혀질까 싶은 정치권의 각종 비리, 속수무책으로 당한 거대한 재난 현장 앞에서 우리가 상상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답은 질문의 반대로 쓰면 된다. 꿈을 좇다 그리던 곳에 도달하고, 흐트러진 퍼즐을 맞춰 비리 정치인을 청산하고, 재난 현장 시간에 ‘가만히 있지 말고 모두 나오라’고 소리치는 것. 세 편의 영화는 이다.
낙관의 노래

<라라랜드> 판 시네마 제공

<라라랜드> 판 시네마 제공

골든글로브에서 7개 상을 휩쓴 영화 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최다 부문 후보에 오르며 축제의 나날을 이어나갈 전망이다. 뮤지컬영화는 기본적으로 아름다운 노래와 춤으로 낙관과 판타지를 그린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들이다. 꽉 막힌 도로에서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화려한 군무를 펼치는 오프닝 장면, 사랑에 빠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아름다운 노을이 내려앉은 시간 남녀 주인공의 노래와 탭댄스, 두 연인이 천문대를 구경하다 음악과 함께 두둥실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 등 는 곳곳에서 황홀경을 선사한다.

흥행 돌풍의 중심에는 아름다운 음악과 춤이 있겠지만, 제각기 다른 감정의 곡선을 그리는 이야기 흐름도 관객 동원에 큰 힘을 발휘했다. 관객들이 영화 OST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서로 다르듯,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이 이 영화의 핵심 장면으로 꼽는 장면도 제각각이었다. 누구는 이뤄지지 않은 주인공의 사랑을 그려보는 장면에서 눈물짓고, 누구는 노을 진 공원에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반복해 보고 싶어 한다.

여러 장면 가운데 ‘지망생’ 신분에서 탈출한 두 사람의 오늘에서 환상을 보는 이도 있을 테다. 비록 사랑에 실패했더라도 이들의 이별이 쓰지만은 않아 보인다. 두 사람이 사랑한 것은 미아(엠마 스톤)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그 자체가 아니라, 함께 꿈을 좇는 그 순간들이었으므로.

세바스찬이 사랑한 것은 평범한 외모로 번번이 영화 오디션에서 낙방하다 1인극으로 자기 세계를 돌파하려는 미아, 미아가 사랑한 것은 모두가 외면한 올드 재즈를 꿋꿋하게 되살리려는 세바스찬이었다. 이들이 차지한 무대가, 오늘도 지망생으로 하루를 보낸 ‘내’가 그리는 내일이라면. 심지어 영화 속 주인공들은 그 과정에서 평생 잊지 못할 연애도 했으니….

악당에게 마땅한 길
<마스터>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마스터>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만약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희대의 막장 드라마가 현실에서 펼쳐지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허무맹랑해 보였을지 모른다. 600만 관객을 훌쩍 넘어선 영화 는 조 단위 사기 프로젝트로 뒤엉킨 ‘건국 이래 최대 게이트’를 둘러싸고 사기꾼과 경찰이 추격전을 벌이는 이야기다. 고도의 비밀·지능 수사를 펼쳐도 정치 네트워크를 장악한 사기꾼 진 회장(이병헌)의 덜미를 잡기 쉽지 않다. 선량한 눈빛으로 평범한 시민을 기만하고,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고, 쓸모없어진 순간 인간을 폐기처분하는 그 세계는 신문과 방송 지면을 떠들썩하게 하는 오늘을 닮아 있다.

선한 인물이 악인으로 변해가는 반전에 익숙했던 관객은, 끝까지 정의를 지키는 형사 김재명(강동원)과, 선한 자의 손을 잡는 악인 박장군(김우빈)의 모습이 오히려 당황스럽다. 그러므로 영화는 더더욱 스크린 안에서라도 절망 대신 희망을 그린다. 진 회장의 승리가 어쩐지 씁쓸한 현실과 더 가까울 것 같지만, 이야기는 통쾌하게 진 회장의 추락을 향해 달려나간다. 김재명의 지휘로 국회를 향해 차량이 도열한 마지막 장면은 거의 만화적 상상력처럼 보인다. 말하는 대로 이뤄질 수 있다면.

상상하고 상상했던
<너의 이름은.> 메가박스 플러스엠 제공

<너의 이름은.> 메가박스 플러스엠 제공

일본 애니메이션 은 1월13일 현재 누적 관객 수 174만9857명을 동원해 개봉 이후 관객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관람객 1600만 명 이상을 동원해 일본 역대 흥행 순위 4위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영화는 꿈속에서 몸이 뒤바뀐 두 사람, 도쿄 소년 타키와 시골 소녀 미츠하의 시간을 초월한 사랑을 이야기의 큰 줄기로 삼는다. 러브라인과 별개로 영화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등장하는 이토모리 마을 혜성 충돌 사태는 재난 앞에서 무기력했던 여러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한순간에 완전히 파괴된 아름다운 마을, 축제를 즐기다 목숨을 잃은 수백 명의 무고한 시민들…. 수년째 경계선에 둘러싸여 복구되지 못하고 고여 있는 마을의 모습을 보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가 머릿속으로 지나가는 순간도 있다. 재난 상황에서 아이들이 재기를 발휘해 마을을 구하려는 장면이 있다. 그 순간 마을의 정치 권력자들이 마이크를 뺏고 “집에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하는데, 가슴이 쿵 내려 앉는다.

타키와 미츠하는 재앙을 막기 위해 뒤엉킨 시간 속에서 달리고 또 달린다. 역사에 ‘만약에’는 없고, 알 수 없는 인생에서 힌트를 찾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매듭처럼 꼬이고 엉키고 돌아오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어떤 단서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타임슬립의 통로를 알 수만 있다면.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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