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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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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지옥도

살아남을 수 없는 자들의 아귀다툼

영화 <아수라>와 <디시에르토>
등록 2016-09-30 20:06 수정 2020-05-03 04:28

*영화 와 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아수라>(위쪽)와 <디시에르토>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집요하고 잔혹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사 날개 제공

영화 <아수라>(위쪽)와 <디시에르토>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집요하고 잔혹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사 날개 제공

그날 하루, 두 개의 지옥을 보았다. 영화 (9월28일 개봉) 시사회 상영관에서 막 빠져나온 나는, 너무 “못돼처먹어서” 하나같이 공감할 수 없는 인간들이 서로 물고 뜯는 아귀다툼을 2시간 넘도록 보고 정신이 아득해져 있었다. 영화는 피냄새가 진동하는 시커먼 지옥도를 그리고 있었다. 생수를 한 병 사 마시고 같은 영화관에서 하는 다른 영화 시사회를 찾았다.

영화 의 공동각본가였던 알폰소 쿠아론과 조나스 쿠아론 부자가 함께 만든 영화 (10월5일 개봉). 를 보고 너덜거리는 마음을 달래고 싶었지만, ‘불모지’라는 뜻의 영화 제목에서부터 냄새가 풍겼다. 여기도 지옥을 그리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다만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밝고 아름답고 광활한 지옥이었을 뿐.

는 아수라장

에서 비열한 검사 김차인(곽도원)의 오른손 역할인 도창학을 연기한 정만식은 과의 인터뷰에서, 하루치 촬영을 끝내고 나면 자신의 캐릭터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참 못됐어. 말도 안 되는 인간이야.” 에는 도창학과 어깨를 겯는 악인들이 그득하다.

가상의 도시 혹은 가상의 지옥 안남시는 가난하고 황폐한 땅이다. 시장 박성배(황정민)는 야욕으로 이글거리는 야만의 인물. 누추한 동네를 밀어내고 그 땅에 번쩍이는 빌딩과 아파트를 세워 돈과 권력을 양손에 하나씩 쥐기 위해 자본과 유착, 마약 거래, 살인 교사 등을 서슴지 않는다.

그의 악행 가운데 가장 냄새 구린 일을 처리하는 이가 형사 한도경(정우성)이다. 말기 암을 앓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돈이 필요한 도경은 박성배의 수행팀장으로 들어가기로 하지만 그의 뒤를 캐던 검찰에게 약점을 잡혀 모든 계획이 뒤틀린다. 대신 경찰서에서 형제처럼 지내던 후배 문선모(주지훈)를 박성배 아래로 밀어넣는다.

한편 검사 김차인은 수사의 판을 짜기 위해 한도경을 이용한다. 박성배의 살인 교사 증거를 가져오라고 도경을 압박한다. 하지만 김차인 또한 더 큰 권력의 명을 받은 하수인에 불과하다. 박성배를 죽여야만 살아남는 김차인은 수사라는 이름으로 불법 도청, 미행, 감금, 폭행 등 범죄를 서슴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축생계와 인간계 사이에 머무는 중생들을 ‘아수라’라고 한다. 머리는 하나, 얼굴은 세 개, 손은 여섯 개 혹은 여덟 개인, 싸움을 일삼는 이들이다. 영화 가 그리는 현생의 아수라장에서는 윤리와 인권, 생명 등 모든 가치가 돈과 권력 아래에 있다. 한때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등장하는 영화가 있었다면 에는 ‘나쁜 놈’들만 일렬종대로 줄지어 나온다. 안남시장 박성배와 검사 김차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쁘다. 그는 하루빨리 일용직 노동자, 불법 체류자들이 모여 사는 복잡한 골목을 밀어내고 가시는 걸음 걸음 돈(김차인의 경우 권력)을 즈려밟고 싶다.

박성배가 움직일 때마다 떨어지는 떡고물을 기대하며 바닥을 핥는 이들도 악인의 대열에 있긴 마찬가지다. 박성배의 비서 은 실장, 순박한 청년에서 순식간에 악마로 변질된 선모, 아내의 생을 위해 타인의 죽음에는 아랑곳 않는 도경 등이 그렇다. 악인의 심복이자 양면성을 가진 아수라 백작과 같은 인물들이기도 하다.

또 다른 지옥을 향한 발걸음

남성 중심으로 판이 짜인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 또한 지옥에서 온전치 않아 보인다. 도경의 아픈 아내와 김차인 수사팀의 경찰 차승미(윤지혜)는 악행의 방조자이자 조력자이다. 심지어 이들 여성 캐릭터는 도경이 악행을 저지르는 원인 제공자 혹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성가시게 눈물 짜는’ 캐릭터에 그친다. 누구도 인간 존엄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아수라장은 그래서 더 지옥 같다.

영화 가 그리는 지옥은 무엇인가. 90분가량의 영화는 세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경을 넘어 자유의 땅 미국으로 가려는 멕시코 사람들이 사막에서 길을 잃었다. 그늘 하나 없는 사막에서 그들이 피해야 할 것은 불법 이민자를 증오하는 살인마의 추격. 살아남아야 한다.

사람들은 자유의 땅에 발을 들이자마자 가장 강력한 고립감을 느낀다. 끝이 보이지 않는 황량한 사막에서 이들의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것은 신도 국가도 아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했던 인물은 영화 초반에 죽고, 지옥 같은 태양 아래서 힘센 정부의 그림자는 어디에도 비치지 않는다. 아무런 보호막 없이 국경을 건너는 사람들은 저 멀리 광인이 겨눈 총구 앞에서 볼링핀처럼 쓰러진다. 살아남은 자의 알량한 목숨을 부지해주는 건, 보잘것없이 드러누운 선인장숲과 바람에 풍화된 바위틈뿐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자에게 지옥의 땅인 사막은 이들의 황폐한 심정을 비웃듯 광활하고 아름답다. 그 안에서 주인공 모세(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와 그를 뒤쫓는 살인마 샘(제프리 딘 모건)의 2박3일간의 추격전이 이어진다. 모세는 마침내 샘의 모든 무기를 빼앗고 그를 사막 한가운데 두고 다시 길을 나서지만, 이 지옥의 땅에서 쉽게 해피엔딩을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쓰러진 여성 동료를 어깨에 지고 아득한 불빛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에서 도경이 말한 대사가 겹쳐 떠오른다. “여기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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