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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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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투명한 욕망의 수영장

1969년작 <태양은 알고 있다> 오마주한 영화 <비거 스플래쉬>
등록 2016-08-24 22:01 수정 2020-05-03 04:28
<font color="#C21A1A">*영화 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font>

‘그 섬에 가고 싶다’. 섬은 유배와 휴식의 땅. 의 주인공들이 고독과 자유, 은폐와 분출의 두 가지 마음을 좇아서 마침내 도달한 곳이 섬인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이탈리아 국경 안에 있지만 물리적으로는 아프리카 튀니지와 더 가까운 작은 섬, 판텔레리아. 뚜껑 없는 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탈탈 달리다보면 끈적한 바닷바람과 여기에 맞서는 건조한 모래바람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펼쳐진다. 사람 없는 한적한 해변을 벗어나 마을로 들어서면 뜨거운 열기를 피하기 위해 아프리카식으로 창문을 작게 뚫은 집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마을 뒤로 원시에 가까운 풀숲이 이어진다. 잎끝이 노랗게 마른 야자수가 이글거리는 붉은 땅 위로 솟아 있고,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다시 멀리, 끝없는 바다가 보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여름 휴양지에 찾아온 전 연인</font></font>
영화 <비거 스플래쉬>에서 네 남녀는 제각각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다가 제각각 비참하고, 상처받고, 이기적인 결과를 얻는다. 찬란 제공

영화 <비거 스플래쉬>에서 네 남녀는 제각각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다가 제각각 비참하고, 상처받고, 이기적인 결과를 얻는다. 찬란 제공

는 판텔레리아섬을 배경으로 네 남녀가 벌이는 이야기를 그린다. 귀를 닫고 눈으로만 따라간다면 어떤 면에선 한가로운 여름 영화다. 유럽과 아프리카의 정서가 뒤섞인 이국적인 풍광, 주인공 마리안(틸다 스윈턴)의 우아한 옷차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야외에 하얀 테이블을 놓은 아름다운 레스토랑, 수영장이 딸린 호화로운 빌라…. 하지만 귀를 여는 순간 산통 깨는 해리(랠프 파인스)의 수다로 한적하고 평화로운 풍경은 산산조각 난다.

마리안은 세계적인 록스타다. 지나치게 목을 사용한 탓에 한동안 목소리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성대가 상한 마리안은 연인 폴(마티아스 스후나르츠)과 함께 판텔레리아섬으로 긴 휴가를 떠나왔다. 두 사람의 자유롭고 한가로웠던 나날은 마리안의 전 연인 해리의 갑작스런 방문으로 균열 조짐을 보인다.

음악 제작자인 해리는 마리안과 오래 작업하며 한때 연인관계였다. 음악관이 달라졌다는 이유로 마리안을 폴에게 떠넘기다시피 하며 마리안과 헤어졌던 해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그런 해리가 판텔레리아에서 아무도 모르게 휴가를 즐기고 있던 마리안과 폴을 습격하듯 찾아온다. 1년 전에 찾았다는 자신의 22살 딸 페넬로페(다코타 존슨)와 함께.

는 알려졌다시피, 알랭 들롱과 제인 버킨이 출연한 1969년작 (자크 드레이 감독, 국내 제목은 )을 오마주한 영화다. 한적한 프랑스 남부, 수영장이 딸린 호화로운 빌라에서 휴가를 즐기는 남녀 마리안과 폴, 이곳을 찾은 마리안의 전 연인 해리와 그의 딸 페넬로페 사이에 흐르는 얽히고설키는 미묘한 기류가 이야기의 축이다. 와 은 거의 같은 이야기 구조에 주인공들의 이름도 같다.

과 사이에 이라는 영화가 있다. 2003년 프랑수아 오종 감독은 에서 영감을 받아 이 이야기를 미스터리로 재구성했다. 은 성공한 미스터리 작가 사라가 다음 작품을 준비하러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편집장의 별장을 찾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곳도 수영장이 딸린 한적한 빌라. 어느 날, 편집장의 딸 줄리가 나타난다. 그는 사라가 호감을 가진 카페 종업원 프랭크를 유혹한다. 하지만 프랭크는 수영장에 핏자국만 남긴 채 사라지고 영화는 등장인물들을 놓고 긴박한 심리를 묘사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수영장’이란 공간의 매력</font></font>

수영장과 이를 둘러싸고 앉아 각자의 욕망을 내던지는 네 사람.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을 수 없다. 수영장은 익숙한 상징으로서의 공간이다. 피부에 와닿는 물의 감촉, 이질적인 호흡 방식, 수영장은 이질적이고 낯선 상태를 이야기한다. 반드시 누군가는 거기에 뛰어들고, 이내 물살을 일으킨다. 사건이 발생하는 거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끝도 없이 만들어질 수 있다. 네 사람 가운데 누구의 비중을 가장 중점적으로 둘지, 누구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그릴지만 나눠도 이야기는 벌써 네 갈래, 여덟 갈래로 퍼진다. 수영장을 어떤 공간에 놓느냐, 시대를 언제로 설정하느냐, 드라마·로맨스·미스터리·공포… 장르를 무엇으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무궁무진해진다.

그래서 어떤 작품을 오마주한 영화는 달라진 결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원작 과 거의 흡사한 스토리라인을 따르는 에서는 아름답고 부유한 주인공들 사이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난민들이 눈에 띈다. 이들은 영화에서 내내 신발 속에 들어간 돌멩이처럼 취급된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존재, 거슬리므로 퇴출당해야만 하는 존재.

난민들은 튀니지에서 건너오다 브로커들에 의해 바다로 내던져지고, 보트가 시시때때로 난파돼 바다에 빠져 죽는다. 그럼에도 판텔레리아섬에는 원주민보다 난민의 수가 더 많다. 난민 뉴스는 방송을 통해, 마을 사람들의 입을 통해 늘 전해지며 섬 전체를 먼지처럼 떠돈다. 해리의 딸 페넬로페가 폴을 유혹하던 시간, 난민들은 이들을 유일하게 지켜보는 눈이었다.

그런 가운데 한가로운 수영장을 사이에 두고 사랑의 작대기는 엉망으로 뒤얽힌다. 네 남녀의 관계는 욕망과 질투, 치정으로 인해 진창의 정점으로 치달아간다. 미묘한 경쟁, 갈구와 외면이 복잡한 화살표를 그릴 때쯤, 이야기는 드디어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간다. 감정이 격해진 해리와 폴이 한밤중 수영장에서 싸움을 한다. 해리가 죽는다.

살인 사건 조사를 위해 마리안, 폴, 페넬로페가 경찰서를 찾았을 때도 난민들은 등장한다. 이번에는 경찰서 밖 구금실에 갇혀 아우성치는 모습으로만 존재한다. 해리 살인 사건을 추적하던 경찰은 너무 쉽게 수사를 포기하고, 섬에 많은 난민들이 있다는 말만 마리안에게 흘린다. 우발적이긴 했지만 살인자 폴은 어떻게 됐을까. 영화는 폴과 마리안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키득거리며 웃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맨얼굴의 욕망이 겹겹이</font></font>

세상의 끝에 있을 법한 아름다운 섬, 크고 멋진 세계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적나라하고 포악한 맨얼굴을 양파처럼 겹겹이 드러낸다. 제각각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다가 비참하거나, 상처받거나, 죄책감 없는 결과를 얻은 이들 인물 중에 우리는 누구에게 자신을 대입해볼 수 있을까. 이 영화가 50년 되지 않는 세월 동안 세 번째 다른 방식으로 쓰이는 이유는 아마도 이 때문일 것 같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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