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에겐 고통스러운 관람일 수 있다. 이 영화가 할머니들의 뼈마디마다 들러붙어 있는 참혹한 기억을 되살려내고 있어서다. 그럼에도 조정래 감독은 이 영화가 여기까지 오는 데 힘을 준 할머니들에게 그 결과물을 “먼저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만약 할머니들이 ‘이 영화를 만들지 말라’고 하면 지금이라도 멈춰야 하는 영화이니까요.”
관람이 끝난 뒤 마이크를 쥔 강일출(87) 할머니의 손과 입술이 눈에 띌 정도로 바르르 떨렸다. 할머니는 “오늘은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결심이 어디로 갔는지….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어 울었다”고 했다. 강 할머니가 2001년 미술심리 치료 때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이란 그림이 이 영화에서 재현된다. 그림엔 일본군이 위안부 소녀들을 구덩이에 넣어 불로 태우던 것을 봤던 할머니의 기억이 담겨 있다. 강 할머니는 잊고 싶은 기억과 마주하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살아 있는 증언자’로서 사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저도 갈 날이 가까워졌어요. 죽으면 잊겠지. 그런데 내 속에 그대로 넣어두고 죽으면 이 문제(위안부)는 영원히 없어져버려. 난 당했지만 후손은 당하면 안 되잖아요.”
지난 8월15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나눔의집(경기도 광주)에서 광복절 70주년 행사와 영화 의 시사회가 열렸다. 조 감독은 영화 하이라이트와 촬영 과정을 소개한 다큐멘터리를 20분 남짓으로 편집한 영상을 이날 소개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오늘은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font></font>“2002년 나눔의 집에 와서 바보같이 모르고 있었던 고통의 역사를 알게 되었고,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 영화를 13년간 준비했습니다. 지금 저기 동상으로 계시는 할머니들도 지금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 감독이 상영 전 인사에서 말했다. 감독이 영화를 준비하며 만난 몇 분의 할머니들은 세상을 떠나 이제 나눔의집 입구에 동상으로 서 있다. 시사회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명확한 사과를 담지 않은 담화문을 발표한 이후 이뤄졌다.
이옥선(89) 할머니는 “우리가 ‘돈을 벌러 (위안부로) 갔다, 제 발로 갔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돈을 벌러 갔다면 왜 일본에 대고 ‘사죄하라, 배상하라’고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이날 모인 학생·시민들 앞에서 동그랗게 구부러진 등을 더 굽혀 버선을 벗었다. 일본군이 휘두른 칼에 베인 “(다리의) 흉터”라며 말을 이었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이 전쟁이 끝나야 해요. 우린 아직 해방을 보지 못했습니다.”
“부모·형제도 모르게 (중국에 있는 위안소로) 끌려갔다”던 이옥선 할머니의 당시 나이가 16살이었다.
에서 위안부 소녀 역을 맡은 배우들은 꽃봉오리 같은 나이에 끌려간 실제 소녀들의 슬픔에 다가가야 했다. 영화에선 위안소로 끌려온 한 어린 소녀가 “여기가 어디요?”라고 묻지만 아무도 답을 주지 않는다. 곧 들이닥친 일본군의 무리가 자기 몸 위로 기어오르는 순간을 경험하고서야 이곳이 생지옥임을 알게 된다. 배우들은 그 소녀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해 위안소 촬영 세트장에서 몸이 추울 정도로 차가운 기운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위안부 소녀 역을 맡은 한 배우는 “위안소 세트장에 들어가는 순간 그 당시의 모습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지는 듯해서 서늘하고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어요. 이 공간(세트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두렵고 위협적이었어요”라고 얘기했다. 다른 여배우는 “단순히 위안소 세트장이 추운 게 아니었어요. 기분까지 이상해지더라고요. 마음도 불안하고. 누군가 날 건드리면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어요”라고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있는 것만으로 두렵고 위협적”</font></font>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의 장면을 재현하는 것도 배우들에겐 또 다른 고통이었다. 일본군 장교 역을 맡은 정무성씨는 소녀들을 죽이거나 불태우는 잔혹한 순간을 연기해야 했다.
“굉장히 힘들었어요. 소녀들을 죽이거나 할 때 힘이 들고 눈물이 나올 뻔했는데 (참고) 연기를 계속해야 했으니까요. (구덩이에서 불로 태우는) 소각 촬영이 끝나자마자 3일 정도는 죽었던 소녀들이 꿈에 나타났죠.”
정무성씨는 재일동포다. 한-일 간의 민감한 문제를 다룬 이 영화에 대한 일본 극우세력의 강경 대응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그는 이 영화 출연에 용기를 냈다. 제작비에 어려움을 겪는 을 위해 제작비 투자를 하기도 했다.
현재 은 시민들의 후원과 제작진의 대출 등으로 제작비를 조달해 1차 촬영을 끝냈다. 하지만 후반작업(편집·색보정·컴퓨터그래픽·사운드 작업 등)을 위한 제작비가 없어 은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후반작업비 마련과 극장 상영을 위한 뉴스펀딩(프로젝트명 <font color="#991900">‘우리 딸, 이제 집에 가자’</font> )을 지난 8월12일부터 시작했다. 펀딩 시작 5일 만에 1억원이 넘게 모였다.
조정래 감독은 “타지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얼마나 원통하시겠습니까? 이 영화가 한 번 상영될 때마다 돌아가신 넋이 한 분씩 돌아온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제 목숨을 바쳐서 이 영화가 완성되는 날까지 쉬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은 어린 나이에 끌려간 소녀들의 과거 이야기와 함께, 현재를 살아가는 16살 무녀가 타지에서 숨진 위안부 소녀들의 혼을 불러내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비석에 새겨진 ‘못 다 핀 소녀’들의 통한</font></font>강일출 할머니는 의 미니 시사회가 있던 날, 위안부 문제가 풀리지 않는 현실에 답답해하며 가슴 아픈 말을 그곳에 모인 시민들에게 꺼내놓았다.
“우리가 그때 태어나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우리가 미안합니다.”
나눔의집 뜰엔 이런 한을 품고 세상을 먼저 떠난 할머니들의 넋을 기리는 비석이 여러 개 있다. 할머니들의 각각의 비석에 새겨진 글엔 ‘못 다 핀 소녀’들의 통한이 서려 있다.
“한 많은 생을 살다가 여기 잠들다.”
“이승에서 못다 한 웃음, 저승에서 활짝 웃으리.”
“나는 일본의 전쟁범죄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타국만리 끌려가 밤낮없이 짓밟혔네. 오늘도 아리랑 눈물 솟는 소녀 아리랑. 내 꿈을 돌려주오. 내 청춘을 돌려주오.”
광주(경기도)=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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