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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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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환상 사이, <어셈블리>

생생한 국회 풍경 속에 판타지적 영웅담을 녹이면서도 국회 밖 현실을 보여주며 일상과 생존의 정치를 환기하다
등록 2015-08-14 15:15 수정 2020-05-03 04:28
네이버 tvcast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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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정치드라마 열풍이 일던 시절이 있었다. 최초의 기록은 1981년 방영된 (MBC)이다. 유신 체제의 종식과 함께 야심차게 등장했음에도 연출자가 안기부에 불려가는 사태까지 빚어내며 조기 종영을 당하고 만 비운의 드라마였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야 더 많은 작품이 등장하게 된다. ‘공화국 시리즈’가 부활했고, (SBS) 신드롬이 기폭제가 되어 광주 민주화운동처럼 그동안 금기시되던 정치적 소재까지 과감하게 다루는 작품들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맞물려 현실정치에 대해 더 높아진 관심으로 시청률 특수를 누린 (SBS)와 (MBC)의 쌍끌이 흥행은 그중 가장 유명한 사례다.

하지만 정치드라마의 역사는 곧 수난의 역사이기도 했다. 실존 인물들과 유족들의 항의, 고증 오류 등 잦은 외압과 논란에 시달렸고 상당수의 작품이 예정보다 빨리 종영됐다. 2005년 방영된 ‘공화국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 이 당시 정권 핵심 인물들의 비난 성명 사태까지 불러오며 결국 10회분이나 축소돼 종영하고 만 일화는 민주화 체제 이후에도 정치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금기와 통제의 대상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근래 등장한 정치 소재 드라마들 대부분이 본격 정치극이라기보다는 판타지 장르에 가까운 이유도 거기에 있다. 가령 2009년 작품 과 2013년 작품 은 정치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했고, 2010년 최고 시청률 드라마 중 하나인 역시 멜로 요소가 강했다. 이들 작품은 주로 이상적이고 인간적인 리더를 내세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영웅성장담의 성격을 띠며, 정교한 정치 비판이나 풍자 대신 민주주의의 희망을 반영한 동화적 판타지의 결말을 지향한다. 이러한 성격은 정치적 외압 외에도 외환위기 이후 부쩍 두드러진 정치 혐오의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방영을 시작한 (KBS)는 초기 정치드라마의 현실성과 최근 정치드라마의 판타지적 성격을 조화시킨 작품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지난해 정치사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의 정현민 작가가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경험을 살려 정치의 속성과 국회의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측면에서 사실성이 돋보이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의로운 정치인의 성장기라는 면에서는 또 하나의 영웅 판타지를 그려나간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생존이 곧 정치가 된 시대를 말해주는 드라마다. 주인공 진상필(정재영)은 한 정치권 실세의 계략에 의해 국회에 입성했지만, 그 전부터 이미 생존의 정치 한복판에 위치해왔다. 한국수리조선의 정리해고로 3년 동안이나 복직투쟁을 펼쳐온 그와 동료들이 진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노동해방’이라는 대의 이전에 그들이 “지 맘대로 써먹다가 지 맘대로 길바닥에 내버리는 쓰레기가 아니고 인간이라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정리해고는 생계와 더불어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마저 짓밟는 행위라는 점에서 그들의 저항은 인간에 대한 증명이자 생존의 정치가 되는 것이다.

는 국회 내부를 정면으로 해부함과 동시에 국회 바깥의 일상에도 정치가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국회 밖 거리에는 늘 시위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TV나 인터넷을 통해 정치인들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곳곳에 개입한다. 기성 정치인들의 권력의지가 이 시민들의 생존의지와 팽팽하게 맞붙는 것이 이 드라마의 최대 묘미다. 진상필의 성장기가 마냥 판타지로 보이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의 의원실에 전문 보좌관들만이 아니라 해고노동자, 파산한 자영업자, ‘오포세대’를 대변하는 취업지망생 등이 고르게 포진된 것은 이 작품이 개인적 영웅담을 넘어 이들 모두의 생존 정치담이 될 것임을 말해준다. 그리하여 정치란 저 먼 권력자들의 세계가 아닌 바로 우리의 일상에 있다고 말이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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