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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호흡기가 된 기내식

좁은 공간 공유하는 기내에서는 평소보다 조금 더 남을 배려하며 행동하면 조금이라도 덜 답답하지 않을까
등록 2015-06-27 14:49 수정 2020-05-03 04:28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한동안 같이 있어야 하는 비행에서 옆좌석에 누가 탔는가는 그 시간의 고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특히 장거리 비행에서는 말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옆자리에 아무도 타지 않는 것이긴 하다.
몇 년 전 동북아의 한 대도시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기내에서의 일이다. 급작스럽게 일정을 변경했고 예약이 이미 꽉 찬 항공편이어서 빈자리가 나길 기원하며 공항에서 대기 중이었다. 천우신조로 한 자리가 비어서 잡아탈 수 있었는데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지 않는 복도열의 한가운데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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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렀건만 옆좌석에 있던 사람은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이 날 정도로 2시간의 공포를 선사해주었다. 그의 머리는 그해 들어서 몇 번이나 감았을까 생각해볼 정도로 포마드는 저리 가라였다. 머리카락 사이사이에는 엄지손톱만 한 비듬이 가득했으며 고개를 돌릴 때마다 후드득후드득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물론 그의 체취는 멀찌감치 기내에 들어선 순간 느껴질 정도로 강렬했다. 착석하기 위해 그에게 인사를 하고 잠깐 비켜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가 입을 떼는 순간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차원의 향기를 맡았다. 후각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적응돼서 무뎌진다는데, 왜 그 상황에서는 절대로 무뎌지지 않고 고통은 더욱 가중되는지 코만 탓했다.

기내식이 나오면 음식 냄새로 조금 가려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는 기내식이 나오자 가방에서 반찬통 여러 개를 꺼내 기내식 위에다 음식물을 척척 올려놓기 시작했는데, 하나같이 그 나라 음식들 중에서도 냄새가 강하고 이방인이 맡았을 때 거북스러울 수 있는 음식들이었다. 체취와 음식물 냄새가 결합하니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고, 결국 나는 기내식을 하나도 먹지 못한 채 내 코에 가까이 가져가 기내식을 일종의 산소호흡기처럼 쓰고 말았다. 그의 기나긴 식사가 끝나고 승무원들이 한국 입국 신고서를 나눠주는 때였다. 승무원은 그에게 환승 고객인지, 최종 목적지가 어딘지를 물었다. 호방한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그 순간 눈이 캄캄해지면서 10시간이 넘는 비행 동안 옆자리에 앉아 있을 이름 모를 사람이 안타까웠다. 그의 도시락에 음식이 아주 많이 남아 있는 이유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극단적인 악몽이었겠지만 기내라는 환경 때문에 우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할 일들이 있다.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원칙일 것이다. 좌석 등받이를 내릴 때는 뒷사람이 노트북을 올려놓고 있거나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눈인사로 사인을 주며 천천히 좌석을 뒤로 밀기, 팔걸이는 가급적 서로 빈 공간으로 남겨두거나 앞부분만 혹은 뒷부분만 사용해 옆사람과 공유하기는 기본 매너다. 한국의 공중화장실에서 가장 무서운 변기는 무엇이 들어 있을지 모르는 뚜껑이 닫힌 변기지만 기내 화장실은 썼던 흔적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깨끗이 쓰고 뚜껑도 닫고 세면대에 남아 있는 물기는 손을 닦은 휴지로 한번 슥 닦아 없애고, 특히 남자는 소변이 튄 변기를 그대로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깨끗이 닦아주는 것이 자신과 타인을 위한 일이다.

식사 서비스 뒤 기내가 어두워지면 다른 사람들이 편히 잘 수 있도록 창문을 닫아두는 것도 중요하며 승무원 호출 버튼을 누르기보다는 승무원이 지나갈 때 눈짓, 고갯짓, 혹은 손짓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예의인 것 같다. 어차피 답답하고 피곤한 시간이라면 타인을 배려하는 게 서로의 스트레스 총량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비단 그게 기내에서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규호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 인류학과 박사과정*이규호씨의 ‘항공덕후의 항공여행수다대’ 마지막 글입니다. 그동안 이 칼럼을 애독해주신 독자님들과 좋은 글을 보내주신 필자 이규호씨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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