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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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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버섯같은 프로그램이라니!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원초적 재미를 진하게 우려낸 종편 방송계 스테디셀러 <나는 자연인이다>
등록 2015-06-27 14:43 수정 2020-05-03 04:28
MBN 화면 갈무리

MBN 화면 갈무리

버섯은 참 묘하다. 쇠고기랑 볶으면 고기 맛이 나고, 해산물과 비비면 바다 냄새가 난다. 상큼한 채소인 척하다 코린 치즈로 변하며 온갖 재료와 농밀하게 노닌다. 나의 TV엔 이런 버섯 같은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그 주인공도 인적 드문 산속에 숨어 산다. 그의 진심을 캐내려면 사흘쯤은 속세를 떠나 먹고 자고 굴러야 한다.

모르는 사람은 아예 모르고, 아는 사람은 아주 푹 빠져 있다. MBN의 는 종합편성채널 최고의 스테디셀러다. 150회가 머지않은 장수 프로그램으로, 때론 시청률 5%를 넘기며 등 동시간대 지상파 드라마들을 제치기도 했다. 핵심 시청자층이 50대 이상 남성이라는 점은 독보적인 포지션이다. 시청자도 꾸준하고 내용도 한결같다. 윤택, 이승윤이 번갈아 산속에 혼자 사는 ‘자연인’을 만나 사흘 동안 함께 생활하다가 돌아온다. 그게 전부다.

내가 를 버섯 같다고 한 이유는, 그 안에서 요즘 인기 있는 온갖 프로그램들의 원초적인 맛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은 하룻밤 야외 취침한다고 호들갑을 떤다. 가소롭다. 자연인은 20~30년 동안 산속에서 살아왔다. 식스팩 복근 따위 없어도, 무슨 벌칙이라며 밀고 당기고 하지 않아도, 홀랑 벗고 얼음장 같은 폭포수에 입수한다. 윤택도 출렁거리는 뱃살을 까 보이며 처음 만난 자연인과 맨살을 맞댄다. 그러곤 자연인이 ‘천연 이태리 타월’이라고 내미는 솔잎 때수건에 기겁을 한다.

에선 밭에서 채소 따서 강된장찌개 해먹었다고 유세를 떤다. 자연인은 석이버섯 따서 쇠고기 천엽 맛, 미역 맛을 낸다. ‘병든 놈이 맷돌 돌린다’며 천천히 콩 갈아서 간수 넣고 손두부를 만들고, 눈 맞은 감나무에서 홍시를 따서 아이스크림 대신 먹는다. 한밤중에 퉁가리 낚시 하고, 도라지붕어찜과 민물고기튀김에 배를 두드린다. 어디서나 칡이 빠지지 않는데, 자연인마다 레시피도 다르다. 동그랗고 넓적하게 칡구이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칡나무를 깍둑썰기 해서 즙을 내 마시기도 한다.

밍키, 산체 같은 개 친구가 빠지면 서운할 거다. 그런데 이쪽 개들은 스킨십의 강도가 다르다. 주인 따라 배 타고 낚시 간다고 신나 있는 개들. 그런데 주인이 갑자기 그놈들을 번쩍 들어 강에 내던진다. “목욕시킬 때가 되었어.” 개들은 부지런히 네발을 놀려 뭍으로 올라온다. 원망의 눈초리도 구시렁대는 개 소리도 없다.

“이유는 무슨 이유, 사람하고 인연 끊으려고 들어왔지요.” 자연인들 대부분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 마음을 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어떤 이는 무슨 말에도 대답을 않고 벌통만 쳐다본다. 어디선가 말벌이 날아오면 냅다 달려간다. 방송이고 뭐고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윤택과 이승윤은 살갑게 달라붙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온갖 궂은일을 함께 하며 ‘극한 알바’를 찜 쪄 먹을 사흘을 보내기도 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숙원사업이던 작업을 부탁하는 자연인도 있다. 귀여운 투덜거림을 곁들여 슬슬 손을 맞추면 점점 그 마음이 열린다. 20년 전 두 살짜리 아이를 두고 산에 들어온 사연, 몸 다치고 사기당해 사람에 대한 믿음을 내던진 이야기… 하룻밤 모닥불 피워놓고 ‘힐링캠프’ 운운하는 게 부끄러워진다.

멀리 을 찾아가지 않아도 ‘자연인의 법칙’을 배울 수 있다. 진정한 유기농 자급자족은 생존만이 아니라 유희에까지 이어진다. 나무 사이 그물을 걸어 그네를 만들고, 솔방울을 막대기로 쳐 골프를 즐긴다. 그러나 방송이 끝날 때쯤, 자연인은 혼자라는 걸 새삼 깨달을 수밖에 없다. “택아, 내려가지 말고 여기서 나랑 살자.” 그 말이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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