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이 온탕이라면 ‘확률가족’은 냉탕이죠.”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2월15일까지 열리는 ‘즐거운 나의 집’ 전시에서 ‘확률가족’을 기획·제작한 옵티컬레이스의 박재현씨는 두 전시의 차이를 냉탕과 온탕으로 설명했다. 전시는 제목처럼 즐겁지만은 않다. 전시관에서 처음 맞닥뜨리는 제1전시는 ‘살았던 집’을 주제로 대한민국 중산층 가정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익숙하고도 보편적인’ 거실·식탁·침실·화장실을 보여준다. 온탕이다. 온탕이 끝나면 냉탕이 시작된다. ‘확률가족’ 전시는 82만5천원부터 700만원까지 10단계로 나눠진 문에서 시작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이너스와 플러스의 향연이 펼쳐진다. 부모의 자산에 따라 내가 가질 수 있는 집, 그 집을 위해 받을 수 있는 대출액수가 빼곡하다.
이 차가운 전시는 누구의 작품일까. 전시를 기획한 건 ‘옵티컬레이스’라는 임시변통의 시각창작집단이다. 디자이너인 배민기·김형재, 도시와 교통 인프라 연구자 전현우, 부동산 연구자 박재현 4명으로 구성돼 있다. 프로젝트에 따라 부분적으로 결합해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들은 디자이너·논객 등이 모여 만드는 문화잡지 를 만드는 과정에서 만났다. 한국에서 다이어그램, 그래프 등을 통해 통계를 시각화해 메시지를 표현하는 ‘시각창작집단’은 드물다. 아니, 옵티컬레이스가 처음이다.
‘확률가족’은 이들이 뭉쳐서 만들어낸 세 번째 전시다. 2013년 라디오 방송에서 매 시간 57분마다 흘러나오는 ‘57분 교통정보’를 이용해 서울의 주요 간선도로를 끼고 있는 ‘한강’의 일면을 표현한 의 도록 작업을 했다. 옵티컬레이스는 ‘57분 교통정보’의 시그널송 제목에서 따왔다. 2014년에는 아파트 평당 가격 등 부동산 가치와 지역 교통 현황의 관계를 도표화하고 신도시 거주자들의 생활 패턴을 분석한 ‘세 도시 이야기’라는 전시를 했다.
‘확률가족’은 ‘세 도시 이야기’와 병렬적 관계에 있는 작품이다. ‘세 도시 이야기’가 신도시에 제일 먼저, 가장 많이 들어갔던 베이비붐 세대의 이야기라면, ‘확률가족’은 베이비붐 세대의 자식인 ‘에코붐 세대’(에코세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에코세대란 1979~92년에 태어난 이들이다. ‘확률가족’은 에코세대가 월급이 적힌 발판을 밟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모 세대의 자산에 따라 서울 은평구의 단독·다가구 주택에서 살 수 있는지, 서초구의 10억원짜리 아파트에 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이 시각화한 현실에 따르면, 한 달에 700만원을 버는 에코세대는 부모의 수입이 연 1천만원 내외이고 집 한 채를 소유하고 있다면 최대로 대출 가능한 돈 외에 3억 정도 더 있어야 강남의 전세 아파트에 살 수 있다. 이 경우 부모에게 증여받는 것은 마이너스 재산이다. 집 한 채와 연 1천만원 내외 소득을 가진 부모가 은퇴한 뒤 25년간 들어가는 평균 최소 노후자금과 최소 의료비가 3억2345만원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자산 따라 달라지는 나의 집‘확률가족’은 왜 베이비붐 세대와 에코세대에 초점을 맞췄을까. “베이비붐 세대는 상당히 재미있는 세대예요. 가족계획이라는 걸로 보면 베이비붐 세대는 가족계획의 공백기에 태어나 철저한 가족계획을 세워 자식을 낳은 세대거든요.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핵가족 모델이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요. 베이비붐 세대의 90%가 결혼했고 지금의 ‘4인가족 문화’ 역시 그들에게서 비롯했어요.” 박재현씨가 말했다. 그러나 에코세대와 베이비붐 세대의 간극은 매우 크다. “베이비부머들이 처음 중산층이 되고 4인 가족을 이루고 사회적·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반면, 그 자녀인 에코세대는 돌출된 사회적 정체성을 갖고 있지 못해요. 결혼을 안 했다기보다는 ‘못’했죠.” 통계청이 2012년 발표한 ‘베이비부머 및 에코세대의 인구·사회적 특성 분석’에 따르면, 25살이 된 시점의 혼인 비율이 베이비붐 세대는 54.5%였지만 에코세대는 8.3%로 크게 줄었다. 출생아 수도 기혼여성의 경우 베이비붐 세대는 평균 2.04명을 낳았지만 에코세대는 1명만 낳았다.
에코세대의 정체성 자리에는 점점 ‘포기’가 들어차고 있다. 에코세대를 부르는 다른 말은 ‘삼포세대’다.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했다는 의미다. 삼포세대는 이제 ‘오포세대’로 전진하고 있다. 취업과 내 집 마련까지 포기했다는 자조 섞인 조어다.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세대. 그렇게 베이비붐 세대가 자신들의 ‘시대’를 갖고 있다면, 에코세대는 그들의 ‘메아리’ 정도로만 인식된다.
스스로가 에코세대인 옵티컬레이스는 전시를 통해 현실을 차갑게 보여준다. “사회가 에코세대를 이야기할 때 꺼내는 주제는 ‘왜 결혼을 안 하지’ ‘왜 집을 안 사지’ 그 두 가지예요. 그런데 현실의 에코세대는 결혼도, 내 집 마련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상황에 놓여 있죠. 우리는 이 작업을 통해 단순하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지금 상황이 이런데 어쩌라는 거냐.’ 원판 위에 올라서서 현실을 보면 답은 나오죠. 결혼할 수도 없고, 집을 살 수도 없다는.”
전시장에 선 어떤 ‘에코세대’는 숫자로 표현된 현실에서 공포를 본다. 애인과 함께 전시를 관람한 이아무개(25)씨는 처음 전시장으로 들어왔을 때의 기분을 “어안이 벙벙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셈을 해봐도 원판의 ‘마이너스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씨의 부모님은 지방에서 건축업과 교직에 종사하지만, 좌표상으로 이씨는 부모님에게서 최소 1억6745만원의 마이너스 부채를 물려받게 된다. 부모인 베이비붐 세대가 독립하는 자녀에게 마이너스 부채를 물려주지 않으려면 최소한 여러 채의 주택을 소유하고 5천만원 내외의 연소득을 올려야 한다. 밝고 넓은 공간을 가득 메운 좌표와 숫자들이 이씨에게 위협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러나 이 절망에 대해 옵티컬레이스는 “자신이 선 자리에만 갇히지 말고 전체를 봐주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바닥을 보면 마이너스의 영역이 매우 넓어요. 처음에는 자기가 어디에 속하는지 보겠죠. 하지만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과 같은 곳에 서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봐주길 바랐어요. 나랑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내 세대 중 얼마만큼 되는지. 이건 공동의 문제니까요.” 같은 마이너스의 원 안에 서 있는 에코세대가 ‘함께’ 문제를 인식하고 ‘함께’ 대응하면 어떨까. 차가운 전시 ‘확률가족’은 따뜻한 연대를 꿈꾸고 있었다.
천다민 인턴기자 noir-nd@naver.com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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