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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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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가족은 더 이상 없다

지금 여기 가족의 진실을 담은 두 편의 영화
<만찬>과 <마이 플레이스>
등록 2014-03-01 14:50 수정 2020-05-03 04:27

요즘 TV 예능은 육아 프로그램으로 넘쳐난다. 토크쇼엔 유명인들이 가족 단위로 출연해 가정사를 말한다. 본래 가족의 쇼윈도 역할을 해온 ‘홈드라마’와 유명인들의 집을 보여주던 아침 프로그램에 더해, 이제 TV는 남의 가정을 엿보는 창이 되었다. 하지만 TV 속 가족은 TV 밖 가족의 진실을 담지 않는다. 그것은 보고 싶거나 상상하고픈 가족이다. 여기 가족의 진실을 담은 두 편의 영화가 있다. 과 는 한국 사회의 가족이 처한 현실과 미래를 담담하게 조망한다.

가족이 무너진 이유, ‘수완이 없어서’

은 중산층 하부 가정의 위기를 장남의 위치에서 재구성해 보여준다. 여동생은 이혼한 뒤 직장을 다니며 자폐 증세가 있는 아들을 키운다. 갑자기 실직당한 장남 인철은 근교에서 요식업을 할 구상이다. 취업준비생인 남동생은 여자친구와 동거하며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대리운전을 한다. 부모님은 장남에게 받던 생활비가 끊기자 불안해한다. 위태롭지만 가까스로 유지되던 이들 가정에 사고가 날아든다. 남동생이 대리운전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는 형까지 불러들이고 인철은 동생을 도와 범죄를 저지른다. 인철은 사건을 봉합하며 일상을 다독이려 하지만 심장병을 앓던 여동생이 갑자기 죽고 남동생은 죄의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유산을 노린 여동생의 전남편은 아이를 데려가 학대한다. 불임인 인철 부부는 생부에게 유산을 넘기고, 아이를 데려와 자기 아들로 입양한다. 눈 덮인 인철의 전원주택에서 새 출발을 하는 가족이 눈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짧은 행복의 순간. 그러나 그들이 내려간 눈길 위로 형사들이 올라온다. 몇 년 전, 가족이 김치찌개를 먹으며 장남은 취직했고 남동생은 내년이면 졸업이고 여동생은 올해 결혼할 테니 걱정은 끝났다고 말하던 회상 장면이 에필로그로 이어진다. 그들이 꿈꾸었던 미래는 이렇게 조각났다. 은 소박한 만찬마저 불가능해진 가족의 신산한 현실을 비춘다.

첩첩이 쌓인 위기에 봉착한 가부장제 가족과 해체된 글로벌 유랑 가족. 두 편의 영화 <만찬>(왼쪽)과 <마이 플레이스>는 가족 판타지를 깨고 한국 사회에서 가족이 처한 현실과 미래를 담담하게 들여다본다.인디스토리 제공,KT&G 상상마당 제공

첩첩이 쌓인 위기에 봉착한 가부장제 가족과 해체된 글로벌 유랑 가족. 두 편의 영화 <만찬>(왼쪽)과 <마이 플레이스>는 가족 판타지를 깨고 한국 사회에서 가족이 처한 현실과 미래를 담담하게 들여다본다.인디스토리 제공,KT&G 상상마당 제공

영화는 이혼, 싱글맘, 실직, 청년실업, 노인빈곤, 동거, 자폐증, 불임, 아동학대 등의 키워드를 한 가족에게 쌓는다. 이들은 특별히 가난하지도 넉넉하지도 않으며, 특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다만 “수완이 없다”. 동생의 사고는 섬약함 때문이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손님을 증오했고, 손님 지갑을 탐했다는 결벽적 죄의식으로 인해 자신을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못하고 결국 사람을 죽인다. 인철은 입양 보내야 한다고 내치던 여동생의 아들을 결국 자신이 입양한다. 이들은 자기 죄를 모른 척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뻔뻔함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그 뻔뻔함이 곧 손님이 말한 ‘수완’이다. ‘뻔뻔함’과 ‘수완’이 없는 자들은 몰락할 수밖에 없는 정글 같은 대한민국에서, 가족은 더 이상 만찬을 즐길 수 없다.

는 1990년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역이민 온 감독의 가족사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학력과 성차별로 한국에서 변변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던 부모는 각각 캐나다로 이주해 그곳에서 만나 가정을 꾸린다. 하지만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복판에서 힘든 시기를 겪는 외가와 함께하길 원했던 어머니로 인해 가족은 한국으로 이주한다. 초등 5학년이던 감독은 그럭저럭 적응했지만, 여동생은 부모님과 한국 사회에 격렬히 저항하다가 성인이 되자 혼자 캐나다로 가버린다. 유학 중 임신해 자발적 비혼모가 돼 한국에 돌아온 여동생은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부모님과 극적으로 화해하고, 캐나다로 가서 다시 삶을 꾸려간다. 평생 정치를 꿈꿨지만 기득권이 없어 안착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몽골에서 봉사활동을 통해 보람을 찾는다. 어머니는 캐나다로 가서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는 딸을 돕는다.

근대 가족의 종언, 먼저 온 가족의 미래

애써 갈등을 유보하며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감독은 뒤늦게 직장을 그만두고 영화 일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가족을 둘러본다. 그의 가정은 힘들 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마이 플레이스’가 아니다. 장소적 의미의 가정은 해체돼버렸고 그들은 ‘글로벌 유랑가족’이 되어 지구 위를 떠돈다. 가족을 설명하라는 아들의 유치원 숙제에 동생이 난감해하듯, 이들 가족은 경계조차 모호하다. 고정 멤버와 간간이 결합하는 멤버 중 어디까지 포함시켜야 할지 알 수 없다. 폐쇄적인 한국 사회에 착근하지 못하고 다시 튕겨져나간 ‘글로벌 유랑가족’이자, 여성이 남편 대신 사회복지와 모계가족의 지원을 받으며 아이를 키우는 ‘착탈식 모계가족’인 이들은 ‘먼저 온 가족의 미래’다.

은 가부장제 가족의 마지막 보루인 장남의 책임감과 희생으로도 ‘우리가 알던 가족’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을 처연히 보여준다. 는 ‘글로벌 유랑가족’과 ‘착탈식 모계가족’을 통해, 장소로서의 가족이 아닌 관계로서의 가족을 재구조화해 보여준다. 저출산에 대한 반편향적 징후로 육아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가운데, 두 영화가 던지는 ‘근대 가족의 종언’과 ‘미래의 가족상’이란 화두는 곰곰이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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