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17일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투쟁 2451일째다. 2천 일이 넘는 시간 중 딱 9일 동안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은 서울 대학로 혜화동 1번지 소극장에서 연극배우로 무대에 선다. 이 연극은 ‘막무가내종합예술집단 진동젤리’(이하 진동젤리)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진동젤리는 연극 소개에서 이 작업의 목적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투쟁을 이슈화하기 위해서고, 두 번째는 연극 만드는 과정을 즐기기 위해서다. 두 번의 공연 모두 관객이 꽉 찼고, 배우들은 커튼콜에서 수줍게 웃었다.
갑자기 싸우고 서로를 이해하고여전히 콜트·콜텍의 투쟁 과정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연극을 통해 그동안 만날 수 없었던 관계의 면들이 생긴 듯하다. 특히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연극 연습에 참여하면서 집회 현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배우 혹은 인간으로서의 면면을 접할 수 있었다. 필자는 에 거트루드 역을 맡기도 했다.
처음 천막농성장에서 연극 연습을 시작했을 때는 대본읽기를 했는데, 모두들 자기 대사를 읽고 외우느라 정신없었다. 배우 5명 모두 연극 무대가 처음이었으므로 이란 희곡을 분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대사에 담긴 의도와 감정을 얘기하고, 햄릿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을 이야기하며 함께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햄릿, 클로디어스 왕, 거트루드 왕비, 오필리어, 폴로니우스의 마음은 어떤 상태이고 특히 각 인물들의 관계는 어떠한지에 관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연기 연습을 해나갔다. 그 과정에서 신기한 건, 연기를 하면 할수록 자신에 대해, 혹은 나와 연기하는 다른 배우 사이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인근 콜텍노조 지회장은 클로디어스 왕 역을 맡았는데, 평소 지회장이라는 대표로서의 역할이 갖는 습관 탓인지, 왕 특유의 위엄 있는 어조가 잘 어울렸고, 임재춘 조합원은 내향적이고 섬세한 성격을 가졌서인지 오필리어의 정서와 감정 표현에 능숙했다. 햄릿의 증오, 애증의 거친 파도 같은 감정은 장석천 조합원의 눈빛 연기에서 볼 수 있다. 폴로니우스의 수다 장면은 김경봉 조합원의 정확한 발음과 부단한 연습 과정을 통해 관객이 연극을 보면서 웃는 장면으로 살아났다.
이 공연에 대해 ‘왜 햄릿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은데, 진동젤리는 이 유명한 작품이고 연극 자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은 그것에서 더 나아가 이라는 작품과 부당 해고를 당한 현재의 상황을 연결지어 해석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클로디어스가 선왕을 죽이고 왕의 자리를 차지해 왕비를 빼앗는 과정이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이다. 이런 다양한 해석들과 기타노동자들의 빼어난(?) 연기에 의해 셰익스피어의 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으로 재탄생했다.
연극 연습과 무대 공연에서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는 계속 싸우고 있다.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자신(타자)과 관계를 맺는 연습과 훈련이었다. 연기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다른 배우들과의 관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엇을 못하는지, 그동안 어떤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서 살아왔는지, 신체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은 어떠한지 등을 적나라하게 경험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에너지를 주느냐에 따라 연기가 달라지는데, 상대방이나 내가 감정을 전달해주지 못하면 연기를 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연습 과정에서 소소한 갈등이 발생한다. “네가 이렇게 하니까 내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지”라고 상대방을 탓하거나, “난 표현을 하고 있는데 왜 드러나지 않지?”라고 생각하며 속상해하는 상황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연습 과정에서 평소 관계들에서 존재했던 감정이 드러나는데, 일상에서 애써 표현하지 않았던 감정을 보게 되면서 울컥 울게 되거나 서로 싸우게 되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7년이라는 거리에서의 시간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을까? 감히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 시간은 말로 표현되기 어려운, 다양한 감정선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작품 에 있는 죄책감, 분노, 공포, 두려움, 슬픔, 연민 등은 어쩌면 지금 해고노동자들이 처한 감정과 비슷해 보인다. 단절되고 고립된 해고노동자의 목소리와 몸짓이 대학로 연극무대에 섰다. 첫 무대에 설 때 연출팀이 이렇게 말했다. 무대에서 믿을 것은 파트너밖에 없다고. 무대에서 어떤 실수가 나오면 그것은 한 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 모두가 만든 것이기에 함께 넘어가야 한다고. 상대 배우가 갑자기 대사를 잊어버리면 다른 배우가 도우면서 함께 넘어가고, 상대 배우의 대사와 몸짓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극을 만들 수 있다고 말이다. 무대에서 내 대사만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연기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온몸으로 느끼고 반응하면, 그때 드디어 ‘극’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천천히 알아가고 있다.
은 비극이지만 현실은주인공 햄릿 역할을 맡은 장석천 조합원이 이런 말을 했다. 은 모두의 죽음, 비극으로 끝나지만 콜트·콜텍 투쟁은 해피엔딩으로 끝내겠다고. 투쟁을 해피엔딩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함께 세상이라는 무대에 섰다. 이 무대에서 서로 느끼고 반응한다면, 온몸을 다해 사랑하고 표현한다면, 만들 수 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연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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