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기자는 ‘어두운 진실’ 앞에 눈감는 게 옳다?

<한겨레> 최성진 기자의 통비법 위반, 징역 1년·자격정지 1년 구형… 3월19일
2차 공판 한홍구 역사 강의부터 7월5일 검사 구형 나온 5차 공판까지의 기록
등록 2013-07-10 10:55 수정 2020-05-03 04:27
황진미씨는 최성진 기자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공판을 빠짐없이 ‘관람’했습니다. 공판이 다룬 사건은 짧게 요약하자면 지난해 10월8일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이 만나 정수장학회 소유의 MBC 지분을 매각해 그 자금에 대한 이자로 부산·경남 지역 ‘반값 등록금’ 사업에 쓰겠 다고 10월19일에 발표하자고 모의하는 장면을 포착해 폭로한 일입니다. 황씨가 관람기를 이미 쓴 바 있는 2 월21일 1차 공판 (‘통비법 위반에 10개월 통화기록이 증거?’) 이후 2차 공판부터 최근 7월2일 5차 공판까지 의 관람기를 보내왔습니다. _편집자

3월19일 서울지방법원 513호에서 열린 2 차 공판에서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증 인으로 나와 정수장학회의 역사를 들려주 었다. “5·16 후 와 MBC를 소유 한 김지태에게 강제 헌납받아 ‘5·16 장학 회’를 만들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이사 진이 박정희 측근으로 바뀌어 박정희 일가 의 사유재산처럼 되었다. 10·26 후 전두환 이 5·16 장학회가 가진 MBC 주식의 70% 를 KBS에 넘겨 나중에 방송문화진흥회(방 문진)의 소유가 되게 하고, 30%는 박정희 유족 몫으로 장학회에 남겨두었다. 장학회 는 ‘정수장학회’로 개명했다”는 기둥 줄거리부터 2011년 에 정수장학회 비 판 기사를 실은 기자를 사장이 징계하고 윤 전기를 내려버린 사건까지, ‘정수장학회로 본 한국현대사’ 강의쯤 되겠다. 정수장학회 가 강탈 재산이라는 건 알았지만, 규모나 영향력이 이렇게 큰 줄 미처 몰랐다. 그런데 왜 장학재단이 언론사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걸까. MBC 지분 30%를 소유하는 건 대주 주로서 영향을 미칠 수도 없고 처분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데, 이건 누구에게 득이 되는 시스템일까.

검사가 한홍구에게 “MBC 지분을 파는 게 가능한지”를 물었다. 그러자 변호인은 “그 것은 최필립·이진숙에게 물어보면 될 것 같 다”고 낚아챘다. 판사는 두 사람을 소환하 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변호인은 “지분 매각도 방문진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고, 상장도 시일이 걸리는데, 10월19일에 발표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물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 사가 “최필립과 이진숙이 보도에 왜곡이 있 다고 주장한다”고 말하자, 판사는 3월26일 녹음 파일을 틀어 기사 내용과 같은지 확인 해보자고 했다.

최성진 한겨레 기자

최성진 한겨레 기자

통비법에 왜곡이 본질이 아니건만

4월15일 3차 공판에는 이진숙 기획홍보 본부장과 이상옥 전략기획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상옥은 “매각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간 것”이고 “반값 등록금과 발표 시기 는 정수장학회에서 말한 것이다”라며 공을 최필립에게 떠넘겼다. 변호인과 판사는 “10 월19일에 매각 발표를 하고, 나중에 방문진 에서 부결되면 어떻게 되는 거냐. 선거 끝나 고 방문진에서 부결되면 그만이라는 것 아 니냐”며 다그쳤다. 매각은 불가능하고 대선 목전에 선심성 사업을 발표한다는 게 핵심이 기 때문에 이 질문을 던진 것이지만 이상옥 은 그걸 답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이진숙 본부장은 중저음에 쩌렁쩌렁 울 리는 목소리로, 검사와 복식조로 기사 왜곡 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통신비밀보호 법(통비법)에서 왜곡은 본질이 아니건만, 검 사는 굉장히 집착했다. 기자에게 ‘기사 왜곡’ 이란 비난만큼 열받는 말이 없기 때문에 피 의자를 자극하기 위함일까. 이진숙은 “정수 장학회는 MBC 지분을 처분하고 싶어 했고, MBC도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하 며 상장과 증자를 통한 민영화가 MBC의 발전 전략이라는 신념을 완곡어법으로 설파했 다. 판사는 “정수장학회가 지분 매각에 동의 하더라도 MBC 이사회와 방문진 이사회를 거쳐야 하는데, 10월19일 발표부터 준비하겠 다고 말한 이유”를 물었다. 이진숙은 “정수장학회가 매각 의사를 표시하는 정도로 발표하고, 김재철 사장과 조율해 매끄럽게 진행하면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답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궁색한 답변이다. 변호인은 “1987년에 만들어진 방문진 법은 방송 공영화를 위한 것인데, 매각 안은 방송의 공영성을 훼손하는 것 아닌가” 하고 핵심을 찔렀다. 이진숙은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사회적 합의는 필요하다”고 얼버무렸다. 그러니까 MBC의 민영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

올 2월까지의 이사장 “기억이 안 난다”

5월14일 4차 공판에는 최필립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필립은 올해 2월까지 정수장학회 이사장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로했다. “나이가 80이 넘어서”라고 말하며 기억이 안 난다는 답변을 자주 했다. 회동은 “지분 문제로 보고드릴 사항이 있다고 해서 보고를 받은 것”이라고 했다. 이상옥은 최필립에게 떠넘기더니, 최필립은 MBC 쪽으로 떠미는 형국이다. 최필립은 “지금 김지태 유가족의 가처분 신청으로 지분을 처분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마저도 법원에 가처분 계류 중인 재산을 뭘 어떻게 한다는 것이었을까.

7월2일 5차 공판에는 피의자 심문이 있었다. 녹음 경위를 묻는 검사에게 최성진은 “녹음은 통화 시작부터 하고 있었고, 최필립이 전화를 끊은 뒤 이진숙의 목소리로 지분 매각 등의 말이 들려서 기자의 책무로 관련 내용을 다 듣고 보도했다”고 답했다. 하기야 누가 이런 대박을 놓치겠는가. “10월12일 온라인 기사가 나간 후 이진숙이 전화로 대뜸 도청했냐고 묻고, 지분 매각 논의에 관한 답변은 일절 거부했다. MBC는 뉴스로 도청 의혹과 왜곡 의혹 등을 제기했다. 나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했기에 10월15일자로 전문을 실었다”고 말했다. 검사는 기사의 몇몇 문구를 문제 삼으며 왜곡이라고 윽박질렀다. 청계광장과 대학로를 대형광장과 대학으로 바꿈으로써 수혜 대상을 전국에서 부산·경남으로 보이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검사에게 최성진은 “최필립·이진숙의 대화를 보면 부산·경남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답했다. ‘박근혜에게 뭐, 뭐’에 ‘도움을’이란 말을 삽입한 건 맥락에 따른 자연스러운 복원이었고, 기사를 보면 검사가 주장하듯 ‘매각대금 원금으로 지원한다’고 쓰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만약에’란 말을 생략한 건 어차피 미래시제 가정문이기 때문에 불필요해서라고 답했다. 검사의 짜증스러운 말꼬리 잡기에 최성진은 나름대로 쿨하게 대답했다. 어휴. 왜곡이 재판의 핵심이던 <pd> 재판은 과연 어떠했을까. 그런데 검사의 주장은 이진숙의 주장과 같다. 설마 검사는 이진숙의 주장을 복기하면서, 기사를 정독하지도 않은 걸까.
“특별한 작위 없는 대화는 공개된 대화”
검사는 통비법 위반이 명백하다며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을 구형했다. 변호인이 기소권 남용이라며 최성진이 사건 보도로 받은 각종 언론인상을 열거하자, 검사는 짜증을 냈다. 변호인은 “통비법 13조 1항은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의 대화를…’이라고 나오는데, 특별한 작위 없이 들려오는 대화는 이미 공개된 대화이며, 옆방에서 소리가 들릴 때 귀를 막거나 밖으로 나갈 의무는 없다. 대선 전 정수장학회는 국민적 관심사였다. 매각이 불가능한데, 10월19일에 발표하는 건 대선에 이용하겠다는 뜻이다. 보도는 대선의 공정성, 공영방송, 국민의 알 권리 등을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고 말했다, 최성진은 최후 진술로 “정수장학회 관계자 등이 ‘정수장학회 팔아치우겠다’ ‘, 기업이 빽으로 쓰겠다 해서 가져가라고 했다’는 내용의 대화를 하고 있는데,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어두운 진실’에 눈감았다면, 그런 저를 어느 누가 기자라 할 수 있겠나. 언론 자유를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선고는 8월20일에 내려진다.
영화평론가</pd>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