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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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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보다 봄 꽃보다 음악

5월 앞다퉈 활짝 피는 ‘음악 페스티벌’… 고기 굽는 ‘자라섬 R&B’, 다양한 해외 뮤지션 ‘서울재즈’, 국내 인디 ‘그린플러그드’
등록 2013-05-15 21:04 수정 2020-05-03 04:27

이른바 ‘봄의 전쟁’이다. 꽃과 푸른 잔디와 시원한 그늘을 배경으로 하는 페스티벌의 이미지와는 그리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비슷한 형식으로 한정된 향유층을 끌어와야 하는 각 페스티벌 사무국의 처지에서는 이 상황이 전쟁과 다름없을 것이다. 특히 석가탄신일이 낀 5월17일부터 연휴 기간에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예정이다. 다른 페스티벌과 경쟁해야 할 뿐 아니라 키스 재럿 트리오, 시귀르 로스 같은 ‘네임드’ 음악가들의 단독 공연과도 경쟁해야 한다. ‘과잉’이라 할 정도로 난립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 전투는 곧 다음해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이미 ‘뷰티풀 민트 라이프’와 ‘51 플러스 페스티벌’이 열렸지만 아직도 많은 수의 페스티벌이 봄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매년 노동절 즈음에 열리는 ‘51 플러스 페스티벌’은 두리반 투쟁을 함께했던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서울 문래동 문래예술공장에서 열린다. 고유의 색깔이 분명한 음악은 ‘봄의 페스티벌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다. 자립음악생산조합 박정근 제공

매년 노동절 즈음에 열리는 ‘51 플러스 페스티벌’은 두리반 투쟁을 함께했던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서울 문래동 문래예술공장에서 열린다. 고유의 색깔이 분명한 음악은 ‘봄의 페스티벌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다. 자립음악생산조합 박정근 제공

집시 음악, 플라멩코 그리고 데이미언 라이스

갑작스레 등장해 판을 키워놓은 페스티벌이 있다. 이름하여 ‘자라섬 R&B 페스티벌’. 여기서 R&B는 ‘리듬 & 바비큐’이다. 맞다. 고기 굽는 그 BBQ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의 봄 버전이다. 모든 관객이 음악을 즐기며 캠핑을 하고 거기에서 고기도 구워 먹는 것이 자라섬 R&B 페스티벌의 궁극적인 목표다. 재즈를 넘어 집시 음악, 플라멩코 등 좀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봄의 자라섬에 울려퍼질 예정이다. 와타나베·베를린·도너티 트리오, 베니 골슨 콰르텟,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 폴 잭슨 트리오 같은 실속 있는 해외 음악가들이 무대에 오른다. 음악과 자연과 ‘고기’를 좋아한다면 더없이 만족스러울 축제 현장이 될 것이다. (5월 17~18일, 경기도 가평 자라섬 일대, 031-581-2813)

‘서울재즈페스티벌’은 올해로 7회째를 맞는 관록의 행사다. 굳이 말하자면, 이제 막 시작한 자라섬 R&B 페스티벌이 서울재즈페스티벌의 관록에 도전장을 던진 셈이다. 얄궂게 날짜까지 같다. 서울재즈페스티벌은 세종문화회관에서 행사를 이어가다가 지난해부터 야외 무대로 옮겼다. 올해도 올림픽공원에서 무대가 펼쳐진다. ‘재즈’를 전면에 내걸었음에도 재즈와 무관한 음악가들이 대거 참여해 늘 이런저런 뒷이야기를 낳는다. 올해 역시 서울재즈페스티벌의 얼굴로 얘기되는 건 데이미언 라이스와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다. 이들을 재즈음악가로 분류하는 건 버스커버스커와 십센치를 재즈음악가로 분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실제 십센치도 이 무대에 선다). 출연자 명단 곳곳에 재즈음악가들의 이름이 자리하고 있지만 ‘재즈’보다는 ‘페스티벌’에 방점이 찍혀 있는 듯하다. 그래서 늘 ‘재즈’란 이름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한 페스티벌이기도 하다. 데이미언 라이스와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를 비롯해 램지 루이스, 로이 하그로브 퀸텟, 바우터 하멜, 로베르타 감바리니, 정성조 빅밴드 같은 ‘재즈음악가들’, 그리고 미카, 로드리고 이 가브리엘라, 막시밀리언 헤커, 제프 버냇 등 다양한 음악가들이 올림픽공원을 음악으로 채울 예정이다. (5월17~18일, 서울 올림픽공원, 02-563-0595)

‘그린플러그드 2013’은 앞의 두 축제와 달리 국내 음악가들을 전면에 내세운 페스티벌이다. YB, 자우림, 크라잉넛, 노브레인, 델리스파이스, 브로콜리 너마저 등 한국을 대표하는 팀들을 중심으로 이틀간 총 81팀이 무대에 선다. 뚜렷한 차별점이나 특색은 찾아보기 어렵다. 메이저와 마이너를 망라한 (밴드 중심의) 다수의 음악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그린플러그드 2013의 장점이다. 그린플러그드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환경’을 전면에 내걸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그 점이 특별히 부각되지는 않는다. (5월17~18일, 서울 난지한강공원, www.greenplugged.com)

난립 상황에서 승리하는 법

지난 주말엔 ‘51 플러스 페스티벌’ 현장을 다녀왔다. 두리반 투쟁을 함께했던 음악가들이 중심이 돼 매년 노동절 즈음에 여는 페스티벌이다. 기존 페스티벌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페스티벌이 열린 곳은 잔디밭이 아닌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철공소들 사이에 있는 ‘문래예술공장’이었고, 봄 하면 떠오르는 초록색보다는 콘크리트의 회색에 가까운 페스티벌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제법 많이 찾아 듣는 편이라고 생각함에도) 처음 접하는 음악가들을 많이 만났다. 진짜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이었고, 이것은 이제 51 플러스 페스티벌의 색깔이 됐다. 페스티벌에 관한 글을 쓸 때마다 늘 아쉬운 점은 페스티벌마다 색깔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늘 페스티벌의 출연진을 읊는 수준에서 끝이 난다. 색깔 없는 라인업 경쟁은 곧 출연료 과다 지출로 이어지고 결국엔 제 살 깎아먹기로 끝날 수밖에 없다. 이미 시작된 여름 페스티벌 전쟁에서도 이런 우려가 나온다. “질서 없이 여기저기서 나섬”이라는 사전적 뜻이 꼭 맞는 페스티벌 ‘난립’의 상황에서 고유의 색깔은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김학선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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