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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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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시청률 1위, 노희경의 균열

‘마니아 드라마’가 작가주의 증표에서 상품성 없는 드라마가 된 세상, 작가 노희경이 사는 세상… 무중력 판타지의 공간을 그리는 이유가 외적 환경에 떠밀려서는 아닐까
등록 2013-03-09 03:33 수정 2020-05-03 04:27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멜로 없는 시대, 노희경 작가의 정통 멜로에 대한 희구를 드러낸다. SBS제공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멜로 없는 시대, 노희경 작가의 정통 멜로에 대한 희구를 드러낸다. SBS제공

‘사랑에 대하여.’ 방송사를 배경으로 한 KBS 드라마 마지막 회에서 지오(현빈)와 준영(송혜교)이 공동 연출한 극중극 제목이었다. ‘죽음을 넘나드는 진정한 사랑’을 그린 이 정통 멜로는 무려 27%의 첫 회 시청률을 기록한 것으로 묘사된다. 여기에는 작가 노희경의 두 가지 희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연애에 대한 좀더 직접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는 차기작에 대한 예고이며, 다른 하나는 대중성에 대한 바람이다.

 

총체적으로 문제가 터져나온 2008년과 ‘그사세’
<그들이 사는 세상> KBS2

<그들이 사는 세상> KBS2

1998년, 시청률은 저조했으나 드라마 최초의 열혈 팬덤 현상을 낳은 대표작 이후 노희경의 작품에는 늘 ‘마니아 드라마’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이는 특유의 작가주의에 대한 영광스런 증표인 한편, 대중과의 접점을 고민해야 하는 상업드라마 작가에게는 아픈 낙인이기도 했다. 2008년, 트렌디드라마의 단골 배경인 방송가를 소재로, 한류 스타 현빈과 송혜교를 내세웠던 조차 그 호칭을 벗겨내지는 못했다. 2013년, 노희경은 송혜교를 다시 불러와 또 다른 한류 스타 조인성과 주연을 맡게 한 로 돌아왔다. 이 5년 만의 지상파 장편 복귀작에서, 대중과의 소통은 여전히 무거운 숙제다.

돌이켜보면 노희경 드라마의 위기는 한국 드라마의 위기와도 맞물린다. 그녀의 작품들은, 트렌디드라마 전성시대인 1990년대에 주류 드라마의 문법을 거스르며 홀연히 당도했다. 외적 갈등보다 등장인물들의 내적 갈등을 중심에 놓고 그 감정을 깊숙이 파고들며 점층적으로 고조시켜나가는 서사 방식은, 감정을 스펙터클화하는 데 집중하는 트렌디드라마 시대의 문법과는 사뭇 달랐다. 그 결과 그녀의 작품은 대중에게 폭넓게 소구되는 극적 긴장감이 다소 부족한 대신,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강렬한 정서적 환기력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문제는 1990년대 이후의 한국 드라마가 갈수록 스펙터클과 외적 갈등 위주의 스토리에 치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왔다는 점이다. 외환위기로 잠시 위축됐던 드라마 시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한류 열풍에 힘입어 급속히 확장됐다. 자본이 대거 투입되며 드라마 대형화 바람이 불었고 수익을 위한 시청률 경쟁이 날로 치열해졌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터넷 연예 매체들의 스포츠 중계식 시청률 보도가 이를 더욱 부추겼으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고 극 초반 자극적인 스토리와 물량 공세를 쏟아붓는 드라마가 점점 늘어났다. 드라마 분량 늘리기, 쪽대본, 생방송 촬영, 간접광고 증가, 기존 흥행 공식의 안이한 복제 등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 병폐들은 모두 이 시기에 등장했다.

그런 측면에서 이 방영된 2008년은 의미심장한 해였다. 앞서 나열한 국내 드라마의 총체적 문제점이 반영된 두 현상이 일어난 해이기 때문이다. 단막극 폐지와 막장드라마의 등장이 그것이다. 드라마의 다양성과 작가의 개성이 획일화된 자리에는 노골적인 욕망의 상품만 남았다. 그 사이 과거 노희경 드라마에 쏟아지던 ‘마니아 드라마’라는 찬사는, 드라마의 가치가 시청률이라는 수치로만 환산되는 시대로 접어들자 긍정적 의미를 소실한 채 상품성 없는 드라마라는 열등한 의미로 더 널리 통용되기 시작했다.

 

복귀작,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
<빠담빠담…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 JTBC

<빠담빠담…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 JTBC

이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린 뒤, (이하 )가 결국 지상파가 아닌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영된 것이나 이 작품마저 낮은 관심 속에 종영된 이후, 노희경의 복귀작이 오리지널 극본이 아닌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작이 된 것은 그 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과 는 노희경이 이후 다루고 싶다던 연애에 관한 연작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드라마 환경의 변화에 따른 대중성의 숙제에 대한 노희경의 고민이 낳은 변화를 반영한다. 즉 인물들의 내면으로 깊숙이 파고들던 기존 서사 방식에서, 외적 갈등 위주의 서사라는 최근 트렌드로의 변화다. 두 작품 모두 스타일리시한 영상미가 강점인 김규태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예컨대 은 “평생을 인간답게 살아본 적이라곤 한 번도 없는 남자”가 운명의 여자를 만나 삶의 의미를 되찾는 기적의 이야기다. 세상에서 소외되고 상처 입은 존재끼리의 치유로서의 사랑이라는, 노희경 드라마의 일관된 주제를 따르는 작품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 기적을 말하기 위해 작품에 판타지 요소를 도입한다. 인물들의 감정을 반복해서 점층시켜나가던 서사 방식은, 생의 이면을 깨닫게 하려고 시간을 물리적으로 되돌리는 판타지 형식으로 대체된다. 그 결과 극적 긴장감은 강화됐지만 출생의 비밀, 시한부, 살인 누명 등과 같은 통속적 소재들이 함께 부각되며 오히려 정서적 환기력은 약화되고 말았다.

이런 균열은 일본 드라마 원작을 각색한 에서 한층 더 두드러진다. 비록 주제는 상처와 치유라는 노희경의 작품 세계 안에 위치하지만, 서사의 주된 동력은 인물들의 감정보다 외적 갈등과 형식적 요소들이다. 가령 언제 드러날지 모르는 오수(조인성)의 사기 행각이 주변 인물들과 빚어내는 아슬아슬한 서스펜스나 오영(송혜교)의 장애 원인을 둘러싼 미스터리 같은 극적 요소들이 드라마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리고 두 작품은 모두 외적 갈등이 주가 돼 느슨해진 정서의 밀도를 높이려고 인물들의 감정이 교류하는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한 영상 연출을 자주 사용한다. 예컨대 에서 강칠(정우성)과 지나(한지민)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호숫가 수중 데이트 신이나 에서 오수와 오영이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는 온실 물장난 신은 아무런 현실의 근심도 미치지 못하는 무중력의 판타지 공간처럼 묘사된다. 배우들의 화려한 비주얼과 맞물려 종종 뮤직비디오 화면 같다는 비판은, 인물들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갈등이 일어나고 점차 고조된 그 감정으로 시청자를 몰입으로 이끌던 기존의 노희경 드라마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감상들이다.

 

여전히 아름답기에 더욱 안타깝다

요컨대 가 노희경 작가에게 동시간대 시청률 1위라는 대중적 성공을 안겨주었음에도 크게 기쁘지 않은 것은, 그 결과가 우리 시대 드라마 환경의 외적 흐름에 떠밀린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일관된 주제의 이야기는 여전히 아름답기에, 더욱 안타까운 균열이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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