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의 원작은 오쿠다 히데오의 동명 소설로, 이미 일본에서 영화화된 작품이다. 그러나 한국판 는 일본에 원작이 있음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한국의 상황과 정서에 잘 맞는다. 이는 임순례 감독이 깨알같이 배치한 풍자가 한국 사회의 핵심을 찌르는데다, 김윤석이 창조해낸 인물이 생생하고 정이 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소설이나 일본판과 비교하면 한국판 는 갈등의 정도가 심각하고, 사건의 스케일이 크며, 코미디의 요소가 강하다. 이 또한 한국 사회의 모순이 더 역동적이며, 영화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려는 욕구가 강한 탓이리라.
최해갑은 진정으로 갑인 남자다. 1980년대 별명이 체게바라였던 학생운동 투사로, 지금은 어떤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고 홀로 일상 투쟁을 전개한다. 그가 하는 운동은 전기료에 붙어 나오는 시청료 거부와 국민연금 납부 거부다. 학부모 자격으로 학교와도 싸운다. 배식당번으로 학교에 간 그는 급식 비리를 문제 삼고, 아내는 소수자 배려 없는 학교 행사에 이의를 제기한다. 아내 역시 별명이 잔다르크였던 운동권 출신으로, 아직도 최해갑을 ‘선배’라 부르며 그의 일상 투쟁을 지지한다. 아내의 동네 찻집이 유일한 생계 수단이지만, 이들은 ‘가지지 말고, 배우지 말자’는 가훈 아래 세 아이를 키우며 학교교육에 연연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들의 정보를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보고 내용으로 들려준다. 당연히 일본판에는 없는 설정이다. 일본판에선 처가에서 보낸 흥신소 직원의 염탐 장면이 잠깐 나온다. 한국판에선 2명의 기관원이 영화 내내 최해갑을 미행하고 도청한다. 이들의 행동은 영화에 코미디를 불어넣으며 해피엔딩에도 기여한다. 최해갑은 이들을 눈치채고 “예전엔 1급들이 따라다녔는데…”라고 뇌까린다. 한국에서 민간인 사찰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며, 당연한 일상처럼 여겨진단 뜻이다. 이처럼 국가가 개인을 촘촘히 감시하는 사회에서 최해갑처럼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부수고, 지문날인을 거부하는 것은 ‘이유 없는 반항’이 아니다.
최해갑이 다큐멘터리 감독이란 설정도 한국판에만 있다. 영화 속 최해갑의 다큐멘터리 는 실재하는 작품이다. 서울영상집단의 이마리오 감독이 2001년에 찍은 다큐멘터리로, 한국독립단편영화제에서 독불장군상을 받았고, 2002년엔 KBS 에 출품했다가 방송 불가 판정을 받자 법정 투쟁을 벌여 2004년에 방송되기도 했다. 영화 속 주민등록 반대운동이나 지문날인 반대운동도 2000년대 초에 있었던 운동이다. 국가에 의한 개인정보 등록과 수집에 반대했던 이 운동은, 형식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된 상태에서 국가의 통치성 자체를 문제 삼는 운동으로 적지 않은 호응을 얻어 이후 주민등록번호의 무차별적 수집을 막는 데 기여했다. 오히려 10년이 지난 지금, 인권 감수성은 후퇴했다. 민간인 사찰이 부활했지만 시민사회의 반발은 크지 않으며, 범죄 예방이라는 명목하에 CCTV 설치에 대한 이견은 줄어들었다.
최해갑 가족은 들섬으로 이주해 섬을 개발하려는 세력과 싸운다. 소설과 일본판에서 오키나와 학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과 달리, 들섬의 학교는 이미 폐교되었다. 변방까지 공교육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근대국가의 사명임을 생각하면, 들섬은 이미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곳이다. 그곳엔 오직 경찰력이 있을 뿐이다. 현지 경찰은 힘이 없고, 개발업자를 비호하러 육지에서 들어오는 경찰들은 폭력적이다. 소설과 일본판에서 주인공은 개발업자와 경찰에 맞서 싸운다. 구덩이에 처박히는 포클레인은 토건세력과의 대결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그러나 한국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어이 4선 의원을 납치해 국기게양대에 묶고 “나는 돈만 아는 쥐새끼다”란 실토를 받아낸다. 이어 화염병이 날아가고, 착공 축하 플래카드에 불이 붙는 장면이 상징적으로 등장한다.
왜 이런 장면이 필요했을까. 이는 단지 흥행을 위한 선택이 아니다. 일본판에서 개발은 토건업자가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판에서 들섬의 개발은 주민들의 공동 소유였던 땅이 국가 소유가 됐다가 국가가 다시 개발업자에게 팔아넘겨서 진행된 것이다. 국가의 책임이 없을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른바 ‘민영화’란 과정이 주민 공동체로서의 국가가 세금으로 일군 기간산업을 특정 자본가에게 넘기는 것이다. 국가가 주민 공동체로 기능하던 것을 관두고, 특정 자본의 수익 창출 기구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 4선 의원으로 상징되는 정치권과 ‘그의 형’으로 대표되는 자본가가 결탁한다.
쌍용, 두물머리, 강정 떠올라한국판에서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4선 의원’이라는 분명한 적이 존재하고 이에 대한 응징이 이루어지는 것은 재미를 위한 설정이 아니다. 이는 한국에서의 싸움은 결국 국가의 얼굴을 한 누군가와의 정면 대결일 수밖에 없다는 도저한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쌍용차, 두물머리, 강정 등의 싸움에서, 국가는 단지 중재자로서가 아니라, 매각의 책임자이자 이해 당사자로 존재해왔다. 일본에서는 돈키호테 같은 한 아나키스트의 과격 행동이 한국에 와서는 카타르시스 넘치는 영웅적 투쟁으로 변모하게 된 것은, 주민등록법, 국정원 사찰, 쌍용차, 두물머리, 강정 등의 사태가 보여주듯, 국가를 대면하는 일의 무게가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 참을 수 없는 국가의 무거움이다.
황진미 영화평론가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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