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텃밭을 시작했다. 올해 가장 잘한 일로 꼽는다. 이게 다, 사는 게 헛헛해서다. 2012년이 저문다. 점점 모르겠다, 사는 거.
4월 중순이었다. 퇴비 2포, 닭똥(계분) 1포를 넣고 땅을 갈아엎었다. 호미로 줄을 그어 씨를 뿌렸다. 청축면·청치마·생채·청로메인·레드치커리 같은 쌈채소 10여 종과 시금치·당근·열무·아욱 따위를 16.5m²(5평) 남짓한 밭에 빼곡히 뿌렸다. 일주일 뒤에도, 2주 뒤에도 밭이 그대로다. 어, 너무 깊게 심었나? 3주째 가보니 비로소 달라졌다. 파릇파릇 온통 새싹이다. 생명을 키워냈다. 흐뭇했다.
너무 예뻐, 뜯지 못했다. 두고 보기만 하다, 솎아줄 시기를 놓쳤다. 6월 초 일주일을 걸러 찾아간 밭은 난장판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던 녀석들이 숨을 쉬지 못해 말라 비틀어진 게다. 듬성듬성 잡히는 대로 뽑아냈다. 상추한테 미안했다.
수박이며 참외 모종도 했다. 재미 삼아 한 짓인데, 일주일에 한 번 들이는 정성으론 부족했다. 제법 큰 녀석들은 쉽게도 곯아버렸다. 방울토마토와 애호박은 꽤 기쁨을 줬다. 감자는 알이 전혀 굵질 않았다. 오이도 제법 열렸는데 성질이 사나웠다. 주변 키 큰 녀석들에겐 죄다 가지를 뻗어 끌어내렸다. 내년엔 오이 대신 가지를 심어볼까? 그렇게 여름을 났다.
9월 초 밭을 다시 갈아엎었다. 퇴비와 닭똥도 새로 넣어줬다. 김장농사 시작이다. 무는 씨를 뿌리고, 배추는 모종을 했다. 봄농사 때와 달리 농장주가 ‘소독약’(농약)과 ‘비타민’(화학비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실 웃어넘겼다.
무는 사나흘 만에 순이 돋았다. 배추는 그대로였다. 보름이 지날 무렵 떡잎을 떨친 무가 삐죽삐죽 본잎을 내놨다. 한 달이 다 되도록 배추는 그대로였다. 문득 불길했다. 주변을 둘러봤다. 배추가 벌써 통통해져 있다. 뒤늦게 복합비료에 손을 댄 동료들의 배추도 진초록으로 변해 있다. 허, 이를 어쩐다?
여기저기 동호회며 카페를 섭렵했다. 답은 영양부족, 문제는 흙이었다. 흙에 힘이 없으니 ‘소독약’과 ‘비타민’의 도움 없이 배추·무를 키워낼 재간이 없었던 게다. 부랴부랴 유기농 약재를 구했다. 사흘 간격으로 열심히 잎에 뿌려줬다. 응급처방이었다. 배추가 조금씩 자라기 시작한다. 기특했다.
초기 생육이 배추의 미래를 결정한다. 때늦게 부산을 떨었지만, 11월 초 뽑아든 배추는 속이 텅 비어 있었다. 그래도 김장을 했다. 배추 2통, 무 3통이 나왔다. 일주일 만에 맛을 봤다. 제법 그럴듯했다. 내년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겨울엔 뭐하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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