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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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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하늘로 타전을 보내는 트위터

고공농성자들에게 자신의 목소리 담아 보내는 트위터 ‘소리연대’
지상에서 읽은 시와 글을 들으며 혹독한 겨울밤 이기는 고공의 사람들
등록 2012-12-18 18:36 수정 2020-05-03 04:27

쌍용차 한상균(전 노조지부장), 문기주(정비지회장), 복기성(비정규지회 수석부지부장)님, 유성기업 홍종인(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장)님, 현대차 천의봉(비정규직지회 사무장), 최병승(비정규직 조합원)님, 그리고 반갑게도 12월12일 고공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정홍근(전북고속분회 쟁의부장), 이상구(전일여객분회 대의원)님. 트위터 ‘소리연대’에 참여하는 이들이 고공으로 목소리를 띄워보내며 부르는 그 이름들을 저도 함께 불러봅니다. 눈발이 성성하던 지난주에는 체감 기온이 영하 30℃에 이르렀다는데, 불 쬘 조각 하나 없는 고공의 외딴섬에서 어떻게 견디셨는지, 여기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 몇 분 동안 밤을 잊을 수 있겠어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천의봉·최병승씨가 고공농성 중인 울산 북구 명촌동 현대자동차 인근 철탑. 10월17일 철탑에 올라 사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이들의 외침은 두 달째 이어지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천의봉·최병승씨가 고공농성 중인 울산 북구 명촌동 현대자동차 인근 철탑. 10월17일 철탑에 올라 사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이들의 외침은 두 달째 이어지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지난 11월26일 심보선 시인의 제안으로 트위터에 소리연대가 결집되었습니다. 지상과 단 하나의 소통 창구인 휴대전화를 통해 철탑 위에서, 굴다리 끝에서 목숨을 내걸고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는 여러분께 아래에서 웅성대며 힘을 실어보내기로 했습니다. 사실 문학인들은 여기저기서 자발적인 연대의 움직임을 보여왔습니다. 11월13일 서울 홍익대 앞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함께하는 북 콘서트’를 열었고요. 11월27일에는 서울 정동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하는 시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11월30일에는 경기도 평택 쌍용차 철탑농성 현장을 찾아 ‘문화예술인의 밤’을 열고 한상균·문기주·복기성님과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들을 응원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함께 투쟁하는 시간이 끝나고 나면 연대자들은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지만 여러분은 깊은 밤 고공에서 추위와 또 하나의 싸움을 시작해야 하지요.

아마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한참 고민하다 든 생각인 것 같아요.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문학이 높은 곳에 닿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했다는 심보선 시인은 12월12일 과 인터뷰를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계속해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트위터에는 140자라는 제약이 있고, 문자로 쓰다 보면 메시지가 아무래도 관례적이게 되

니까. 메시지를 좀더 인격적으로 전달할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음성으로 전달하기로 했죠.” 시인은 소곤대는 목소리가 고공으로 가 응원의 기운을 전달할 수 있기 바랐지만 한편으로는 염려도 됐습니다. “위의 상황이 어떤지 잘 모르니까, 메시지를 틀면 배터리가 닳을 수도 있고 추운데 듣다가 손이 시릴 수도 있고….”

같은 날 울산 현대자동차 앞 송전탑 위에서 농성 중인 천의봉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심보선 시인의 염려를 다독이는 말을 전해왔습니다. “아무도 이런 것 안 해주는데,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힘을 많이 받아요.” 그동안 사용이 익숙지 않고 추운 날씨 탓에 배터리가 빨리 닳아서 12월12일 낮에야 겨우 음성메시지를 챙겨들을 수 있었다는 천의봉님은 이런 말도 전했습니다. “오늘 밤부터 계속 반복해서 들을 생각이에요. 겨울밤이 진짜 길잖아요. 그 짧은 몇 분 동안 밤을 잊을 수 있겠어요.”

매일 밤 12시, 책을 읽는 시인

고공의 밤을 견딜 수 있도록 재잘대는 목소리들이 철탑을 타고, 굴다리의 난간을 타고 올라갑니다. 다들 들으셨지요. CBS 정혜윤 PD는 “고공과 지상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법은 참으로 다를 것 같다”고 “어서 내려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 ‘문턱 너머 저편’을 읽었습니다. 심보선 시인의 친구라는 한 연대자는 조지 오웰의 의 일부분을 읽었습니다. TV평론가 윤이나씨는 백석의 시 ‘선우사’를 읽으며 자신의 목소리가 높은 곳까지 잘 닿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선옥 작가는 실천적 연대에 관한 담론을 담은 중 한 구절을 읽었습니다. 그림작가 김한민씨는 예전 남미 여행에서 그곳 사람들이 일종의 좌우명 같은 주문을 만들어 대대로 물려주는 게 인상 깊었다며 자신이 들은 주문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을 읊었습니다. 녹음되어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가 낯설다며, 어떤 분은 소리연대에 나섰다가 부끄러워 그만 자신의 목소리를 지워버렸다는데 그렇게 주춤주춤, 수다한 목소리들이 트위터를 타고 전해졌지요.

그리고 여러 차례, 한 편의 글을 조각내 읽으며 밤을 나눠가지겠다 약속한 이도 있었습니다. 김선우 시인은 핸리 데이비드 소로의 을 읽고 있습니다. 매일 밤 12시 책을 읽어나가며 그 시간에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전하겠답니다. 더 많은 연대자들이 다른 시간대에 지지의 목소리를 보내 힘든 시간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제안도 했습니다. 12월12일 과 통화한 김선우 시인의 목소리를 이 지면에 다시 전합니다. “많은 작가들이, 할 수 있는 한 많은 목소리를 내자는 데 뜻을 모으고 있어요. 저도 그중 한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을 뿐이고요. 소리연대가 활성화하면 좋겠어요. 작품 전체를 고른 이유는, 짧은 작품 한 편이나 한 부분만 읽고 나면 그다음에 다시 하기 민망해질 것 같아서요. 싸움이 길어질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을 골랐어요. 강퍅한 현실에 올라서서 따뜻한 것이 많이 그리울 텐데, 이 글은 따뜻한 가운데 광포한 정부에 불복종하겠다는 강인함도 있거든요. 매일 밤 책을 읽으며 마지막까지 함께 가겠습니다. 그러나 사실 더 많이 바라는 것은 이 그린 긴 글이 아닌데, 그 전에 투쟁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거죠. 지금 당장이라도 그들이 자세만 바꿔주면 해결되는 문제인데….”

눈과 함께 스르륵 사라지기를

뜨거운 물을 채운 고무 물난로에 의지해 겨우 추위를 녹이고 있다는 천의봉님은 이제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날씨가 추워져 발에 동상이 걸려 스스로 치료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가혹한 계절은 아랑곳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카카오톡에 고공농성 방을 열어놓고 동지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서로 응원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햇볕에 눈 녹듯 그 채팅방 또한 이 겨울의 한가운데서 스르륵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트위터에서 검색되는 ‘소리연대’멘션들.

트위터에서 검색되는 ‘소리연대’멘션들.





소리연대에 참여하는 방법

① ‘soundcloud’ 앱을 앱스토어나 soundcloud.com에서 다운받아 등록한다.
② 녹음 버튼을 누른 뒤 작품 낭독, 지지의 말을 저장한다.
③ 링크를 형성시킨 뒤 고공농성자들의 트위터에 멘션을 넣는다.
④ 지지를 보낼 고공농성자들의 트위터- 현대차 비정규직 최병승 @onepi0820, 천의봉 @joongsu1011, 쌍용차 해고노동자 한상균 @han20093, 문기주 @eessy88kr, 복기성 @bks10045718, 유성기업 홍종인 @icolove0031
⑤ 해시태그 ‘#소리연대’를 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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