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집에 들어가라.” 어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당부했지만 그는 돌아갈 집이 없다. 이 소년의 집은 어디인가. 게다가 범죄소년의 집은 어디인가. 범죄자 연령에는 미달하지만 형사적 책임을 져야 할 소년이 가야 할 집은 일상적인 보호관찰 시행이 닿을 곳, 교화가 가능한 곳, 성인이 보호하는 곳, 최소한 잠을 자고 가족과 동거할 수 있는 곳을 말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범죄소년에게 그런 곳은 없다.
11월21일 개봉한 영화 은 소년원을 들락거리는 한 청소년을 핸드헬드 카메라로 따라간다. ‘비행소년’이 아니라 ‘범죄소년’이다. ‘범법행위 우려’나 ‘반사회성’ 같은 모호한 인격이 아니라 이미 확고한 ‘범죄자’로 규정된 사람이다.
의 주인공 15살 장지구(서영주)의 집은 처음엔 당뇨로 하루 종일 누워 있는 할아버지와 사는 좁은 아파트였다. 아버지는 원래 없었고 어머니는 그가 3살 때 집을 나갔다. 대소변을 씻겨야 하는 할아버지가 그의 유일한 보호자였다. 잠자다가도 할아버지 코에 손을 대볼 만큼 소년은 유일한 보호자이자 가족에게 매달린다. “제가 없으면 할아버지는 안 된단 말이에요.” 소년의 말은 진심이었다. 폭력으로 보호관찰을 받는 와중에 친구들과 특수절도에 상해까지 저지른 주제에 누가 누굴 걱정하느냐는 판사의 판단은 사실이었다. 진심이 사실을 이기지 못한 뒤부터 그의 거처는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년원에 있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제 소년원을 나간들 돌아갈 곳이 없다. 소년원에서 나가기를 바랄 수도, 그렇다고 계속 있기를 바랄 수도 없는 처지다. 집이 없다는 것은 누구도 그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자신조차도.
그런데 갑자기 엄마(이정현)가 나타났다. 17살 때 미혼모로 그를 낳은 뒤 도망쳤던 엄마와 소년원 면회실에서 처음 눈을 마주쳤다. 엄마도 남의 집에 얹혀사는 처지지만 그와 함께 살기로 용기를 낸다. 할 줄 아는 거라곤 급할 때 얼굴에 철판 깔고 사람들에게 매달리거나 남의 짐을 터는 재주밖에 없는 엄마와 평소엔 한없이 다정하지만 작은 말에도 쉽게 폭발하는 아들은 애처로울 만큼 다정하다. 11년 만에 만난 지구와 엄마 효승은 모자 사이라기보다는 애인처럼 보인다. 사람의 체온이 있는 곳이 집이 된다. 아들과 엄마는 영화 내내 사람의 체온을 좇아가며 그곳에 집 한 칸 갖기를 소망한다.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돼요?”찜질방으로, 지하철로, 여관방으로 들어가나 했더니 주유소 뒷방에서 다시 소년원으로. 범죄소년이 범죄소년을 낳고 미혼모의 자식이 다시 미혼부가 되는 가난의 경로를 밟으며 모자의 표정은 서로 닮아간다. 아니, 항상 울 듯 웃을 듯한 얼굴로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되냐”고 누군가에게 애원해야 하는 그들의 표정과 언어는 가난을 닮아간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의 공통 언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영화사 남원과 공동 제작한 이 영화는 소년 장지구의 감정뿐 아니라 가난의 숨결, 그 안의 체온까지 생생한 질감으로 그려낸다. 영화 를 만든 강이관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에서 가난은 뜻밖에 풋풋한 표정으로 구체적인 말을 건넨다. “저기요,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돼요?”
강이관 감독은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법원이나 쉼터를 돌아보다가 우리 때 청소년 범죄자거나 미혼모였던 이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극중 엄마 효승은 몸은 어른이지만 아직도 뿌리내리지 못한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다.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은 많지만 경제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전혀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다. 둘이 만나서 좋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둘에게 동기 같은 게 생겼다. 지구가 엄마를 업으려 하고 효승이 지구를 챙기려 하는 것, 약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돕는 것, 그게 더 큰 힘이 아닌가 싶었다.”
배우들의 실제 나이로 살린 리얼리티은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영화다. 1980년생인 배우 이정현이 33살 효승 역을 맡고 실제 중학교 2학년인 서영주가 장지구 역할을 맡았다. “지금, 여기의 현실을 말하기 위해” 극영화이면서도 굳이 실제의 법원과 소년원, 쉼터를 돌며 촬영했다. 강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의 청소년 정책은 가정이 우선권을 갖는다. 부모가 어떠한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소년원에 다녀온 아이들이 또 아버지에게 맞거나 버림받는 똑같은 환경에서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 처벌하고 보호하는 각자 역할에 충실하기는 한데 서로를 엮어내는 세밀한 감수성은 없었다.” 공분과 각성을 노리는 많은 ‘사회적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가 공감과 다정한 이해를 부추기는 것은 이 감수성 때문이다.
헌법학자 김두식 교수는 인권 감수성의 핵심은 ‘불편함’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 어쩌면 인권 감수성은 우리 사회 약자들이 내뿜는 친근하고 따뜻한 숨결이라고 재번역될지 모른다. 영화 이후 파격과 충격의 캐릭터로 기억됐던 배우 이정현이 16년 만에 장편영화에 돌아와 애처롭지만 따뜻한 엄마의 얼굴을 하게 된 걸 보면 말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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