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드라마 가운데 유독 대세를 이룬 두 장르는 복수극과 치유극이다. 먼저 상반기를 지배한 장르는 복수극이었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복수하는 아들들의 이야기 MBC , SBS , KBS , 역시 억울하게 죽임당한 딸과 친구의 살인자를 추적하는 SBS 와 등이 대표적이다. 이 드라마들 속 복수의 대상은 주로 탐욕스러운 자본가나 부패한 정치가 같은 거대 권력이었다. 부도덕한 권력에 의해 억압당한 약자들의 복수극은 최근 우리 사회의 지배적 키워드로 떠오른 ‘분노’의 정서를 장르적으로 풀어내며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했다.
“상급의 의사는 나라를 고친다”
복수의 외침이 어느 정도 잦아든 뒤에는 치유의 손길이 찾아왔다. 하반기 드라마의 대세는 단연 다양한 분야의 ‘신의’들이 활약하는 치유극이다. 이 장르는 MBC 같은 정통 메디컬드라마를 포함해, MBC 과 , SBS 처럼 사극과 결합한 형태까지 폭넓게 변주되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드라마들 역시 복수극에서처럼 흥미로운 공통점을 보이는데, 바로 치유의 개념을 개인적 차원에서 나아가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표적 사례다. 이 작품은 기존 메디컬드라마가 추구해오던 휴머니즘적 이상이 응축된 수술실의 판타지를 걷어내고, 계급에 따라 치료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수술실을 통해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의료 현실을 비판했다. 그리하여 실력과 인격을 겸비한 천재 의사가 병든 개인을 치료하는 휴먼메디컬드라마에 그치지 않고, 국가의료복지라는 더 근본적이고 확장적인 차원에서의 처방전을 추구한 사회치유극이 될 수 있었다.
최근 메디컬드라마의 이런 치유 개념을 더 단적으로 나타내는 사례는 에서 이야기하는 좋은 의사의 정의를 들 수 있다. 이 드라마는 의사의 단계를 구분하며 “하급의 의사는 병을 고치고, 중급의 의사는 사람을 고치며, 상급의 의사는 나라를 고친다”고 말했다. 처럼 사극과 결합한 메디컬드라마들은 이런 치유 개념을 공통적으로 ‘왕 만들기’ 플롯의 병행을 통해 극화하고 있다.
예컨대 는 21세기의 의사 유은수(김희선)가 고려 시대로 타임슬립해 벌어지는 이야기와 공민왕(류덕환)의 성장기가 함께 드라마의 중심축을 형성한다. 시대적 배경은 국운이 쇠해가고 외세의 수탈로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는 고려 말이다. 단지 노국공주(박세영)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끌려왔던 은수는 드라마가 진행되며 점차 역사에 개입해 기득권에 맞서 고려를 개혁하려는 최영(이민호)과 공민왕을 돕게 된다. ‘나라를 고치는’ 진정한 의미의 ‘의선’이 되어가는 것이다.
또 한 편의 타임슬립 메디컬 사극 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 진혁(송승헌)이 타임슬립한 19세기 말 조선은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극에 달하고, 역병과 민란이 창궐하는 세계다. 그곳에서 병들고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인술을 펼치는 의사로 성장해가는 진혁의 각성기는 “선량한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김씨 조선을 베어버리겠다”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범수)의 개혁기와 만나며 국가에 대한 치유 드라마로 확대된다.
‘의사의 이상’과 ‘개혁의 꿈’이 같은 선상에
10월 초 방영을 시작한 역시 직접적인 ‘왕 만들기’는 아니지만 유사한 맥락의 서사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주인공 백광현(조승우)의 아버지인 강도준(전노민)의 의사로서의 이상과 소현세자(정겨운)의 개혁에 대한 꿈을 같은 선상에 놓으며 시작된다. 돈 없는 백성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려는 도준이나 외세에 굴하지 않을 부강한 조선을 만들려는 소현이나 결국은 둘 다 국가와 공동체의 치유를 꿈꾼 것이다.
이러한 최근의 메디컬드라마들은 사실상 상반기를 지배한 복수극의 후속편처럼 보인다. 이 드라마들의 도입부는 하나같이 병들고 썩은 세상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은 열악한 중증외상 시스템과 지원 약속을 번번이 어기는 정부와 영리만을 추구하는 조직 세계, 는 강압적인 외세와 그에 기생하는 특권층, 는 공고한 신분제 질서에 대해 각각 비판과 분노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극 속의 과거이든 의 현재이든, 가난한 백성이 제일 먼저 죽어나가는 현실은 동일하다. 에서 진혁과 처음 마주친 이하응이 토해내는 “지랄 맞은 세상”에 대한 울분은 그 변함없는 우리 사회에 대한 분노의 일갈이다. 다만 최근의 메디컬드라마들은 분노에서 멈추지 않고, 의술을 빌려 이 사회 전체에 대한 적극적인 개혁과 치유의 열망으로 나아간다. 최근 드라마 속 ‘신의’들은 바로 그 열망의 인격화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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