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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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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지금 바로 응답하라

<응답하라 1997> <건축학개론> 등 2012년은 1990년대를 처음으로 ‘옛이야기’로 쓴 해… 젖과 꿀이 흐르던 대중문화의 호시절, ‘복고’로 돌아와
등록 2012-09-08 11:22 수정 2020-05-03 04:26
tvN 제공

tvN 제공

올해 대중문화 코드에서 가장 흥한 아이템은 90년대의 호출이었다. 이들의 첫사랑과 ‘오빠’를 외치던 일상은 이제 ’복고’ 아이템이 되었다.

올해 대중문화 코드에서 가장 흥한 아이템은 90년대의 호출이었다. 이들의 첫사랑과 ‘오빠’를 외치던 일상은 이제 ’복고’ 아이템이 되었다.

“오랜만에 옛날 노래 함 불러볼까.” 노래방에서 손가락은 기억하고 있었다. 노래 책자를 뒤적이지 않아도 3, 5, 4, 7, 차례로 번호를 꾹꾹 누른다. 전주가 나오자 아버지(성동일)는 “야이 가시내야, 그것이 옛날 노래대?”라며 소리를 꽥 지르지만 시원(정은지)에겐 “내한테는 옛날 노래다. 이게 15년도 더 된 노랜데”. 7080 문화를 향유했던 아버지 세대의 복고가 세시봉이라면 1980년생 시원의 복고는 그의 말마따나, “H.O.T., 되시겠다”.

‘역사의 종말’과 함께 온 ‘소비의 시대’

1990년대가 복고가 되어 돌아왔다. 8월27일 최고 시청률 4.43%(케이블 유가입자 기준, TNms 제공)를 찍으며 케이블 방송 흥행 기준인 1%를 훌쩍 넘긴 tvN 화요드라마 은 그 시절을 보낸 이들을 적극적으로 호출한다.

1990년대에 10대를 교실에서 보냈던 이라면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어제 본 품평으로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며 하루가 시작된다. 수업 시간은 졸음으로 고요하고 쉬는 시간은 ‘팬질’로 활기를 띤다. 3만5천 명의 ‘클럽 H.O.T.’ 정식 회원을 포함해 컴퓨터통신 등에 꾸려진 팬클럽까지 ‘10만 대군’으로 추정되던 H.O.T. 팬클럽 회원 중 5700번째 ‘안승부인’쯤 될 법한 친구는 연예잡지에서 H.O.T.의 토니가 나온 쪽만 잘라 곱게 스크랩한다. 강타를 좋아하는 ‘칠현부인’에게 인심 좋게 강타가 나온 쪽을 나눠주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젝스키스 팬들이 같은 작업을 진행한다. 대학생 언니·오빠를 동경하는 몇몇은 이승환과 유희열의 노래를 무한 반복해서 듣지만, 라디오와 TV에서 귀에 인이 박이도록 흘러나오는 젝스키스의 또한 흥겹게 따라부른다. H.O.T. 의 망치춤 정도는 이들의 팬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같이 출 수 있었다. 그 시절 폼 좀 잡는다는 이들이 가입했던 중·고교 댄스부 소년들은 젝스키스의 나 H.O.T.의 안무를 힘차게 따라 추며 소녀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렇게, 1990년대 후반의 교실은 대중문화의 주인공들과 공기의 절반을 나눠가지며 흘러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2년, 30대 초반의 어른이 된 이들이 술자리에서 읊어대던 추억이 드라마의 내러티브로 다시 쓰였다.

“촬영은 내일하고 이틀 정도 더 하면 될 것 같아요.” 의 11~12화 방영을 앞둔 8월27일 저녁, 과 통화한 신원호 PD는 총 16화 드라마 촬영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밝혔다. 드라마는 1997년 부산과 2012년 서울을 오가며 이제는 서른셋이 된 여섯 주인공의 학창 시절을 불러낸다.

왜 1990년대일까. 드라마에는 ‘1세대 빠순이’ 성시원이 나오고, 삐삐에 찍힌 ‘1004’의 출처가 누군지 몰라 밤마다 아리송한 윤윤제(서인국)와 다마고치와 DDR를 즐기는 방성재(이시언) 등이 나온다. 90년대는 “‘역사의 종말’과 함께 온 ‘소비의 시대’”(강준만, )였고, 드라마의 배경이 된 90년대 후반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국가 경제는 휘청했지만 한편으로는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대중화하고 스타 매니지먼트로 한국 연예산업이 대형화했으며, 13개 영화잡지가 간행될 정도로 영화 담론이 흥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대중문화의 호시절이었다. 그런 90년대에서 빠져나온 지 십수 년이 지났고 이제는 한 걸음 떨어져 그때 그 순간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신 PD는 “자연스런 흐름, 90년대가 복고가 되는 시절이 도래한 것”이라고 말한다.

80년대생, 복고를 소비하는 나이로

드라마를 지켜보는 외부의 시선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음악평론가 차우진씨는 “지금 30대 초반은 한창 돈 버는 시기, 어떻게 해야 재미있게 사는 걸까 고민하는 나이”라며 “문화의 가장 강력한 소비층인 이들에게 호소하는 이야기가 등장”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20년 주기설’로 정리했다. “드라마나 영화로 재현되는 패턴을 보니 대체로 주기가 20년 단위였다. 2000년대 초반에는 1990년대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는데, 2010년대가 되니 이를 말할 시기가 된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시작해서 당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문화 코드가 쏟아져나오더니 영화와 드라마 등 내러티브를 가진 요소로 옮아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H.O.T.의 문희준이 ‘아이돌의 조상’으로 명명되고 그의 첫 무대는 어언 15년 전의 것이 되었으니 1990년대에 10대를 보낸 대중음악평론가 이민희씨 또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복고’라는 개념을 소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2012년은 대중문화에서 1990년대를 처음으로 ‘옛이야기’로 쓴 해로 기록될 것이다. 흐름을 살펴보면, 특정 시절의 정서를 가장 효과적으로 불러오는 도구인 음악이 먼저 흘러나왔다. 지난해 3월 시작한 MBC 는 매주 리메이크되는 옛 노래 사이에 90년대 가요를 끼워넣었고, 서울 홍익대 인근 등지에서 문을 열고 8090 가요를 틀어주는 클럽 ‘밤과 음악 사이’는 90년대 복고 바람의 충분한 밑밥이었다. 싸이는 지난 8월11일 서울 잠실 올림픽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썸머스탠드-훨씬 더 흠뻑쇼’를 열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 박미경의 등 90년대 댄스가요 메들리와 춤을 선보였다. 뮤지컬 은 7080 가요를 넘어 90년대 인기를 끌었던 현진영의 , 김원준의 , 솔리드의 등을 무대에 올리며 당시의 정서를 환기한다. 청각적 자극에 먼저 호소한 90년대 감성은 영화, 드라마 등 시각적 무대로 옮아왔다. 에 앞서 영화 이 90년대 초반 20대를 보낸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SBS 드라마 은 매회 마흔 살 주인공들의 20대로 돌아가 90년대를 회고했다.

여기저기서 1990년대가 호출되는 와중에 이 안에서도 다른 결이 존재한다. 차우진씨는 “두 개의 90년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1년을 단위로 무언가 확확 바뀌는 시기였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율화로 90년대 초·중반에 유학생이 많아지자 외국에 다녀온 이들이 고급 음악을 많이 들여왔고 이런 취향에 맞춰 유희열·윤상·김현철 같은 가수들이 등장했다. 일본 문화가 개방되고, 민영방송사가 개국하고, Mnet 등이 등장하며 연예·오락 프로그램이 몸을 키웠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는 댄스 커뮤니티가 흥하고 거기서 유명했던 이들이 뭉쳐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했다. 90년대 초반에 10~20대를 보낸 이들이 이런 변화를 눈으로 확인한 세대였다면, 90년대 후반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은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세대였다. 그러니 90년대의 10대는 하나의 세대로 규정되지 않는다. 90년대 안에 공존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덤과 H.O.T.의 팬덤은 서로 다른 색을 가졌고 이 변화의 주기는 매우 짧았다. 그러나 두 그룹은 오늘날 대중문화의 원형으로 동시에 기능하며 이는 과 , 90년대 리메이크 가요와 뮤지컬 등이 특정 세대만이 아닌 그 앞과 뒤의 세대와도 소통할 수 있는 이유로 작용한다.

버려지는 시기도 빨라, 빨리 돌아오다

종합하면 1990년대가 복고로 읽히는 것은 시간상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이 시절이 특별한 지점임을 부정할 수 없다. 90년대는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대중문화의 원형을 체험한 때이고, 삐삐와 PCS폰 등 처음으로 디지털 기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기이기도 하다. 신원호 PD의 말대로 “세상이 급속도로 바뀌기 시작했고, 그만큼 버려지는 시기도 빨라” 가깝고도 멀게 느껴지는 시절이다. 이동연 교수는 “90년대 복고 바람은 이제 출발점에 섰고, 기성세대의 향수를 부를 수 있는 것들은 현재의 스타일로 세련되게 계속 재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때가 되었으므로 90년대 복고가 도래했고, 그리워서 우리, 그리고 ‘오빠’를 외치던 1세대 빠순이들은 이제 그 시절을 곱씹으며 다시 소비하는 세대가 되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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