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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하다

질문이 없는 토크쇼 <힐링캠프>거울 앞 예쁜 표정 짓기로 상처는 치유될 수 있는가
등록 2012-05-16 13:52 수정 2020-05-03 04:26
SBS 토크쇼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는 ‘게스트 맞춤형’프로그램이다. 방송이 공들여 남기는 것은 토크도, 한 인물의 삶의 궤적도 아닌, 이미지일 것이다. <힐링캠프>에 출연한 박근혜·이효리·차인표(왼쪽부터).

SBS 토크쇼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는 ‘게스트 맞춤형’프로그램이다. 방송이 공들여 남기는 것은 토크도, 한 인물의 삶의 궤적도 아닌, 이미지일 것이다. <힐링캠프>에 출연한 박근혜·이효리·차인표(왼쪽부터).

이효리는 SBS (이하 )에 출연했을 때, 자신이 변하게 된 계기로 정신과 상담을 이야기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을 반성하며 “효리야 미안해”라고 말하는 순간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는 바로 이 상담의 과정과 닮은 토크쇼다. 게스트는 힐링 포인트라는 주제 아래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의 치유법은 그 이야기를 끌어내고 귀기울여 들어주는 것이다.

‘이루리라 다 바라는 대로’ 자막과 함께한 박근혜

는 과포화된 토크쇼 시장에서 과거 문화방송 의 ‘무릎팍 도사’가 맡았던 역할을 이어받으며 자리를 잡았다. 최근 SBS 로 화제의 중심에 선 박진영도 에서 가수로서의 컴백을 앞둔 심경을 들려주었고, 패티김은 은퇴 심경을 밝히고 오랜 가수 생활을 정리하려고 이 자리를 찾았다. 이미 녹화를 마치고 5월14일 출연이 예정된 양현석은 방송에서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경우다. 박근혜·문재인 같은 정치인에서부터 사건·사고를 겪었거나 오랜 공백 뒤 컴백하는 스타들,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지 않는 연예인이나 명사들까지 를 선택했다. ‘무릎팍 도사’보다 독하지 않으면서 오직 게스트 본인에게만 집중해주고, 부담스러운 질문은 던지지 않는 토크쇼이기 때문이다. 에서 치유받는 대상은 게스트다. 이를 위해 진행자나 제작진들은 ‘게스트 맞춤형’의 배경과 조건을 만들어준다. 자신에게 가장 편한 장소에서, 원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신년 특집으로 연속 방영된 박근혜·문재인 편은 이런 특징이 한층 더 두드러진 방송이었다. 박근혜가 퍼스트레이디이던 시절 시위로 구속됐던 문재인이 박근혜에 이어 출연했다는 사실이 묘하지만, 실제 프로그램에서 이들의 정치적 지향점이나 색깔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이들이 에 출연한 뒤 시청자의 기억에 남은 것은 첫사랑의 대상을 ‘본받고 싶은 사람, 선망의 대상’으로 표현하는 박근혜의 조심스러움이나, 특전사 시절의 경험을 강조하고 격파 시범을 보인 문재인의 단단함이다. 결국 가 남기는 것은 토크도, 한 인물의 삶의 궤적도 아닌, 이미지일 것이다. 의 주인공들은 어떤 걸림돌도 없이 예쁜 배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홍보할 수 있다. 박근혜는 ‘맨주먹 정신 다시 또 시작하면 나 이루리라 다 나 바라는 대로’라는 자막이 친절하게 달리는 상황에서 거북이의 를 불렀다. 연예인들도 그렇지만 정치인들에게도 이런 기회가 허락되는 것은 예능적 재미에 앞서 위험한 일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런 방식의 자기 고백이 힐링이라는 목적 아래 ‘진정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는 것이다. 어떤 감정이나 행동이 진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는 진정성은, 누구도 증명할 수 없기에 오히려 남발되고 있는 가치다. 자신의 입장에서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곧바로 진심이나 진정성으로 치환될 수는 없다. 실제 의료 행위로서의 상담이 마음과 정신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그 상담이 내가 아는 나 자신이 아니라 나도 몰랐던 자아, 어쩌면 다른 이들에게는 결코 보여줄 수 없는 부끄러운 모습까지 마주 보게 하기 때문이다. 반면 의 게스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자기 안에서 이미 충분히 걸러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흘리는 눈물은 자기 연민일 가능성이 높다. 진행자가 끊임없이 개입하고 긴장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타자의 존재를 의식하게 만들었던 ‘무릎팍 도사’와 달리, 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거울이다. 그 앞에서 그들은 가장 멋지고 예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들에게 가장 좋은 ‘지금 이 순간’
그래서 에는 질문이 없다. 이경규·김제동·한혜진 세 진행자는 게스트의 말을 들어주고, 그다음 주제로 넘어갈 수 있는 다리가 돼줄 뿐이다. 가 종종 강연의 형식을 띠게 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의 저자 김정운 교수가 출연한 편이나, 기부와 봉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강력히 펼친 차인표 편, 절대자에 대한 믿음과 행복론을 화이트보드에 표까지 그려가며 설명한 박진영 편 모두 일종의 특강과 같았다. 그리고 누군가의 앞에서 강연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보통 그러하듯, 이들은 이미 인생의 고비나 힘든 순간을 이미 넘어온 인생의 선구자로 거기에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회고록과 같고, 그들에게 가장 좋은 순간은 ‘지금 이 순간’이다. 물론 그 편안함과 부담 없음이 가 시청자보다 게스트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가 주고받는 대화로서의 토크쇼로 기능하고 있는지, 곱게 단장된 이미지와 만들어진 표정을 보는 일이 게스트가 아닌 시청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이런 치유의 과정에 함께하니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묻는다면, “기쁘지는 않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는 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의 치유는 말하는 이의 몫일 뿐, 듣고 보는 이와는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이나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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