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인 기생에 홀려 공금 횡령. 朝銀 횡령범은 정열 희생자” “첫사랑에 실패한 후로 방랑과 허영과 범죄의 생활… 법정에 선 미인 鄭貞澈의 추락 경로” “첫사랑 못 잊어서… 본부의 밥 위에 치독했다가 발각” “첫사랑에 취한 처녀 절도죄로 철창에, 정남에게 곱게 보이자는 것이 탈!” 1920~30년대 신문이 다루는 첫사랑은 ‘파국’의 동의어였다. 첫사랑에 취한 정열의 희생자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범죄에 빠졌고, 사랑의 경쟁자에게 독을 발랐다.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는 얘기다.
첫사랑도 똥 싸고 배신한다
‘치정’은 어리석고, 어지럽다. 치정이 아닌 사랑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사랑은 무한대의 편견이니까. 사랑은 반쯤의 고통이니까. 그래도, 아픔인지 모르고 끝나버렸던 반짝이는 사랑, 물 머금은 이별 하나쯤 없는 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대중문화가 사랑을, 풋내 나는 첫사랑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울고 짜는 사랑 타령밖에 없다고 욕하는 이도 있지만, 어쨌든 대중가요는 첫사랑을 사랑한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저작권이 등록된 대중가요 가운데 제목에 ‘첫사랑’이 들어간 노래는 451곡이다. 첫사랑에 대한 탁월한 해석은 1969년 ‘펄시스터즈’가 내놓았다. “첫사랑을 믿어야만 하나… 깨질 것만 같애 자꾸 겁이 나서… 첫사랑이란다 그리움이란다 그리움이 크면 외로움이란다.”(). 2000년대는 거칠어졌다. 아이돌이 부르는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 “사랑의 기준은 언제나 너였어”라며 ‘순장’시킬 태세다(FT아일랜드 ). 3인조 밴드 ‘버스커버스커’의 도 지금, 4월을 타고 흐른다. “어떡하죠 아직 서툰데/ 이 마음이 새어나가 커져버린 내 마음이/ 자꾸만 새어나가….”
영화도 첫사랑을 가요만큼 사랑한다. 집 앞, 골목길, 돌계단, 가로등, 자전거, 지하철, 마을버스…. 온갖 도시 인프라와 교통수단이 첫사랑에 동원된다. 신기한 것은, 그런데도 현실과 대응하는, 그럴듯하게 쪽팔린 첫사랑을 재현한 영화는 별로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최인호 소설을 원작으로 1986년 개봉한 영화 는 첫사랑에 대한 의미 있는 통찰을 던진다. “그 여자도 똥 싼다”는 대사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구의 첫사랑도 똥을 싸는 법이다. 무한대의 편견을 뚫고 피어난 고통의 깨달음이다. 뮤지컬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2010)에는 노골적으로 ‘첫사랑 찾기 사무소’가 등장한다. 영화 속 칠판에는 ‘처음 사랑만이 첫사랑은 아니다’라는 ‘틱낫한’류의 명상 잠언이 등장한다. 영화 (2001)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처절한 명대사보다, 동전을 꺼내들고 여자의 차를 긁어버리는 남자의 소심한 복수로 기억돼야 옳은 영화다. 첫사랑도 똥 싸고 배신한다, 그 단순한 걸 깨닫는 게 이리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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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 위태위태한 것을
1978년 서울국제가요제에서 박경애가 부른 가사는 이렇다. “줄을 타며 행복했지 춤을 추면 신이 났지/ 손풍금을 울리면서 사랑 노래 불렀었지/ 공 굴리며 좋아했지 노래하면 즐거웠지/ 흰 분칠에 빨간 코로 사랑 얘기 들려주었지/ 영원히 사랑하자 맹세했었지/ 죽어도 변치 말자 언약했었지/ 울어봐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어릿광대의 서글픈 사랑.”(정민섭 작사·작곡). 줄 위의 첫사랑은 이리도 아슬아슬, 위태위태한 것을.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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