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와 , ‘건축’이라는 문패를 단 두 편의 영화가 잇달아 개봉했다. 영화 은 건축설계사 사무소에서 일하다 영화 으로 영화감독의 길에 들어선 이용주 감독이 만들었고, 다큐멘터리 는 고 정기용 건축가의 마지막 생애를 담은 영화다. 두 건축가가 영화판에 새로 올린 집은 낯설지만 탄탄하다.
옛사랑에 말을 걸고 세상에 질문을 던지다
첫사랑을 일깨우는 영화 은 건축에 대한 영화는 아니지만 몹시 건축적인 영화다. 은 십수 년 전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만난 승민과 수연의 이야기가 터를 이룬다. 대학교 1학년, 스무 살의 첫사랑은 너와 내가 함께 묶인 어떤 공간에서 출발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곳을 탐사해야 하는 수업이었는지도 모른다.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였을까.” 사소한 말도 하루 종일 곱씹고 친구들의 ‘객관적인 판단’에 매달린다. 그래봤자 소용없다. 그가 내 쪽을 쳐다볼라치면 떨리는 입술, 그가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할 때면 처지는 어깨를 감당하지도 못할 걸. 영화는 ‘첫사랑’이라는 재료의 물성을 잘 이해하는 노련한 건축가처럼 영화 전반에 그 질감을 생생하게 부려놓는다.
구조적으로는 더욱 그렇다. 우선 영화는 1996년 첫사랑 이야기와 십수 년 뒤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의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배우 이제훈과 배수지는 대학 1학년생으로 처음 사랑을 시작한 연인을, 엄태웅과 한가인은 건축가와 건축주로 다시 만난 그들을 연기한다. 수연(한가인)은 고향인 제주도에 집을 지으려고 승민(엄태웅)을 찾아가는데, 승민은 처음엔 수연을 알아보지 못하는 척하며 그들의 과거 시절 이야기는 마지못한 듯 시작된다. 그러나 옛날 이야기는 지금만큼이나 존재감과 비중이 크다. 영화평론가 장병원씨는 “관습적인 플래시백이나 회상신이 아니라 돌연히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독특한 방식에 이 영화의 트릭이 있는 듯하다”며 “구조물을 쌓듯이 기억의 구조를 맞춰가며 사랑의 전체를 그리는 것도 건축을 닮았다”고 말했다. 영화 곳곳에 건축적 비례감을 느낄 수 있는 서사가 가득하다. 전반부가 집이 지어지는 공간과 도시를 탐색하는 과정이라면, 후반부는 어긋나버렸던 연인이 다시 짓는 집의 모양새다. 수연과 승민이 옛사랑의 기념품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조차 나란하다. 고백을 앞두고 망쳐버린 첫사랑, 어떻게 해서도 회복이 불가능하다면 새로운 집을 지을 수밖에. 이것은 사랑의 재건축이나 증축에 대한 영화일지 모른다.
3월8일 개봉한 엔 건축의 언어를 빌려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건축가가 나온다. 는 을 만든 정재은 감독이 건축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으려고 집어든 소재다. 2005년 대장암 판정을 받았던 정기용 건축가는 죽기 직전까지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전북 무주군 공공프로젝트, 기적의 도서관에서 보듯 건축으로 문화를 생산하고 시대를 걱정하고 사회를 지적해온 그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 것은 “시간이야말로 우리들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했던 그에게 이 땅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공적인 풍모 못지않게 보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건축가의 가난한 월셋집에 떨어지는 햇살. 그 햇살을 만지작거리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죽음을 마주보고 싶다”는 말이다. “죽을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건축은 뭔지, 도시는 뭔지 하는 근원적 문제를 곱씹으며 성숙한 다음에 죽는 게 좋겠다. 한마디로 위엄이 있어야겠다.” 집이 그저 우리의 삶을 담는 그릇에 불과한 것처럼 건축적인 어법도 그저 액자에 불과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정교한 액자는 삶에 켜켜이 햇살을 비춘다.
삶을 전하는 소재로서의 건축
은 이용주 감독이 10여 년 전에 각본을 썼던, 오랫동안 공들인 설계도에서 나온 영화다. 개봉을 하루 앞둔 3월21일에 만난 이 감독은 “건축가가 건축주를 잘 이해해야 좋은 주택이 나오는데 연애도 그런 것이 아닐까, 건축과 연애를 합칠 수도 있겠다”던 당초의 구상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감독은 “건축은 사랑으로 인도하는 가이드 구실을 했을 뿐 건축에 경도돼 영화를 읽거나 어떤 건축적인 믿음을 영화로 들여오는 것에 저항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전직 건축가로서의 책무는 전혀 없었다. 건축가들은 건축이 세상을 구원할 거라 믿지만 내겐 그저 좋은 소재였을 뿐”이라는 이 감독의 말은 어쩐지 정기용 건축가의 말과 겹쳐진다. “건축하는 놈들은 마치 건축으로 세상을 다 바꿀 것같이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은 삶에 있다. 도시도 삶이 존재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다.” 그 말이 옳다. 영화도 건축도 삶을 향해 지어지고 부서지고 재건축된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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