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이 경주하는 계절이다. 2012년 4월11일의 19대 국회의원 선거와 12월19일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대중의 눈앞에 부지런히 오르내린다. 미국도 한국처럼 팟캐스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꾸준히 정치가 회자되지만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도 정치에 대한 관심이 꾸준하다. 그런데 미국 브라운관에 비친 복잡하고 입체적인 정치인 캐릭터들은 공식적인 토론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적나라한 정치인들의 뒷면, 그 자체다.
이상적인 정치인은 없나
미국 케이블 채널 에서 방송하는 는 능력과 카리스마를 갖추었지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부패도 마다하지 않는 시카고 시장 톰 케인(켈시 그래머)의 이야기다. 톰은 일리노이 주지사 선거에서 무능하고 부패한 현 주지사인 맥콜 컬렌(프랜시스 귀넌)을 배제하려고 젊고 잘생긴 주 회계사 벤 자작(제프 헤프너)을 지원한다. 선거는 음모 대결이다. 벤 자작 선거본부는 컬렌 쪽에 흑인 남성 한 명을 집단 폭행하는 백인들 중 대학생 벤 자작이 끼어 있는 동영상을 흘리고, 컬렌 쪽은 이 동영상을 은밀히 유포한다. 그러나 기자회견 자리에서 동영상 속 흑인 남성이 벤 자작만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섰다고 증언하자 상황이 반전된다. 벤 자작은 유부남이면서 톰 케인의 비서 키티 오닐(캐슬린 로버트슨)과 수시로 위험천만한 장소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섹스 중독자 수준의 정치인이지만 그의 인기는 다시 오른다. 문제는 정치인의 도덕적 흠결이 아닐지도 모른다. 는 선거라는 장기판의 말 구실만 했던 정치인들도 현실적 비전을 갖거나 진지한 정치인으로 거듭나는 순간 그에 대한 시각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hbo> 채널에서 방송됐던 는 미국의 금주법 시대(1920~30년대)에 밀주 제조 및 판매를 지휘해 갱단보다 더 위세를 떨친 부패 공무원 너키 톰슨(스티브 부세미)의 이야기다. 애틀랜틱 카운티의 회계사인 그는 공화당원으로서 당시 공화당의 선거 공약 ‘여성참정권’을 적극 홍보한다. 하지만 이는 여성들의 표를 끌어오려는 목적일 뿐이다. 밀주 제조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정치권에 전방위 로비를 펼쳐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워런 하딩의 당선에 크게 기여하고 애틀랜틱 시티의 시장도 자신의 구미에 맞는 인물로 당선시키는 너키 톰슨의 최종 목표는 자신이 사놓은 애틀랜틱 시티 주변 토지에 도로가 들어서 더 큰 부를 거머쥐는 것이다. 는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겉으로는 흠결이 없어 보이는 공무원의 추악함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시대극의 형태로 제시한다.정치인은 그의 공약만큼이나 믿기 어려운 사람들이 아닐까. 영화 는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을 다룬다. 젊고 유능한 정치컨설턴트 스티븐 메이어(라이언 고슬링)는 낙태·총기·사형 및 친환경 에너지와 같은 이슈에서 진보적 관점을 취하는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마이크 모리스(조지 클루니)에게 진심으로 감동을 받는다. 스티븐은 세련된 연설문과 치밀한 전략을 만들어 마이크의 지지율 상승에 크게 기여한다. 그러나 선거운동본부라는 작은 정치판에서 정치인에 대한 믿음은 곧 참혹하게 깨진다. 같은 선거운동본부에서 일하며 자신과 연인 사이로 발전한 인턴사원 몰리(에번 레이철 우드)가 마이크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질문이 시작된다. 정치인을 믿는 사람들은 이상주의자일까, 아니면 그 역시 정치에 ‘감염’되는 것일까? 마이크를 도덕적으로 믿을 수 없게 된 뒤에도 스티븐은 몰리가 비밀리에 임신중절 수술을 받도록 도와 홍보관의 소임을 다한다. 하지만 후보 마이크와 선거본부장 폴(필립 시모어 호프먼)이 스티븐을 해고하자 결국 스티븐은 마이크에게 몰리와의 스캔들을 폭로하겠다며 자신의 복직을 요구한다. 그러나 물리적 증거 따위는 없다며 폭로해봤자 해고에 불만을 품은 전 홍보관의 음해로 생각할 것이라고 스티븐을 몰아붙이는 마이크의 모습에서 순진할 정도로 이상을 추구하던 정치인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스티븐은 마이크를 끝까지 돕는다. 그의 공약과 정책을 지지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선거홍보관 경력을 위해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차악’을 선택해야만 하는 유권자
그러나 미국의 정치 드라마와 영화들이 정치에 대한 혐오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치 세계 내부는 추악하더라도 유권자는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정치임을 보여준다. 정치인의 이미지에 기대지 말고 맥락을 파악해야 하며, 정치인을 완전히 믿지 말고 계속 감시할 것도 요청한다. 쉽게 대답하기 힘든 질문도 함께 던진다. 정치인을 판단하는 기준을 개인의 사생활에까지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공적인 부분에서만 판단할 것인지다. 사생활은 추악하지만 공적으로 유능한 정치인을 뽑을 것인가, 사생활은 청렴결백하지만 무능한 정치인을 뽑을 것인가. 모든 계급·지역의 공익에 기여하는 정치인을 뽑을 것인가, 자신이 속한 계급·지역의 이익에 기여하는 정치인을 뽑을 것인가. 현실정치에서도 통용되는 질문이다.
최원택 저자
</hbo>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검찰, ‘불법 합병’ 이재용 2심도 징역 5년·벌금 5억원 구형
수도권 ‘첫눈’ 오는 수요일…전국 최대 15㎝ 쌓인다
친자 인정한 정우성…29일 청룡영화제 예정대로 참석
[영상] 이재명 ‘위증교사’ 무죄…법원 “통상적 요청과 다르지 않아”
[단독] 김건희 초대장 700명…정권 출범부터 잠복한 문제의 ‘여사 라인’
[단독] 북파공작에 납치돼 남한서 간첩활동…법원 “국가가 18억 배상”
[영상] ‘무죄’ 환호 이재명 지지자들 “검찰의 억지 기소, 국민이 알게 될 것”
[영상] ‘이재명 무죄’에 지지자들 “한시름 놓았다”…보수단체와 신경전도
[영상] ‘위증교사 무죄’ 이재명 “죽이는 정치보다 공존하는 정치 하자”
유승민 “일본에 사도광산 뒤통수…윤, 사과·외교장관 문책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