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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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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독립영화가 피었네

대중과 소통 나선 새로운 상상력, 볼거리 많은 올봄 3곳의 독립영화 축제에서 읽은 열쇳말… 청춘, 뚝심 있는 연출, 다큐멘터리
등록 2012-03-17 12:00 수정 2020-05-03 04:26

물오른 독립영화 상영작들에서는 현실의 무게가 느껴진다. 위부터 영화 <핑크> <말하는 건축가> <줄탁동시> <두 개의 문>의 한 장면.

물오른 독립영화 상영작들에서는 현실의 무게가 느껴진다. 위부터 영화 <핑크> <말하는 건축가> <줄탁동시> <두 개의 문>의 한 장면.

3월, 독립영화의 물이 먼저 올랐다. CGV 다양성 영화 전문 브랜드인 무비꼴라쥬에서는 3월31일까지 ‘한국 독립영화 페스티발’을 연다. 서울 강변·구로·대학로·상암·압구정, 경기도 동수원·오리, 인천, 부산 서면 등 전국 9곳의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한 달 동안 27편 한국 독립영화만을 상영하는 행사다.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독립영화전용관 인디플러스에서도 개관 1돌을 맞아 3월11일까지 27편의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기획전을 열었다. 독립다큐멘터리 영화제인 ‘인디다큐페스티발 2012’는 3월22~28일 서울 롯데시네마 홍대입구관에서 27편의 한국 독립다큐멘터리를 선보인다. “독립영화가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는 시스템”( 이충렬 감독) 속에서 질식해가던 한국 독립영화에 숨통이 트일 것인가. 영화에서 새로운 상상력을 찾는 관객 앞에 나설 채비를 갖춘 한국 독립영화들 중 눈에 띄는 영화를 들여다본다.

알을 깨고 나온 청춘

2011년 독립영화의 주제어는 ‘청춘’이었다. 관객 수 2만 명을 넘어선 영화 덕분이다. 이번에도 무비꼴라쥬에서 개봉하는 영화 9편 중 3편이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청춘의 빛깔은 다채롭지만 특별히 1편의 영화가 눈에 띈다. 3월1일 무비꼴라쥬에서 개봉한 김경묵 감독의 영화 는 두 남녀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주유소에서 일하다 만난 탈북소년 준(이바울)과 조선족 소녀 순희(김새벽), 이들이 달리는 이유는 그저 이 자리에서 도망치기 위해서다. 이국인이면서도 이 비루한 도시의 당사자인 그들이 터널을 몇 개 지나고 로드뷰를 눌러 가보고 싶은 곳을 택한들 그들이 궁극적으로 이곳을 벗어날 방법이란 없다. 게이 소년 현(염현준)은 모텔을 전전하며 몸을 팔든, 펀드매니저인 애인이 마련해준 오피스텔에 있든 결국 갇힌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은 자란다. 첫 단편영화 의 인상이 워낙 강렬한 탓에 김경묵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아는 관객에게 그는 소년의 이미지다. 그것도 얼굴을 가린 자들에게 갇혀 있는 소년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에서 카메라 렌즈를 통해 관객을 비뚜름히 바라보던 소년은 이제 벌거벗고 세상으로 뛰쳐나왔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도록 새끼와 어미닭이 서로 안팎에서 쪼는 것을 말하는 사자성어 ‘줄탁동기’에서 나온 이 영화는 여전히 어둡지만 성장의 참맛에 혀끝을 댄다.

개봉작 외에도 한국영화아카데미 지원작으로 만들어져 페스티발에서 상영된 영화 4편 중 3편이 청춘의 영화다. 작품을 선정하는 데 참여한 무비꼴라쥬 이원재 프로그래머는 이렇게 분석했다. “‘88만원 세대’라는 담론에 주력했던 지난해에 비하면 연령대도 현실도 부쩍 높아졌다. 비정규직이라 하더라도 회사나 사회의 틀 안으로 들어가며 ‘포스트 88만원 세대’를 말하는 인상이다. 또 하나는 부터 청춘·청년 세대를 말하더라도 익숙한 장르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는 것이다. 성장과 미스터리 구조를 결합한 영화 은 장르적으로는 충무로 기성 감독의 영화에 비해 손색없다.”

큰 감독에게서 ‘독립’한 그들

독립영화는 어느 유명한 감독의 습작이나 과거형이 아니다. 굳이 시제를 짚는다면 미래다. 3월8일 개봉한 의 이광국 감독과 3월15일 개봉을 앞둔 의 문시현 감독은 각각 홍상수 감독과 김기덕 감독의 연출부에서 일해온 이들이다. 는 홍상수 감독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이야기로 뻗어나갈 가능성을 예비한다. 이광국 감독의 말에 따르면 홍상수 감독은 이 영화를 보고 “순결하고 귀여운 네 이야기”라고 평했단다. 이광국 감독은 “홍 감독님께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적은 예산으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해나갈 수 있는 의지와 자세”라고 말했다. 은 10회차 촬영에 단돈 700만원을 들인 초저예산 영화로 화제가 됐다.

전수일 감독은 이런 독립영화의 현실을 오랫동안 헤쳐나온 감독이다. 3월15일 개봉하는 영화 에서 그린 빛바랜 선술집 ‘핑크’ 같은 현실이었을지 모른다. 영화 전반부를 흐르는 강산에의 노래처럼 과거의 어느 시절을 환기하는 매체로 치부돼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선술집 핑크를 지키는 여주인공 옥련(서갑숙)은 “우리 마당 버려지는 것은 못 본다”며 재개발 바람 앞에 당차게 버틴다. 정신지체를 앓는 아들과 아버지에게서 도망친 수진(이승연)까지도 상처를 치유할 힘을 얻는 것은 옥련의 힘인가, 시간이 멎어버린 군산의 힘인가, 뚝심 있게 장르를 지켜온 감독의 힘인가.

12년 만에 주연으로 돌아온 서갑숙만큼이나 3월22일 개봉하는 영화 에서 나이든 부부로 나오는 주인공 주현과 예수정도 아름답다. 소설 을 원작으로 한 는 결혼한 지 40년이 넘은 노부부가 막을 수 없는 이별을 마주하면서 다시 한번 사랑의 설렘을 느끼는 이야기다. 상업영화에 가까운 세련된 화법과 대중성을 추구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현실, 영화보다도 진한

‘한국 독립영화 페스티발’ ‘인디플러스 기획전’ ‘인디다큐페스티발 2012’ 3곳의 독립영화 축제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허구보다도 사실적인 소재가 강세를 이룬다는 것이다. 무비꼴라쥬에서 주목받은 다큐멘터리 는 정재은 감독이 건축가 고 정기용씨가 세상을 뜨기 전 1년여를 동행하며 만든 다큐멘터리다. 무비꼴라쥬와 인디플러스에서 동시에 주목받은 은 시청각 중복장애인 영찬씨와 척추장애인 순호씨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현실을 본업으로 삼는 인디다큐페스티발에는 태준식 감독이 고 이소선씨의 삶을 영상화한 를 내놓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가 아니라, 뚝심 있게 시대를 버텨낸 한 여성을 삶을 그린다. 다큐멘터리는 활동가가 활동가에게 바치는 헌사이며 자식이 어머니를 부르는 명료한 이름이다. “어머니!”

이번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눈에 띄는 경향 중 하나는 서울 용산 참사를 다룬 작품이 대거 등장했다는 점이다. 2011년 새로 만들어진 을 포함해 총 9편의 다큐멘터리가 용산 참사를 재조명했고, 이번 페스티발에서는 그중 6편이 상영된다. 참사 뒤 3년.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가 그때를 복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디다큐페스티발의 변성찬 프로그래머는 이렇게 설명했다. “용산 남일당 장기투쟁 기간 동안 영상활동가들이 여럿 그곳을 지켰다. 테이프 분량만도 엄청났다. 이번에 만들어진 9편을 보니까 편수만큼이나 시점도 다양했다. 피해자였던 철거민들의 입장에서 찍은 작품, 그 공간에서 싸우는 다양한 활동가들을 담은 다큐멘터리, 경찰특공대를 중심으로 담은 영상도 있었다. 이들은 개별적으로 찍고 만들었지만 한데 모아보니 한 사건을 다양한 시선으로 다룬 거대한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다큐멘터리를 두고 현장을 그대로 전할지, 해석과 시선을 가해 영화처럼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낼지에 대해 늘상 갈등이 있다. 그런데 용산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모아보니 질료처럼 사실을 전하는 작품과 해석이 가미된 작품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합쳐졌다. 양자택일이 아닌 길을 찾은 인상이다.” 은 성소수문화 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에 속한 김일란·홍지유 감독이 공동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의 시선은 특이하게도 당시 가해자의 입장에 처했던 경찰과 경찰 쪽 목격자를 향한다. 이라는 제목도 재판 과정에서 그들의 진술에 자주 등장하는 ‘문’에서 착안했다.

인디다큐페스티발 2012에서 주요하게 기억해야 할 프로그램 중 하나는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이다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은 수다한 투쟁 현장을 지키는 영상활동가들에게 제작과 상영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마련된 모임이다. 이번 페스티발에서는 이 모임이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고 김천석·이상현씨의 작품도 함께 상영된다. 변성찬 프로그래머는 “지난해엔 현장 다큐멘터리들이 주로 쌍용차를 다뤘는데 올해는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이 들어오면서 우리조차 몰랐던 수많은 현장 투쟁 이야기가 알려졌다”며 “알려진 큰 사업장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못하고 묻힌 크고 작은 현장 이야기들이 전파되는 효과가 기대된다”라고 했다. 그는 “이것이 다큐멘터리의 힘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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