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우리는 매일 매혹적인 사물들이 외치는 끝없는 호소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우리는 왜 더 좋은 만듦새, 더 아름다운 모양새에 집착하는 것일까? 우리는 왜 아이폰을 사려고 매장 밖까지 긴 줄을 늘어서야 했나? 슈퍼에서 칫솔 하나를 살 때도, 기능과 가격에 더해 모양새를 따져보지는 않았는지? 몇 년을 타야 할 자동차를 선택할 때는 색과 모양 때문에 며칠 밤낮을 고민해본 경험은? 일찍이 세상 사람들이 지금처럼 많은 물건을 소유한 적이 없다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끝없이 집 안을 물건들로 채우고 무언가를 갖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다.
좋은 것, 이상한 것, 놀라운 것들의 세계
미술·건축·디자인 잡지 의 전 편집장이자 영국 런던 디자인뮤지엄 관장인 데얀 수직은 (홍시 펴냄)에서 우리가 사물에 집착하는 이유를 ‘디자인’이라는 ‘언어’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폭발적 소비의 시대, 그 자신도 새로운 물건들의 현란한 광택에 매료돼온 ‘소비를 위해 태어난 세대’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더불어 우리를 집어삼킬 듯 위협하는 새로운 제품들의 홍수에서 때론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단다.
그러나 한편으로 저자는 디자인, 곧 사물이 가진 언어는 인간이 만든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라고 말한다. 우리는 때때로 아름답고 재치 있고 독창적인 사물들에 정서적으로 자극을 받기도 한다. 디자인에는 우리의 경제체제가 반영돼 있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의 흔적이 깃들어 있단다. 과격한 소비주의로의 몰입은 공포스럽지만 디자인의 시대, 디자인에 대한 이해 없이는 예술·상업·문화와 일상을 흐르는 정서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언어, 원형, 호사, 패션, 예술이라는 다섯 가지 범주를 통해 ‘좋은 것, 이상한 것, 놀라운 것’들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1장 ‘언어’에서 저자는 디자인이 개입한 온갖 물건에는 기능과 용도라는 뻔한 주제 외에 이해해볼 뭔가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미국 고속도로 표지판에 쓰이는 활자체인 ‘인터스테이트체’는 어떤 날씨나 속도에서도 지명을 알아보기 쉽게 디자인되었다. 그러나 이런 실용적으로 분명한 목적 외에도 이 활자체는 다른 상황들에 대해서도 알려주는데, 이를테면 이 서체만 보면 사람들은 자신이 고속도로에 들어왔음을 인식하게 된다. 영국의 신문 편집자들은 이런 함의를 자신들의 신문에 끌어들였다. 헤드라인에 8차선 고속도로 표지판에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인터스테이트체를 써서 역동성과 현재성을 작은 지면에 담는 데 성공했다.
2장 ‘원형’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의 범주를 만들어내는 물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저자는 원형으로서 설득력이 있으려면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물건의 기능이 무엇이며, 사용자가 그것을 작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전달할 수 있는 형태여야 한다. 어떤 제품에 대한 방대한 사용설명서가 따라온다면 그 물건은 결코 원형이 될 수 없다고 확신해도 좋다.” 예컨대 1930년대 만들어진 회전식 다이얼 전화기는 더 이상 쓸모 없는 물건이 됐지만 디지털 시대에도 전화기의 원형으로 기능한다.
3장의 주제는 ‘호사’(Luxury)다. 저자는 어느 시대보다 사치가 만연한 오늘날, 우리 시대의 호사는 점점 더 소비자에게 돈을 쓰도록 설득하는 디테일에 치중한다고 분석한다. 예컨대 손목시계를 구입했다면, 이는 양철통에 담기고 그것은 다시 상자 안에, 그 상자에는 다섯 가지 색으로 인쇄된 종이로 만든 끈 손잡이가 달린 봉투에 담겨 온다. 저자는 ‘호사’라는 단어가 원래의 의미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호사는 럭셔리란 단어로 치장한 온갖 소유물들의 유입에서 잠시 벗어나 쉴 수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4장 ‘패션’에서는 패션의 거대하고도 화려한 세계를 논한다. 패션 디자이너들은 전통적 관념과 선입견에 도전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디자인 언어를 만들었다. 다른 형식의 시각문화를 흡수하고 이용하며 다른 산업들의 기준 혹은 표본이 되기도 했는데, 저자는 패션 디자인이 이제 세련된 방식으로 미술과 건축뿐만 아니라 디자인 전체를 아우르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쓸모 있는 것이라는 오점?
5장 ‘예술’에서는 예술과 디자인의 관계를 논한다. 베블런의 의 문장을 빌려 우리는 쓸모 있는 것보다 쓸모 없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가 생긴다. 예컨대 몬드리안의 와 동시대의 디자이너 헤트 리트벨트의 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진 않았지만 비슷한 색채로 구성돼 있다. 정서적 강렬함도 비슷하다. 그러나 리트벨트가 손수 만든 의자는 몬드리안의 그림 한 점 값의 몇십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다. 리트벨트의 의자는 2000년 미국 뉴욕 필립스 경매소에서 15만~25만달러의 추정가로 경매에 부쳐졌지만, 몬드리안의그림은 2003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807만1500만달러에 팔렸다. 리트벨트의 의자는 유용성이라는 ‘오점’으로 몬드리안 그림에 비해 그 가치가 빛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디자인은 줄곧 인간의 욕망을 조장하는 데 쓰였음에도 예술과 디자인이 가지는 사회적 위계는 오래도록 변치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저자는 이제, 과잉의 시대를 지나 곧 절제의 시대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과시적 소비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근본적인 변화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새로운 물건이 주는 매혹, 그 순간적인 황홀경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물과 우리 사이의 흥미롭고 위험한 관계는 앞으로 살아갈 시대에도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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