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특별한 장소가 평범해지는 것은 굉장히 슬픈 일이다. 낯설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소는 나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끊임없이 새로운 장소를 찾는다. ‘스타벅스’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그곳은 정말 멋진 장소였다. 예술가에 가까운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직접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한 내부 인테리어, 발음하기도 어려운 메뉴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음료 사이즈들. 스타벅스에서 멋지게 아메리카노 ‘벤티’사이즈를 주문하고 그로테스크한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열면 머리 위로 수많은 영감이 쏟아졌다.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스타벅스가 쓰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축복은 어느 순간 끝나버렸고 영감은 고갈돼갔다. 이제 사람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커피숍을 찾는다. 특별한 장소가 마땅히 갈 곳이 없을 때 가는 곳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이제 커피숍 안의 사람들은 ‘저 사람들은 왜 이 시간에 이 장소에 있을까?’ 하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서 어떠한 감흥이나 정취도 찾을 수 없게 돼버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하며 소잿거리를 찾는 나에게 희망과도 같은 존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밤카페’(새벽까지 여는 커피숍)였다. ‘밤카페’는 아직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차분하고 차가운 밤공기와 오직 이 시간에 원래 있어야 할 곳인 침대 또는 클럽을 거부한 사연 있는 사람들이 주로 눈에 띈다. 특히 동네 깊숙한 곳에 위치한 ‘밤의 커피숍’들은 그 지역의 특색을 담고 있다. 그곳엔 그 동네의 젊은이들이나 그 동네의 정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밤카페들은 서울 반포동 서래마을에 주로 모여 있다. 서울성모병원 사거리에 있는 사평지하차도를 지나 서래마을 카페거리로 좌회전하자마자 오른쪽에 위치한 ‘커피빈’(그곳에는 운치 있는 야외 테라스와 함께 특별한 분위기가 흐른다), 내방역 BMW 매장을 끼고 우회전하자마자 왼쪽에 위치한 ‘더 페이지’(드높이 치솟은 자유로운 천장에다, 와플 초콜릿 맛이 죽여준다) 등등.
아! 이곳들의 특징 중 하나가 바게트빵을 먹다 부스러기를 떨어트리는 빈도로 프랑스인과 TV나 영화에서나 보이는 배우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실제로 난 지금 이 칼럼을 서래마을 ‘카페베네’ 야외 테라스에 앉아 쓰고 있다).
지금 내 옆으로 샤넬 신상 부츠에 돌체앤가바나 청바지와 몽클레어 패딩으로 코디한 한 여자가 야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내 옆을 지나가 카페 안으로 들어온다. ‘저 여자는 무슨 사연으로 이 밤에, 그것도 혼자 여길 왔을까?’ 나는 내 머릿속의 이야기 검색 기능을 켰다. 하지만 커다란 엔진 소리와 함께 답이 나왔다. 내가 위치한 테라스 옆 도로에 하얀색 페라리가 바짝 정차했다. 아메리카노를 받으며 마침 눈이 마주친 추리닝과 안경 차림의 나를 씨익 비웃(?)더니 페라리로 다가갔다. 그리고 묵직한 문을 힘겹게 열고는 인도의 높이보다도 낮은 시트를 향해 엉거주춤한 자세로 엉덩이를 밀어넣었다. 페라리남과 만난 지 얼마 안 된 것이 분명했다. 난 일부러 페라리의 조수석 창문으로 비치는 남자를 자세히 쳐다보지 않았다. 분명 못생기고 뚱뚱하고 배 나온 아저씨가 타고 있을 테니까, 라고 위로하며 생각한다. ‘앞으로도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멋진 밤카페을 찾아다닐 테야! 하지만 조금만 더 잘 차려입어야겠어~!’
정수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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