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팩트 열고 ‘야마’ 푼다

도전, 밤양갱 ②
등록 2011-11-10 15:59 수정 2020-05-03 04:26

붕어빵에 붕어 없고 양갱에 양 없다. 양고기도 양젖도, 오늘날의 양갱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양갱 재료는 단순하다. 그러나 쉽게 살 수는 없다. 회사 근처 마트와 집 근처 마트에 갔다 헛걸음했다. 한천가루, 팥앙금을 팔지 않았다. “한천가루를 찾는다”고 하자 종업원들은 처음 듣는 단어인 양 되물었다. 한천가루와 팥앙금을 사려면 인터넷 식재료 쇼핑몰에 가야 한다. 다 있다. 한천가루 20g이 1천~2천원꼴이다. 팥앙금도 1kg 단위로 판다. 원시적인 도구도 같이 파는데, 이 모두가 3천~4천원 정도다.

한천은 우무를 동결탈수하거나 압착탈수해 건조시킨 식품이다. 우무는 우뭇가사릿과의 해초로 만든다. 채취한 해초는 물로 씻어 소금기를 빼낸 뒤 햇볕에 쬔다. 이것을 쇠솥에 넣고 눅진눅진해질 때까지 삶아서 거르거나, 주머니에 넣고 짜내 냉각시키면 고체화한다. 이것이 우무에 대한 의 설명이다.

하얀색 한천가루 봉지를 뜯고 잠시 망연자실했다. 양갱은 말하자면 ‘글쟁이의 검은 에너지원’이다. 그러나 지금 에너지원을 만드느라 에너지를 다 뺏길 참이다. 냄비에 물을 붓고 한천가루를 넣었다. 중불에 한천가루를 녹이고 설탕을 좀 넣었다. 과연 맹물이 서서히 점성을 지닌 액체로 변했다. 이렇게 젓다가 팥앙금과 물엿을 넣는다. 구입한 틀 대신 다른 도구를 사용했다. 며칠 전 사다 먹은 두부의 플라스틱 포장을 틀로 삼았다. 밤은 사지 않았다. 물, 한천, 설탕, 팥앙금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양고기를 넣을까’라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은 빨리 접었다.

수천 년 전 유목민의 양갱에는 양이 들어갔다. 양을 잡는다. 유목민은 능숙하게 정맥을 찾았을 것이며, 칼쓰기는 두 합을 넘지 않았으리라. 물론 양도 별 고통 없이 죽었을 것이다. 미리 준비한 그릇에 소중한 양의 피를 받았을 게다. 대장이 터지지 않게 조심스레 배를 갈라 간, 허파, 심장, 소장을 꺼낸다. 대장이 터지기라도 하는 날엔, 아까운 내장을 다 버려야 한다. 똥 묻은 음식을 먹을 수야 없지 않느냔 말이다. 그렇게 김이 나는 피를 솥에 끓이면 어떤 냄새가 났을까? 피를 응고시켜 먹는 선짓국 같았을까? 그 부드러운 선지의 질감 사이사이에 비릿한 양고기가 박혀 있다. 소금과 향신료로 비린내를 잡았겠지만, 원시 양갱을 먹은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입에서는 곱창을 먹고 3주 동안 이를 닦지 않은 것 같은 수준의 향이 나지 않았을까. 그 양갱을 에너지원 삼아 유목민은 다시 말을 타고, 활을 쏘고, 다시 양을 잡았을 게다.

양갱은 선짓국과 친척이라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불교문화 탓에 양고기와 피가 팥앙금으로 바뀐 지금의 양갱을 보면 터무니없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원시 양갱에는 양이 있었다. 내가 만든 양갱은 물과 한천의 비율 조절에 실패해 좀 흐물거렸다. 잘 썰렸지만, 점성이 낮았다. ‘가벼운 단맛’이라는 표현이 스치고 지나갔다. 물, 한천, 팥앙금, 설탕만 있으면 계속 글을 쓸 수 있다. 팩트 봉지를 열어 문장에 적당히 버무려 ‘야마’를 잘 섞어 푼다. 실온에서 굳히고 1·2·3회로 잘 썬다. 문제는 남이 먹을 수 있느냐는 것?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