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채널 요리 프로그램 출연진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레이먼 킴, 홍신애, 메이, 김상영, 최현석, 알렉스, 이하늬, 샘 킴. 올리브 제공
두꺼운 나무 도마 위에서 초록빛을 머금은 채소가 ‘삭삭’ 소리를 내며 조각이 되자 썰고 있는 손과 채소가 화면 가득 들어온다. 요리를 하던 이는 잠시 칼을 놓고 뒤편에 있는 냉장고로 걸어가 문을 열고 양념에 재어놓은 고기를 꺼낸다. 요리가 완성되는 중간중간 요리를 하는 이는 카메라를 향해 빙긋 웃으며 최근에 먹은 요리와 어릴 적 기억까지 수다를 떨듯 풀어놓는다.
스타가 된 셰프, 셰프가 된 스타TV가 맛있어졌다. 눈이 즐거워졌다. 엉터리 맛집을 소개하는 TV 얘기가 아니다. 요즘 케이블TV에서는 요리가 한창이다. 요리 프로그램이 건조한 말투와 식상한 대사로 미리 준비해놓은 재료를 보여주고 레시피 순서에 따라 졸이고 끓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단조로운 화면에서 누군가의 부엌에서 마주 앉은 유쾌한 요리사와 얘기를 나누며 음식을 만드는 걸 구경하는 것처럼 느낄 만큼 친근한 화면으로 달라지고 있다.
케이블TV 올리브 채널은 지난 3월 패션·뷰티 등을 다루는 여성 라이프스타일 채널에서 ‘이제는 요리의 시대’라는 문구를 내걸고 요리를 중심으로 한 푸드 라이프스타일 채널로 다시 태어났다. 지난 5개월 동안 올리브 채널이 방영한 요리 프로그램 중에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프로그램은 이다. ‘스타 셰프’로 불리는 요리사들이 자신의 레시피를 소개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요리하는 쿠킹 마초’라는 수식어처럼 무뚝뚝하지만 시원시원하게 요리하는 캐나다 교포 출신 요리사 레이먼 킴과 드라마 의 실제 모델이던 요리사 샘 킴 등이 출연한다. 이들이 만드는 요리를 따라하기는 버겁게 느껴지지만 이들이 능숙하게 요리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다. 영국의 스타 셰프인 제이미 올리버가 그러하듯,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요리 세계를 펼쳐놓는 이들은 요즘 가장 ‘핫한’ 요리사다.
올리브 채널을 틀면 요리사보다 연예인을 자주 볼 수 있을 만큼 유명 연예인들도 부엌으로 들어왔다. 유명인들이 자신의 레시피를 소개하는 프로그램 는 요리 프로그램을 조금 더 엔터테인먼트 영역으로 끌어왔다. 이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은 요리를 하며 토크쇼를 하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스타’에 방점이 찍히는 다른 의미의 스타 셰프다. 대표적인 출연자는 가수 알렉스와 연기자 이하늬다. 캐나다에서 요리사였던 전력과 부드러운 이미지를 잘 살린 알렉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요리에 대해 설명한다. 이하늬는 이 채널을 통해 ‘재발견’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접 채소를 기르고 좋은 식재료를 골라 채식 요리를 만드는 이하늬는, 이 프로그램에서 채식주의자이자 유기농 음식 마니아로서 자신의 취향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공현주, 김호진, 손호영, 윤손하 등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갔다. 8월에는 남성그룹 2AM의 창민이 출연한다. 스스로 음식을 만들며 체중을 조절해온 창민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다이어트 노하우를 담은 요리를 보여준다. 창민이 출연하는 는 방송 초반인데 벌써 반응이 뜨겁다.
“요리를 둘러싼 스타일을 소비하도록”또 다른 케이블TV 요리 채널인 푸드TV에는 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기존의 요리 레시피가 아니라 특정한 요리를 원하는 신청자의 사연에 따라 요리사가 맞춤 레시피를 만들어주는 내용이다. 식재료 전문가 안은금주와 중식의 담소룡 셰프, 양식의 양지훈 셰프가 출연한다. 3명의 셰프는, 아내의 산후조리를 챙겨주고 싶은 남편의 사연, 젊어지고 싶은 언니의 피부에 좋은 음식을 알려달라는 동생의 사연 등 신청자의 요청에 따라 머리를 맞대고 레시피를 구성한다. 푸드TV 쪽은 “레시피를 개발하는 프로그램으로 기존 요리 프로그램의 식상함에서 탈출하려 했다”며 “뿐 아니라 등의 프로그램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스타일리시하고 독특한 내용의 요리 프로그램만이 시청자의 관심을 끌고 있는 건 아니다. 요리의 목적에 충실한 ‘기능성’ 요리 프로그램인 EBS 은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집에서 해먹을 만한 요리를 소개한다. 이 프로그램은 요리 프로그램계의 ‘스테디셀러’로 모든 초보·중급 주부들에게 여전히 환영받는다. 2008년부터 개그맨 박수홍이 진행을 맡고 있는데, 유머와 개그를 잃지 않는 박수홍 덕에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요리 프로그램이지만 생기를 잃지 않는다.
요리 채널이 요리 프로그램 형식을 통해 즐길거리를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이른바 ‘화면의 때깔’이다. 올리브 채널은 각 프로그램에 푸드 디렉터와 푸드 스타일리스트, 공간 스타일리스트가 붙어 공간 세트 디자인부터 구석에 놓인 소품 하나까지 콘셉트에 맞게 구성한다. 화면도 광고를 촬영하는 카메라로 찍어 색깔과 질감이 눈을 사로잡는다. 올리브 채널 서원예 마케팅파트장은 “요리와 관련된 기능을 배운다는 의미보다 음식 자체를 하나의 콘텐츠로 받아들이고 요리를 둘러싼 스타일 자체를 소비하도록 한다”며 “프로그램도 한식·중식·양식으로 구분하기보다 인물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요리의 대중화와 전문화서원예 파트장은 요리 프로그램의 경향으로 ‘대중화’와 ‘전문화’를 꼽는다. 그는 “이제 식문화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됐다”며 “내년부터는 한국판 등 대형화된 쿠킹쇼뿐 아니라 ‘쿡맹’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해주는 쉬운 요리 프로그램에까지 영역을 넓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우리도 내년쯤에는 제이미 올리버나 고든 램지 같은 TV형 스타 셰프와 리얼리티 요리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해지는 요리사를 만날 수 있을까.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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