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뿌리는 인간만큼 깊다. 이 땅 5천 년 역사의 현장에서 벌어진 온갖 인간의 삶을 지켜보며 함께 살아온 것이다.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담고서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마을 어귀의 고목은, 그 자체로 문화이자 역사라 할 수 있다.
우리 농촌의 대표적인 풍경에 꼭 등장하는 마을 어귀 아름드리 고목의 대부분은 느티나무다. 산림청의 지도·감독을 받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고목은 현재 1만3천여 그루인데, 느티나무가 7100여 그루로 가장 많다. 그래서 느티나무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
나무에 얽힌 문화와 역사
고려 말 문신 최자가 쓴 에 나오는 전북 임실의 의견(義犬)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술에 취해 잠든 주인이 들불에 휩싸일 위기에 처하자, 개가 연못을 들락거리며 자신의 몸을 물에 적셔 불길을 막고 숨졌다는 이야기다. 감동한 주인이 개를 정성껏 묻어주고 지팡이를 꽂아뒀더니, 거기서 싹이 트고 자라 큰 느티나무가 됐다고 한다. 경남 의령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 곽재우 장군이 북을 매달아놓고 군사훈련을 했던 ‘현고수’란 느티나무가 있다. 충북 괴산에는 백제군에 성을 뺏긴 신라의 성주가 느티나무에 부딪혀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느티나무 ‘괴’(槐)자를 넣은 지명을 쓰게 됐다고 한다.
어디 옛이야기뿐이랴. 천마총의 관재도 느티나무요,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 해인사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법조전 등 많은 문화재와 사찰의 전부 또는 일부가 느티나무다. 느티나무만 봐도, 나무가 얼마나 우리 역사와 문화 곳곳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는 우리나라 문화와 역사 속에 등장하는 나무들에 대한 백과사전이다. 지은이인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 나무 문화재에 관해 우리나라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그는 연구실 학문에서 벗어나 우리 문화와 역사 속 나무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대중적 소통을 하는 활동에 주력해왔다. 이 책은, 자연과학적 연구와 인문학적 접근이 어우러진 그의 활동이 집대성된 것이라 할 만하다.
1천 종이 넘는 우리 나무 가운데 242종을 골라내고, ‘꽃이 아름다운 나무’ ‘과일이 열리는 나무’ ‘약으로 쓰이는 나무’ ‘생활에 쓰이는 나무’ ‘가로수로 심는 나무’ ‘정원수로 가꾸는 나무’ ‘재목으로 쓰이는 나무’ ‘만나기 어려운 귀한 나무’ 등 여덟 분야로 나눠 각각의 나무에 대해 설명했다. 또 등 4대 역사서는 물론, 중국·일본의 역사서, 옛 선비들의 문집에서부터 개화기의 문학작품까지 다양한 자료를 두루 참조했다. 이를 바탕으로 나무의 생태학적 설명과 함께 나무와 그 이름의 유래, 열매·목재의 쓰임새, 나무에 얽힌 문화와 역사 등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눈이 즐거운 사진과 그림들퇴계 이황은 매화를 너무 사랑해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철쭉은 그 꽃이 너무 아름다워 ‘지나가던 나그네가 자꾸 걸음을 멈춘다’는 말을 아예 그 이름의 유래로 삼는다. 팔만대장경에 쓰인 나무는 자작나무로 알려졌으나, 산벚나무의 재질이 가장 많다고 한다.
특히 대부분 지은이가 직접 찍은 700여 장의 나무 사진과 김홍도·신윤복 등의 옛 그림 50여장, 각 단락에 그려넣은 나무 그림 등 볼거리가 풍성해서 눈이 즐겁다. 나무의 모습과 그 이야기를 함께 눈에 넣어두면, 나중에라도 더 친근하고 반갑게 나무들과 사귈 수 있을 듯하다.
최원형 기자 한겨레 문화부문 circle@hani.co.kr "_top">circle@hani.co.kr
* 박상진 지음, 김영사 펴냄, 각 권 3만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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