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그리고 매년 봄에는 ‘페스티벌 봄’(이하 ‘봄’·3월22일~4월17일)이 열린다. 이제 봄이 오면 자연스레 ‘봄’을 떠올리며 기다리는 이가 제법 된다. 다원예술(Interdisciplinary Art) 축제를 표방하는 이 행사는 현대무용부터 연극, 퍼포먼스, 음악, 미술 등 모든 장르를 아우른다. 사실 ‘봄’은 매우 불친절한 문화예술 행사다.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등 11군데에서 한 작품마다 하루이틀씩만 열리기 때문에 여간 부지런하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데다, 오늘날 펼쳐지는 예술 중에서 가장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영역을 다루고 있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국내외 22개 다원예술 작품 선보여
그럼에도 ‘봄’은 그 전신인 2007년 ‘스프링 웨이브’를 포함해 5회째를 맞이하는 동안 꽤 많은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원예술의 형태를 띤 다양한 작품이 존재했고, 그것을 보여주는 축제나 기관이 여럿 있지만, 아시아에서 ‘다원예술’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2008년 ‘봄’이 처음 열렸을 때만 하더라도 국내 관객은 이 생소한 예술을 제대로 즐길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행사로서 다원예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초기에 주최 쪽은 언론사에 홍보할 때조차 기자들에게 직접 찾아와 비디오나 CD 등으로 영상을 보여주며 설명해야 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봄’은 지난 5년 동안 국내외 작가는 물론 관객에게 예술 장르 간 상호교류를 통해 21세기 현대미술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최근 이 행사 외에도 미술가들이 개인전으로서 공연 형식의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다원예술을 한국에 소개한 당사자라 할 수 있는 김성희 디렉터는 2002년부터 4년간 현대무용축제 ‘모다페’를 기획하고 2007년 큐레이터 김성원과 함께 ‘스프링 웨이브’를 만들었다. 이듬해 김성희 디렉터는 독자적으로 ‘봄’을 창설하며 본격적으로 ‘새로운 시도와 형식을 발굴하고 전파하는 역동적인 축제’로 각인시켰다.
올해 ‘봄’은 국내외 22개의 다원예술 작품을 선보인다. 원래 개막작으로는 독일 작가 르네 폴레슈의 가 예정돼 있었지만, 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심각성 탓에 극단이 방한을 거부해 공연이 취소되고 말았다. 결국 개막작은 3월24일 개최된 일본 안무가 도시키 오카다의 가 됐다. ‘몸짓’과 ‘말’이 일치하지 못하는 두 신체적 요소 간의 불협화음을 유머러스하게 극화했다. 한 사무실에서 퇴직하는 사원의 송별회 메뉴를 정하는 지극히 사소한 에피소드에서 시작하지만, 사실 그 이면의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갈등 같은 사회적 부조리를 비판하고 있다.
3월27일 서울 문래예술공장에서 열린 김윤진의 는 “현대무용계를 발칵 뒤집었다”고 할 만큼 혁신적인 구성의 공연을 선보였다. 작가는 타워팰리스와 마주하고 있는 무허가 판자촌 ‘구룡마을’에 주목했다. 마을을 방문한 외부인들, 이를 카메라로 기록한 아이들, 그리고 선녀임을 자처하는 무용수까지 각 캐릭터 간의 역학이 신화의 매개인 구전을 통해 무대화됐다. 김윤진은 오늘날 몸이 처한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개념적인 작업으로 한국 춤의 동시대성을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9년 ‘봄’에서 <s.o.s adoptive dissensus>를 발표했던 미술가 임민욱의 신작도 볼 수 있었다. 2년 전 작가는 전시장이나 극장이 아닌, 한강유람선에 관객을 싣고 한강 다리들을 순서대로 통과해 노들섬, 양화대교 옆 절두산 성지 및 잠두봉 선착장 등을 돌며 ‘한강의 기적’이나 ‘한강 르네상스’와 같은 국가적 허상을 공격하는 작업으로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그때의 성공 덕분일까. 4월5~6일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린 임민욱의 신작 공연은 전 좌석이 매진돼 공연 당일에는 매표소에서 대기석을 기다리는 이가 여럿이었다. 신작 에서 작가는 실제로 간첩으로 오인받아 40일간 고문을 받은 끝에 허위 자백을 하고 일가족 모두(삼척가족간첩단)가 수감 생활을 겪었던 김태룡 선생을 무대 위로 모셨다. 정신과 이야기 치료의 형식을 주축으로 삼고, 최근 작가가 종종 사용하는 열감지 카메라와 영상, 퍼포먼스의 요소를 집어넣었다. 특히 공연 막바지에는 좌석 뒤편에서부터 검은 커튼이 내려와 관객을 뒤덮었는데, 이는 작가가 2년 전 관객을 유람선에 태웠듯이 개인의 아픔, 한국 사회의 기억을 관객 모두에게 공유시키려는 장치로 작용했다. 는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이면을 들춰내는 동시에 사회에서 예술작품이 만들어낸 피해자를 위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봄’은 아직 공연을 몇 개 남겨두고 있다. 그중에서 4월12~13일 열리는 홍성민의 는 공연에 대한 공연, 곧 ‘메타 공연’이자 ‘재활용 공연’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4월 현재 대학로 일대의 극장에서 실제로 공연 중인 퍼포머 15명을 동시에 무대 위에 올린다. 배우들은 각자 요즘 자신이 출연하는 공연에서 보여준 연기, 춤, 비언어적 소리(비명·신음·울음), 의상들을 그대로 가져와 작가 홍성민의 무대에서 재연한다. 물론 그 과정에는 작가의 ‘선택’에 의한 유형학적 분류가 선행된다.
한시성 극복 위해 SNS 제공, 제도 논의도 활발
‘봄’은 페스티벌 참여 작가들과 좀더 가까이 만날 수 있도록 워크숍과 포럼도 마련했다. 공연이 지닌 ‘한시성’이라는 난제를 극복하고자 온라인을 통해 뉴스레터,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서비스를 활발히 제공하고 있다. 관객도 방금 보고 나온 공연에 대한 감상을 바로 피드백해 다원예술에 대한 담론은 더욱 풍부해지고 있다. 동시에 다원예술에 대해 거시적·제도적 측면에서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지난 4월5일 ‘봄’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으로 국제 심포지엄을 열어 다원예술을 수용하는 새로운 공간 활용 방안에 대해 토론한 것이 그 증거다.
예술은 시시각각 그 형태와 의미를 바꿔왔다. 또한 예술가들은 늘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고민한다. 그러나 예술의 오랜 역사 속에서 많은 것이 이미 이루어져 있다. 더욱이 모든 것이 다원화된 이 시대에, 오늘날의 예술가들이 서로 다른 장르를 참조하며 새로운 미적 가치를 창출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인 것일지 모르겠다. 이렇듯 변화를 거듭하는 예술에 대해 관객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적어도 지금의 다원예술에서는 아주 쉽다. 앉은 자리에서 박수 혹은 야유로 화답하면 된다.
호경윤 미술전문지 월간 수석기자</s.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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