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프로그램이 황금시간대에서 밀려나 있는 게 현실이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황금시간대에 감동적인 음악 무대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공연만으로는 흡입력이 약하다. 그래서 그룹 서바이벌 형식을 도입한다. 7위는 무대를 떠나고 다른 가수로 교체된다.”
문화방송 는 지난 3월6일 첫 방송부터 전문가들로 꾸린 자문위원단 회의 모습을 비추며 ‘기획 의도’를 분명히 했다. 나 등을 만들면서 ‘공익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에 유난히 집착해온 연출자 김영희 PD다운 발상이었다.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기 전인 두 번째 방송까지만 해도 방송은 기획 의도대로 가는 분위기였다. 이소라의 가 느닷없이 음원 차트에 올랐고, 가수 7명이 보여준 무대는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회자됐다.
깨진 원칙, 갈 길 잃은 프로그램
지난 3월20일 세 번째 방송에서 문제가 터졌다. 윤도현을 시작으로 가수들이 차례로 자신이 재해석한 곡을 선보이는 무대까지만 해도 이 프로그램의 양손에는 ‘음악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가 다 들려 있었다. 그런데 첫 번째 탈락자로 출연자 중 맏형 격인 김건모가 지목되면서 프로그램은 급속도로 무너졌다. “내가 그렇게 못했나? 피아노도 안 틀리고 노래도 열심히 했는데?”(김건모) “노래하는 사람들 입장은 좀 달라요.”(이소라) “이건 원상복귀시켜야 한다, 욕 먹더라도.”(윤도현) 급기야 ‘재도전’ 카드가 나왔고, 발표 당시만 해도 “어떤 결과가 나와도 시원하게 받아달라”던 제작진은 긴급회의를 통해 재도전 여부를 당사자인 김건모의 선택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이쯤에서 토끼 두 마리는 모두 사라졌다.
“어려운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온 사람들(판정단)이 결론 내렸는데 (재도전을 하면) 룰을 깨는 거”라며 고민하던 김건모는 재도전 의사를 밝혔다. “건모 오빠는 그 (재도전의) 기회를 가질 충분한 자격이 있는 것 같아요.”(백지영) 연출자인 김영희 PD의 인터뷰가 이어졌098다. ”취지가 누군가를 탈락시키는 데 있지 않고 훌륭한 가수가 좀더 훌륭한 무대에서 좀더 훌륭한 노래를 시청자에게 보여드리는 데 있기 때문에 앞으로 7위를 한 가수가 누구일지라도 재도전 기회를 줘서 온전히 본인의 선택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방송은 끝났고, 이 프로그램을 둘러싼 논란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커졌다. 나흘 만에 김영희 PD는 신정수 PD로 교체됐고, 김건모는 자진사퇴했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은 이 프로그램은 갈 길마저 잃었다.
를 둘러싼 논란이 흥미로운 이유는 음악과 예능, 서바이벌, 경쟁 등 지금 TV를 관통하는 대표 키워드로 이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서바이벌이라는 예능 프로그램 형식이 과연 에 적합했느냐는 지적을 할 수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조민준씨는 “탈락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절대적 쾌감이고 대상에 몰입하는 것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조건인데, 이 프로그램의 의도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본질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우리가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누가 1등 한다고 환희가 느껴지지도, 7등 한다고 실력 없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출연자들의 이야기가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부분도 없다.” 또 이 프로그램은 서바이벌이라는 문패를 달아놓고도 ‘취지가 누군가를 탈락시키는 데 있지 않다’며 스스로 서바이벌임을 부정해왔다. ‘탈락’이 아니라 ‘양보’이며 ‘교체’라고 강조하던 제작진은 재도전이라는 카드를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탈락은 탈락이라는 사실을 거꾸로 증명해냈다. 흥행을 위해 발라놓은 꿀이 결국 프로그램에 독이 된 꼴이다.
이 프로그램이 전제하는 경쟁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도 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지난 3월21일 자신의 트위터(@unheim)에 경쟁 자체에 의문을 표했다. “가창력으로 신인가수 뽑는 것도 아니고, 이미 자기 세계를 가진 예술가들 데려다 놓고 누굴 떨어뜨린다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죠. 서바이벌 게임이 적용될 만한 영역에서 벗어나 그 프레임을 적합하지 않은 영역에 옮겨놓은 것 자체가 문제고, 그러다 보니 감당할 수 없는 사태들이 벌어지는 거죠. 무지막지한 신자유주의의 폭력을 대중예술에까지 끌어들인 결과라 할까요?” 유행처럼 방송을 휩쓸고 있는 서바이벌의 경쟁 형식에 관해, 또 많은 이들이 이 형식에 열광하는 이유에 관해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정’이란 무엇인가가장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점은 옳지 않은 경쟁의 법칙이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원칙과 기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실망했다’고 토로했다. 논란이 방송 범주를 벗어나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는 이유 역시 이 프로그램이 ‘공정사회’라는, 지금 시대가 간절히 원하지만 번번이 실망하고 마는 가치를 다시 한번 부정했기 때문이다. 김어준 총수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렇게 비판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까지 흥분하느냐면 이런 거다. 공정한 걸 보고 싶은 거다. 우리 사회는 공정함이 부족하다. 그런데 정말로 공정한 포맷으로 드디어 이렇게 긴장하고 보는 감동적이기까지 한 프로그램을 봤는데 여기서 그걸 무너뜨린 거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정(情)이란 무엇인가가 됐다.”
그렇다면 과연 이 프로그램은 그토록 강조한 ‘감동적인 음악 무대’를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을까? 대중음악평론가 이민희씨는 “우리가 잊고 있던 좋은 음악을 환기하는 긍정적 효과는 있었지만, 노래보다 쇼에 더 집중하다 보니 자극적인 연출의 선을 넘었다”며 “음악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보다 익숙한 곡을 반복하는 게 이 프로그램이, 또 지금 모든 TV 프로그램이 음악을 다루는 수준인 것 같다”고 평했다. 이 프로그램은 감동이 청중이 아닌 동료 가수들, 특히 후배 가수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줬다. 실제 미션곡 경쟁에서 출연 가수들은 김건모의 무대를 평가하기보다는 김건모라는 가수의 공력을 끊임없이 얘기했다. 판정단의 선택은 김건모라는 ‘20년차 가수’ 앞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가 다시 잃어버린 두 마리 토끼를 찾을 수 있을까? 답은 ‘불가능하다’. 애초에 두 마리 토끼는 기획안에서나 존재했는지 모른다. 새로운 연출자에게, 또 이 프로그램에 기대하는 건 문자로만 존재하는 기획 의도는 던져버리고 지금 처한 모순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정면돌파해 ‘재미’라는 한 마리 토끼라도 되찾는 지혜다.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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