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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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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안 하는 드라마가 필요해

법의학 시리즈 <싸인>과 밀실 추리물 <화이트 크리스마스> 등

여느 때보다 풍성한 장르물… 천편일률 드라마를 바꿀 ‘꼴통’들을 주목하라
등록 2011-02-17 17:14 수정 2020-05-03 04:26

현재 12회까지 방영된 SBS 드라마스페셜 (수·목 밤 9시50분, 20부작)이 (‘경마식 보도’를 하자면) 수·목의 시청률 ‘왕좌’를 지키고 있다. 상대편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문화방송)와 ‘정치 드라마’ (한국방송). 상승세를 거듭하다 설 연휴 7회에서 1위로 등극됐다.
은 ‘장르물’이다. 일명 ‘전문직 드라마’들은 전문직을 내세운 연애 드라마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법원에서 연애하거나, 병원에서 연애하는 드라마였다. 처음 사건·사고 중심이던 에피소드들은 어느 순간 풀이 죽고 ‘연애사건’으로 흘러갔다. 에 연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대기가 어디로 향하는지 윤곽만 드러난 정도다. 은 순수한 의미 그대로의 ‘전문직 드라마’다.

조직의 밀도 높은 법의학 에피소드
이 승부를 건 것은 기특하게도 스토리다. 신입 법의관 고다경(김아중)이 윤지훈(박신양) 선생의 도움을 받아 메스를 통해 겪어가는 입문기다. 여기에 검사(엄지원)와 형사(정겨운)가 이들과 반목하다가 합세한다.
사건은 늘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일어난다. 첫 번째 사건은 아이돌 가수 살인사건이다. 두 번째의 작은 사건문화은 강도를 가장한 자살, 세 번째는 사고를 가장한 연쇄살인이었고, 네 번째는 미군 총기 사건이었다. 11회에 시작한 다섯 번째 사건은 대기업과 얽힌 의문의 연쇄사고다. 여기에는 윤지훈 검사의 가족사가 얽혀 들어간다. 20부작의 11회에서 주인공이 연관된 사건이 나타나고, 주요 인물이 자살하면서 극으로 치닫는다. ‘벌써’라는 느낌이 들게 뜸들이지 않는다.






모진 풍파를 겪고 공중파를 탄 장르물들. SBS <싸인>(맨위쪽)과 한국방송 ‘드라마 스페셜’ <화이트 크리스마스>(중간) 〈특별수사대 MSS〉(아래왼쪽), 미니시리즈 <정글피쉬2>(아래오른쪽). 사진은 각 방송사 제공.

모진 풍파를 겪고 공중파를 탄 장르물들. SBS <싸인>(맨위쪽)과 한국방송 ‘드라마 스페셜’ <화이트 크리스마스>(중간) 〈특별수사대 MSS〉(아래왼쪽), 미니시리즈 <정글피쉬2>(아래오른쪽). 사진은 각 방송사 제공.

사건들은 법의학에서 출발하고 끝난다. ‘죽은 자의 말을 듣는 유언 집행자의 의무’에 충실하다. 주검 해부와 현장검증에서 나온 단서가 사건을 진행한다. 청산가리로 죽었을 경우 나는 고편도취(살구씨 냄새)를 50%의 사람이 맡지 못한다든지, 검증 사진이 흔들린 것을 타박한다든지, 비가 내리는 것에 절망하는 게 DNA가 씻겨나가기 때문이라든지, 노래방에서 자외선(UV) 빛을 빌려온다든지 하는 디테일도 재밌다. 정성 들여 현장검증한 것이 가짜로 밝혀진 뒤 진짜 증거를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에피소드 내의 조직도 밀도 높다. 법의학팀이 일본으로 가 백골 주검을 검사할 때 한쪽의 검사팀은 미군 총기 사건을 좇는 구성 역시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구성은 주어진 숙제와 이를 해결하는 식으로 안일하지 않다. 전체 얼개를 두고 차곡차곡 밀어넣는 느낌이다. 첫 번째 사건은 권력자의 압력에 의해 ‘미해결’로 조작된다. 결말의 ‘거대한 대결’의 실마리를 미리 뿌려놓은 것이다. 거기에는 전체 사회의 조감도가 들어 있다.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권력 구도는 사회 전체의 현실을 드라마 내로 끌어들인다. 재벌 2세는 자신의 잘못을 옆에 대기한 비서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 뿌리는 것으로 해결하려 한다. ‘과학적 진실’은 대기업에 의해, 대선주자에 의해 흔들린다. ‘권력에의 의지’는 자신을 변명한다. 국과수 이명한(전광렬) 원장은 조직의 인력 부족과 시설 미비의 문제를 권력을 통해 쟁취해야 한다고 항변한다. ‘과학만이 진실’은 자연스럽게 정의 편에 선다.

“취향을 못 바꾸면 포기해야 하나”

연출을 하던 장항준 감독은 10부를 끝내면서 시나리오 작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20부작으로 늘어나면서 대본량이 늘어나서다. 치밀한 스토리가 무엇보다 중요해서일 것이다.

우공이산. 바보가 산을 옮긴다. 본격 장르물 미니시리즈가 공중파로 선을 보이게 된 것은 연출자가 영화에서 투입된 인물이었기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와 을 연출한 장항준 감독이 처음 드라마 연출을 맡았다.

“법의학자는 죽은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유일한 친구다.” 12년 전 시나리오 준비하며 만난 법의학자 말에 충격을 받고 준비한 ‘꿈의 드라마’지만 공중파 입성은 쉽지 않았다. “리젝트(거절)를 여러 번 당했다. 장르 자체가 공중파에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케이블에서나 된다는 말을 들었다. 섭외도 안 되고. 어찌 보면 그쪽에서 보기엔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의외로 배우들이 욕심을 냈다. “이런 것을 해보고 싶은데 몇 년에 한 편 나올까 말까 하니, 하고 싶어하는 배우가 많았다.”

고난을 겪고 있긴 하나 요즘 부쩍 방영되는 장르물이 많다. 최전방에서 장르를 실험하는 ‘스페셜한 드라마’도 있다. ‘드라마스페셜’은 한국방송에서 일요일 밤 늦은 11시에 한 회씩 방송된다. 현재 8부작 가 방영 중이다. 는 강원도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밀폐형 추리물이다. 학생 8명에게 검정 편지가 배달되고, 이들은 겨울방학 기숙사에 남는다. 편지의 한 구절 한 구절이 한 학생 한 학생의 과거 행적과 관련 있다.

를 쓴 박연선 작가는 지난해 초 완성된 16부작 대본의 방영 결정을 연말에야 받았다. 그는 2007년 이미 한 방송잡지 인터뷰를 통해서도 이 매력적인 소재를 내비친 적이 있다. 대본을 거절당하며 “대본은 재밌으나, 너무나 모험적이다” “나는 할 수 없으나, 누군가 만든 걸 보고 싶다”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 캐스팅도 되지 않았다. 청춘스타는 다시 고교물이라는 이유로 꺼렸다. 죽을 때 관에 넣고 가야겠다고 포기할 즈음, 김용수 감독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본을 마음에 들어한 배우 등의 도움을 받아 8부작으로 편성되었다.

비슷한 사례로 지난해 11월4일 시작되어 연말 종영된 8부작 도 있다. 2008년에 방송된 화제작의 후편이다. 새로운 청소년 드라마의 장을 열 것으로 회자됐지만 방영 하루 전 결방 공지가 나갔고, 그때 발표된 방영 예정일도 지켜지지 못했다. 청소년 드라마지만 ‘수위’가 높아서 저녁 시간대에 편성됐다. 명문고 1등 학생이 자살한 사건을 중심으로, 자살 전 헤어진 남자친구, 누명을 쓰고 퇴학당한 학생, 임신한 채 학교를 다니는 여학생, 팬픽(팬이 연예인을 소재로 쓰는 소설)을 쓰는 여학생 등을 내세웠다. 드라마는 화면과 음악, 대본에서 공들인 티가 역력하다.

미니시리즈 , 단막극 를 쓴 박연선 작가는 편성의 고난을 겪은 뒤 말한다. “취향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그만 써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스럽다.” 수수께끼와 의문이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고 믿는 그는, 자신이 한국 방송의 풍토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자조한다. “항상 새로운 피를 갈구하면서도 작가로 데뷔하고 나면 익숙한 것을 하라고 요구한다. 문제는 항상 경제 논리다.”

웹진 텐아시아의 최지은 기자는 “(장르의 붐이) 작가들의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드러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미드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고 나서 창작자들이 여러 장르의 드라마를 많이 접하게 됐다. 그 매력을 자신의 창작물에서도 보여주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최근 드라마의 경향도 ‘세련된 장르화’를 부추긴다. “멜로만으로는 이제 한계에 달했다. 장르를 다 섞을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는 새로움이 화두다.”

똑같은 이야기에 숨이 막히는 한국 드라마

전 ‘KBS 드라마스페셜’로 방영된 는 심야시간대에 5.6%까지 순항하기도 했다. 이 역시 형기를 채우고 출소한 범죄자들이 살해된 사건에서 연쇄살인의 단서를 잡고 파헤쳐가는 장르물이다. 이를 해결하는 형사들은 각 경찰서에서 방출된 문제아들이다. 튀는 꼴통, 아이를 둔 이혼녀,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자신의 사건을 좇는 형사 등. 그렇게 모인 특별수사대 MSS는 연쇄살인 사건 해결이라는 큰 공적을 세운다. MSS 수사대 팀원은 단지 ‘원대 복귀’를 위해 활약하다가 ‘MSS 공식화’를 주장하기에 이른다.

특별수사대의 ‘MSS’는 ‘무소속’의 약자다. 신념으로 활약하는 ‘꼴통’들이 활동할 공간도 필요하다. 몇몇 드라마를 빼면 한국 드라마는 지금 ‘천편일률’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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