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초능력자·강동원)과 규남(고수)은 대조적으로 살아간다. 한 명은 굽어보며 살고 한 명은 바라보며 산다. 초인은 직장을 내려다보는 화려한 오피스텔에 산다. 규남은 창밖으로 지나가는 여자의 다리가 바라보이는 반지하에 산다. 초인은 장난감 같은 세상이 재미가 없어 빌딩이 늘어선 거리를 모형으로 짓는다. 다리가 완전하고(초인은 어린 시절 허벅지 아래 다리를 절단했다) 한 손을 들어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듯한 피겨를 색칠한다. 한 명은 모형 같은 세상을 떠돈다. 폐차장에서는 차가 장난감처럼 부서지고, 생일에는 놀이동산에서 논다.
모두 멈춘 가운데 움직이는 한 사람초인은 그냥 조용히 살고 싶었다, 한다. 초능력을 가진 084것은 불행했고,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은 힘들었다. 눈에 힘을 주면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고 다시 힘을 주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욕심부리지 않고 사채업자의 돈다발을 훔쳐냈을 뿐이다. (백번 양보해야 하는 일이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를 죽인 것은 “그럴 수도 있지”라는 공감을 살 만한 일이었다. 이런 초능력자의 ‘아무도 모르게 초능력자로 살기’는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이런 그의 초능력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은 초인이 초능력을 발휘해 돈을 훔치는 사채업자 가게에서 마주친다. 모두 멈춘 가운데 고개를 움직여 규남은 초인을 바라본다. 존재의 발견은 목숨을 건 싸움이 된다.
초능력자를 다룬 무수한 할리우드 영화와 드라마 틈에서, 가 성취한 ‘한국성’은 하위 계층의 삶을 밀도 있게 보여주는 장면을 통해서다. 사채업자와 커피 배달 아가씨와 늦게까지 일하는 직장인과 말 잘하는 이주노동자 등은 장르를 한국적으로 풀어가는 훌륭한 배경 역할을 한다. 거기에 “목까지 단추를 채운 놈은 믿으면 안 돼”라는 대사나, 거울을 보며 제복을 가다듬는 경찰의 디테일은 재기발랄하다. 신인감독의 도전적인 영상도 재미를 더한다. 이주노동자의 식사를 가로로 길게 보여주면서 ‘최후의 만찬’을 흉내낸다. 장례식장에서 찬송가와 불경이 나란히 불리는 장면도 의욕적이다. 특히 이주노동자 친구인 알과 버바가 함께 만드는, 초능력자에 대항하는 작전은 웃음의 엑기스다. 폴더 휴대전화의 카메라를 이용해 초능력자로부터 눈을 보호한다. 가스총에 부탄가스를 달아 반응 속도가 아주 느린 무기를 만든다. 빨간색 다마스는 이 진지한 청년들을 싣고 서울 시내를 질주한다.
철저한 불행이 된 ‘지음’하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플롯은 아이러니하다. 초인은 살인을 벌이면서 규남에게 여러 번 이야기한다. “네가 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 살리려면 네가 그냥 죽으면 된다. 왜 살려고 애를 쓰냐.” 살인은 살인의 흔적(살인을 본 사람)을 없애기 위해 계속된다. 초능력은 알아봐주는 사람에 의해서 초능력이 된다. 지음(知音)? 초인은 마지막 결투에서 이런 말을 한다. “누가 나를 알아봐줄까.” 이 ‘알아봐주기’는 누군가 한 명은 없애야 끝나는 철저한 불행이다. 규남은 사람을 조종하는 초인을 없애기 위해, 초인은 자신의 초능력이 안 듣는 자를 없애기 위해 싸운다. 목숨을 건 싸움의 결과 떨어져내리는 건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이다. ‘아주 보통의 존재’가 빌딩에서 떨어져 내리고, 하수도 뚜껑을 열고 구멍으로 연이어 빠져들어간다.
조용히 살고 싶었던 초능력자를 폭주시킨 ‘전투력 0’(에서 전투력 두 배의 적을 이기기 위해, ‘전투력 0’의 부르마가 적과 싸우는 에피소드가 있다)의 인간.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폭력에 관한 물음을 영원한 되돌이표로 만들고 만다. 11월10일 개봉.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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