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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들의 반란 같은 통쾌함이 성과”

<슈퍼스타K 2> 김용범 책임PD에게 물은 ‘시청률 14%’의 책임…

“시청자 빼앗겨도 좋다. 우린 우리의 색깔로 한다”
등록 2010-10-13 11:48 수정 2020-05-03 04:26
<슈퍼스타K 2> 김용범 책임PD.한겨레 정용일

<슈퍼스타K 2> 김용범 책임PD.한겨레 정용일

케이블 방송가에선 이런 말을 한다. ‘도달 가능 시청률 15%.’ 통상의 케이블 시청자가 100여 개 채널을 배회하다 한 채널로 (말도 안 되게) 몰렸을 때 가능한 수치다. 당초 지상파 시청률 85%는 침탈이 불가능한 고정변수로 두고 산출한 수치다. 셈법이든 타당성이든 논란이 없었다. 15%는 당초 ‘유토피아’(어원: 없는 곳)처럼 존재할 수 없는, 아니 존재하지 않는 수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슈퍼스타 K2〉(엠넷미디어)가 최근 본방송 시청률 14% 안팎을 기록한다.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올돌한 건 두 가지다. 안으론 국내 최초로 ‘시청률 15%’의 논리에 의문을 제기한 것. 밖으론 대중의 열렬한 호응은 장사꾼 케이블에 공익성을 대가로 요구한다는 것. ‘변방 사람들’로선 대저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김용범(35) 책임PD를 만났다. ‘도전’이 ‘꿈’보다 클 때 나타날 기현상들과 새 의문들이 〈슈퍼스타 K〉의 몸통이었다.

이런 성과를 기대했나.

= 절대 아니다. 지난해 ‘시즌 1’을 할 때, 오디션 프로가 국내에서 성공한 전례가 없었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공익적 취지도 있어 되레 시청률 압박도 크게 없었다. 다만 투자 비용(20억원)을 따지다 보니 목표치가 2%가량 됐는데, 오디션 중 누가 심장마비로 쓰러지거나 총 맞지 않으면 그 시청률이 나오겠나 했다. 그런데 8% 남짓 나왔다. 올해 ‘시즌 2’를 기획하면서, 딱 지난해만큼만 나오면 좋겠다고 했다.

지금 시청률을 두고 내부에선 뭐라고 하나.

= 상금이나 규모가 커지면서 투자 비용(40억~60억원)만 놓고 보면 시청률을 10% 정도 달성해야 한다더라. 아예 하지 말란 얘기구나 하면서 시작했다. 지금? 어깨만 두들겨주고 간다. “어어~ 그래.” 그게 다다. 하하.

화면에선 말 그대로 루저들의 절박한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 사실 일반인이 나와 노래하는 것만큼 지루한 일도 없다. 당초의 기획 방향이 가족 중심의 오디션 프로였다. 점수가 발표될 때도, 응원을 받을 때도 가족을 비춘다. 17살 참가자의 공연을 보면서 내 딸·아들을 생각할 수 있게 감정이입이 됐으면 한다. 이들이 꿈을 얘기하고 무대에서 커가는 걸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노래만이 아닌, 노래를 할 수밖에 없는 이면, 그것은 가족, 아픈 사연, 추억, 심지어 여자친구가 될 수도 있는데 이런 배경을 함께 엮고자 했다.

문제는 참가자들의 절박함과 절망이 노골화되고 상업적으로 과용된다는 논란이다.

= 그런 지적들에 늘 조심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래와 관련 없는 사생활은 파지 않는다. 촬영 현장에선 제작진의 의도가 미처 개입할 수 없을 만큼 카메라가 많이 돌고 있다. 참가자 김그림씨의 (자기중심적) 행동이 논란이 되며 악의적 편집이란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경선 중에 실제 나타나고 노래와 관련한 리얼리티라면 내보낸다는 게 우리의 방향이다. 되레 그걸 감춰도 균형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가정사도 마찬가지 방향인데, 지나쳤다면 우리의 미숙함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참가자가 각오했더라도 막상 브라운관의 제 모습을 보면 충격이 따를 것 같다. 악플 등에 취약하고 회복이 어려운 일반인이다.

=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다. 참가자한테 방송에 대한 동의를 받긴 하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실제 많은 이들이 즐겁게 참석했다 오디션에 떨어지고선 방송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본방송 뒤 당사자 요청에 따라 재방송편에선 개인사 대목을 추려내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미디어 쪽 문제도 있다. 요즘 인터넷 매체에선 와 관련한 기사 아이템을 5개씩 찾아오라고 한다더라. 클릭 수가 좋으니까. 그래서 참가자 사생활을 파내고 개인 홈페이지를 뒤진다. 오늘(10월6일) 존박의 마약설도 그렇다. 가짜로 유포되는 소식조차 물음표를 달아 기사화한다.

궁극은 미디어의 생리로 가닿는가. 〈슈퍼스타 K〉는 참가자의 수많은 행동 가운데 일부를 선택, 편집해 전한다. 처세의 배경, 과정, 그로 인한 저주가 쏟아지더라도 참가 당사자가 감당하는 구조다. 카메라는 대개 한발 물러서 있다. 그런 제작진 또한 또 다른 ‘카메라’의 무책임에 노출돼 있다. 김 PD는 “지역 예선에서 여러 사연을 지닌 인물이 참가했다. 그런데 연예 기사는 연예인 가족이나 동성애자만 부각시킨다. 또 ‘막장 케이블’ 논란이 재생산된다”고 말했다. “우리의 별명이 ‘개넷’”이라고 김 PD는 웃으며 말했다.

지난해엔 ‘시즌 2’를 할 경우 맡지 않겠다고 했다.

= 그렇다. 결과가 좋아 잠깐 취했나 보다. 지난주 박보람과 앤드루 넬슨이 톱8(9월24일)에서 탈락했을 때다. 제작실에 9개의 카메라 그림이 떴다. 다 울고 있는 거였다. 내가 참 몹쓸 짓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또 다른 절망을 보며 가슴 아프고, 나쁜 기사로 상처받는 걸 보고….

그렇게 달성한 기록인데 지상파 등 기성 언론은 덜 주목한다. 서운하지 않나.

= 〈슈퍼스타 K〉 출신자들이 견제를 받는다는 느낌도 갖는다. 어느 지상파 채널은 순위가 좋게 나오는데도 출연 한 번 못했다. 편파와 기회 박탈은 다르다. 지상파에서도 이제 오디션 프로그램을 하겠다고 한다. 꿈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확인했으니 환영한다. 다만,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면 쉽게 또 폐지할 것 아닌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잊혀진 이들은 또 〈슈퍼스타 K〉를 찾겠지만 책임지는 마음으로 시작했으면 좋겠다.

하이라이트만 남아 기록은 더 깨지겠지만, 지금까지의 성과에 대한 소회가 궁금하다.

= 약자들의 반란 같은 통쾌함이 있다. 케이블은 늘 (뭘 하든) ‘케이블의 한계’라고 수식되고, 자극적이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프로는 어른들도 회자하는 프로가 된 거다. 본래 오디션 프로그램은 오리지널리티가 따로 없다. 다른 채널에 콘셉트나 시청자를 빼앗겨도 좋다. 우리도 우리의 색깔로 한다. 우린 전문 음악채널이니, 가요계에 좋은 자원이 많이 생겨나고 그렇게 풍성해지면 좋겠다.

지난해 8%라는 경이로운 시청 상황에서도, 상위 경쟁자들의 사생활이 파헤쳐치거나 악플로 피해가 잇따르는 등의 폐단은 거의 없었다. 시청률 14%가 케이블 채널에 공익성과 책임을 묻는다고 보는 이유다.

제작진은 “(젊은 세대에) 이혼가정이나 왕따 문제가 이렇게 흔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목소리’는 그들이 유일하게 가져, 마지막으로 기댄 전부인 셈이다. 지난해 시즌 1의 우승자 서인국씨의 꿈도 보컬 트레이너였다. 23살인데도 연로하다는 이유로 모든 연예기획사에서 퇴짜맞았다. 김 PD는 “더 이상 시청률 욕심은 없다”며 “많은 이들의 축하 속에서 우승자가 나오고, 실력 있는 도전자들이 가요계에 잘 자리잡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익과 책임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2002년 입사한 김 PD는 지난해 성과로 올해 팀장 승진을 했다. 올해는 ‘부장 승진’이 농담으로 오간다. 〈슈퍼스타 K〉의 ‘K’는 그의 이니셜인가. 아니다. 어렵게 속살까지 들추며 꿈을 노래하고, 좌절하고, 울고, 웃는 도전자와 그들을 격려하는 시청자의 표의일 것이다. 이제 3명의 도전자가 남아 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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