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면부터 리드미컬한 편집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 휴대전화로 사건을 맡을 ‘해결사’를 천거한다. 최고의 경찰이었고, 특히 ‘드라마’가 있다? ‘강태식 범죄연구소’라는 간판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해결사’가 출동한다. 불륜 현장을 급습해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함정에 빠졌음을 직감한다. 수년 전 아내를 죽인 연쇄살인범에게 유리한 진술을 했던 정신과의사가 죽어 있고, 모니터엔 살인스너프필름이 나오는 게 아닌가? 복잡한 듯 시작하지만, 이 영화는 스릴러가 아니다. 비밀은 곧 공개되고, 그 자리에 타격감 좋은 액션 장면이 들어선다. 몇 개의 호쾌한 액션 장면을 넘으면, 누군가 태식을 이용해 연쇄살인범 변호를 맡았던 이를 죽이려 하는데, 그는 사업가로 변신해 3년 전 ‘대한은행(외환은행?) 헐값 매각’에 관한 진실을 폭로하려는 중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원한도 증오도 복수도 없이영화는 설경구와 송새벽의 바로 전작 와 의 설정을 눙치며 뒤집는다. 아내의 죽음과 관련된 자들에게 원한을 품고 복수할 것이라는 통념은 속임수로 활용된다. 그것은 그저 사람들이 좋아하는 ‘드라마’일 뿐 진실이 아니다. 복수심이라는 순수 정념은 ‘드라마’의 형태로 누군가에게 구매되고 대중에게 소비될 뿐, 현실을 움직이는 동력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자본’이다.
영화 속 ‘자본’은 여러 모습을 띤다. 은행 헐값 매각으로 외국자본은 수조원의 이익을 챙겼고, 여당 의원들은 현금 상자를 받았다. 대선을 1년 앞둔 현재, ‘양심선언’을 하려는 사업가의 배후엔 민족지사 몰골로 단식투쟁 중인 야당 의원이 있다. 이들은 대립하는 듯 보이나 같은 층위에 있다. 진실 규명보다 대선에 관심 있던 야당 의원은 여당 의원과 거래한 이후 사업가와 결별한다. 한편 여당 의원의 의뢰로 태식을 이용해 사업가를 죽이려는 자는 사업가를 지키는 임무를 맡은 경찰이다. 더구나 태식 딸에게 ‘삼촌’ 소리를 듣는 그가 태식 부녀를 죽이려 한다. 그가 공적 임무와 사적 친분 모두를 배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태식과 원한이 없으며, 사이코패스도 아니다. “이게 내 일이야.” 그는 ‘자본’에 고용된 자로서 자신을 인식하며, 돈 없이 ‘찌질’해진 선배 경찰의 모습에서 자기 정당성을 찾는다. 여야 정치인, 사업가, 경찰, 어느 누구도 공익이나 정의를 사고하지 않으며, 증오나 친분 같은 사적 감정도 무시된다. 오직 ‘사적 이익’만이 중요하다.
태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복수보다 먹고사는 게 급하다. 파일은 태식에 의해 공개되지만, 공익 때문은 아니다. 의 강철중은 “나도 안다. 이유 없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며 ‘공공의 적’ 처단의 의미를 숙고하지만, 태식은 파일 공개의 의의를 숙고하지 않는다. 그는 파일을 보지도 않은 채, 자신을 죽도록 골탕 먹인 파일에 정치인이 나온다니 살포를 명할 뿐이다. 영화 내내 그를 움직이는 건 생존 본능이며, 후배와 벌이는 마지막 대련도 배신감 때문이지 정의감 때문은 아니다.
죽음 앞에 애도 없는 카메라영화는 정치권과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사익 추구를 동력으로 굴러가는 ‘자본’의 수레바퀴와 그에 깔리지 않으려는 태식의 사투를 속도감 있게 그린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죽음에는 무심하다. 정신과의사 살해는 떡밥이었고, 사업가 대신 태식에게 끌려와 총 맞은 이는 무고하다. 현란한 차량 추격 장면에서 뒤집힌 자동차 속 사람들도 사연이 있을 테지만, 카메라는 이들에게 잠시의 애도도 표하지 않는다. 여야 의원 양쪽을 물 먹이고 살아남은 사업가가 2년 뒤 태식에게 전화하는 에필로그는 무엇을 말하는가? “살아남아라, 운 없이 뒈지는 놈은 할 수 없고!” 공공성이 사라진 시대, 질주하는 ‘자본’에 깔리는 개인들을 할 수 없다고 내팽개친 채, 각자의 생존 본능만으로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메아리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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