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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한 장기하와 브로콜리 라이브

‘떼창’을 선사하는 히트곡과 함께 새 음반 신곡을 지산 록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밴드들
등록 2010-08-11 22:38 수정 2020-05-03 04:26
지산 록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브로콜리 너마저’(왼쪽)와 ‘장기하와 얼굴들’.

지산 록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브로콜리 너마저’(왼쪽)와 ‘장기하와 얼굴들’.

“오늘은 장기하와 얼굴들에게 설날 같은 날이다.” 깜짝 놀랐다.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사), 때는 한낮의 온도가 그대로 36.5도로 타오르고 있는 오후 5시40분(7월31일). 지산 록 페스티벌 둘쨋날의 빅탑(메인 스테이지)에 등장한 장기하는 이 공연이 2010년 들어 첫 공연이라는, 깜짝 놀랄 만한 말을 했다. 오래 쉰 밴드의 공연은 두 가지. 푹 쉬어 쉰내가 나거나, 오랜 기간 열심히 삭아서 향기롭거나. 그러니까 썩거나 발효되거나. 장기하와 얼굴들의 공연은 후자였다. 장기하는 지산 공연을 위해 금주를 선언했는데, 이날까지 54일로 목표 달성이었다. 살은 쑥 빠지고 체력은 붙어서 공연 내내 뛰어다닌 것으로 ‘금주 효과’를 증명했다. 한 블로거는 ‘최고의 금주 캠페인’이라고 공연을 평가했다. “놀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곡을 좀 만들었습니다.” 지산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이 공개한 곡은 〈TV를 봤네〉 두 곡이다.

 

장기하 노래의 익숙한 새 얼굴들

〈TV를 봤네〉는 잔잔하게 코러스를 대동하며 따박따박 가사를 들려주는 서정적인 곡이다. 처럼 가사를 읊는 동안에는 연주를 잠재우고 목소리만이 곡 전체를 메운다. “드라마든 쇼프로든 코미디든 뭐든 간에 참 잘해, 일단 하는 동안에는 만사 걱정이 없는데.” 눈이 시뻘게지도록 TV를 봤는데, 참 잘하고 만사 걱정도 없지만 TV를 “그냥 봤”을 뿐. 는 와 두 히트곡 사이에 은근슬쩍 끼워넣었다. ‘말’과 ‘말’의 재밌는 가사 안배가 돋보이는 이 곡은 장기하의 사자후가 빛을 발하지만, 은근슬쩍 끼워넣은 것처럼 별 큰 인상 없이 스리슬쩍 넘어가게 된다. 어쨌든 〈TV를 봤네〉만으로도 2009년 2월 1집 앨범 이후 또 한 번 즐거운 앨범의 탄생을 기대하게 하는 ‘스포일링’이었다.

관객의 재미는 ‘신곡’보다는 ‘알현’, 즉 ‘익숙한 곡 생으로 듣기’에 있다. 그래서 공연을 즐기기 위해, 필요할 때는 ‘떼창’(함께 따라 부르기)을 하기 위해 관객도 꽤나 준비한다. 이러니 밴드가 새로운 곡을 선보이는 것은 무모하거나 용맹하다. ‘브로콜리 너마저’는 용맹했다. 지산에서 새로운 곡을 다수 포함해 60분 공연을 채웠다(7월30일 저녁 8시20분 공연). 가장 최근인 지난해 10월 발표한 EP 에 실린 신곡 은 빠지고, EP (2009년 4월)을 통해 공개된 와 클럽 공연 등에서만 연주됐던 등이 선택됐다.

새로운 노래들의 주요한 정조는 ‘안타까움’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청춘의 절망에 몰두하거나( ), 말하고 싶어도 전달되지 않는 상황을 노래한다( ).

귀에 쏙 박히는 멜로디는 여전하다. 의 후렴구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돼”는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귀에 어른거리고, 의 “울지 마”라고 속삭이면서 외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1집은 세상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비유들의 재미, 차를 마시는 상황에 연인의 이별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거나(), 이별 뒤에 이어지는 미련을 발랄하게 소탕해버리거나(), 주고 싶은 게 고작 ‘보편적’인 것()이라고 하는 깜찍한 재미를 보여줬지만, 이번에는 그런 게 별로 없다. 가 담았던 위악적인 ‘평범함’은 여기로 와서 ‘선의의 보편성’으로 화한 듯한 느낌이다.

 

안타까운 청춘의 브로콜리 너마저

‘여란(女亂) 밴드’(키보드 잔디, 일렉기타 향기, 드럼 류지, 그리고 지금은 탈퇴한 기타의 계피 등 여자 멤버들 사이에 베이스 덕원만 남자)의 중심에서 작사·작곡을 하면서도 ‘카리스마’는 아슬아슬해 보였던 윤덕원이 이번에는 작정하고 원톱으로 끌고 간다. 무심하게 넘어가곤 하던 하이라이트를 새로운 곡들에서는 끝까지 밀어붙인다. 어쨌든 브로콜리 너마저의 2집 앨범 역시 개봉박두, 두근두근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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