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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돼먹은 성호씨의 지붕 뚫고 하이킥

공짜 상영, 불펌 권장… ‘까칠한’ 윤성호 감독의 인디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등록 2010-06-16 21:25 수정 2020-05-03 04:26
낯선 유머로 네티즌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낯선 유머로 네티즌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불펌(자료 등을 올린 이의 허락 없이 다른 곳에 업로드하는 것) 권장!”

인디영화시트콤 (이하 )는 인터넷에서 누구나 무료로 퍼가서 볼 수 있는 영화다. 영화 으로 주목받은 윤성호 감독의 최신작이자 첫 시트콤이다.

는 5분짜리 총 12편의 에피소드로 만들어졌다. 매주 월요일 한 편씩 업로드되는데, 현재 3편 ‘두근두근 홍어드립’까지 공개됐다. 매니저 재민(황제성)의 일과 사랑을 그린 새로운 형식의 영화 시트콤을 본 관객의 반응은 뜨겁다. 재민이 돌보는 배우 혁권이 오디션 현장에서 풀어놓는 황당한 젖꼭지 이야기 ‘두근두근 오디션’(1편), 재민의 누나 재주가 남편인 목사 한철과 결혼 전 성인 사이트 스팸메일을 두고 겪는 ‘두근두근 김하나’(2편), 홍어를 좋아하는 카페 알바생 희본이 손님 몰래 홍어를 먹으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인 ‘두근두근 홍어드립’(3편)은 각종 블로그나 카페 게시판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윤 감독은 “특정 사이트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조회 수를 세는 게 무의미하지만, 애초 바람대로 1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본 것 같다”고 했다.

‘소셜 네트워킹 인디시트콤’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는 관객과 영화의 유기적 소통이 가능한지를 확인하는 새로운 실험이다. 5분이란 짧은 시간에 부담 없이 영화를 즐긴 관객이 트위터나 미투데이 따위로 “재밌다”는 감상평을 남기면 감독은 즉각 “고맙다”며 댓글을 단다. 영화에 대한 궁금증 문답이나 배우들과의 대화도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이용해 자유롭게 이어진다.

인디가 시트콤을 만들어? 공짜로 보여줘!

애초 기획은 거창하지 않았다. 평소 , 미국 드라마 등을 즐겨보던 윤 감독이 시트콤을 한번 만들어볼까 생각하며 주변에 생각을 흘리고 다닌 게 단초가 됐다. 시트콤 제안서를 본 독립영화제작사 인디스토리가 시트콤 제작을 결정하면서 배우와 스태프를 모아 불과 나흘 만에 영화 촬영을 끝냈다.

“소소한 이야기를 시추에이션 코미디로 만들어보고 싶은데, 방송사 PD도 아니고 보여줄 수 있는 창구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온라인에서 틀어보자 하고 시작했죠. 1천여만원의 적은 예산이지만 배우들 거마비나 스태프 일당을 줄 수 있으면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고요. 홍보비가 부족해도 트위터나 블로그로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해 모양새를 갖추다 보니 ‘소셜 네트워킹 인디시트콤’이란 거창한 이름이 만들어진 거죠.”

25분 방영하는 TV 시트콤도 짧은데 매회 5분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보여줄 수 있을까. “인터넷 동영상물의 러닝타임이 7분을 넘으면 안 볼 것 같았어요. 기승전결이 확실하진 않아도 유머 코드를 하나씩 넣어 에피소드를 만들면 통일된 내용을 보여주는 게 어렵진 않더라고요.”

윤 감독은 좋아하는 시트콤을 오마주처럼 에 녹였다. 장소와 시간을 자막으로 쓰는 방식은 에서, 등장인물들이 카메라를 흘낏거리거나 극중 사건에 대해 인터뷰하는 것은 미드 에서 따왔다. 자신의 블로그 프로필에 “엄마는 은하해방, 아빠는 오피스, 존경하는 삼촌은 김병욱, 친애하는 이모는 영애씨, 좋아하는 사촌은 럭키루이, 친구는 우익청년, 고마운 건 인디밴드, 이상형은 구하라”라며 좋아하는 드라마 작품과 인물을 써놓은 윤 감독은 “이제는 공공재처럼 된 연출 방식을 좋아하는 작품에서 그대로 따와 연출해봤다”고 말했다.

윤성호식 혼성모방을 통한 종합 창조
윤성호 감독.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윤성호 감독.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인디시트콤 의 외형은 낯설지만 윤 감독 특유의 유머는 여전하다. 단편 , 장편 등 모든 작품에서 시사와 풍자를 담았던 그는 이번에도 재치 있는 대사와 유머를 선보인다. 예를 들면, 어른들이 이상한 논리로 딴소리하는 어법을 통해 조소를 드러내는 식이다. “재민의 부모님이 재민에게 ‘네가 이혼해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하면서 이상한 얘기를 해요. 이게 다 과천 집값이 오를 줄 모르고 인덕원으로 이사간 내 죄다. 지난 좌파 정권 10년 동안 안기부가 축소되면서 덩달아 안기부 지하 매점을 하던 네 아버지의 정보력도 떨어져 우리가 인덕원으로 이사간 거고. 그래서 어쨌든 네가 이혼을 하게 된 거다, 식의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거든요. 이번엔 은연중에 조소를 보여주죠.”

만드는 방식은 독립영화 제작 방식 그대로, 영화를 배급하는 방식은 ‘저작권 프리’인 실험적 성격의 시트콤이라도 수익은 고려해야 할 터. 윤 감독은 “인지도와 호감이 늘면 IPTV 방송물로 론칭하는 등 파생물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면서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재밌으면 스크린, TV, 아이폰 등 새 매체에 맞게 2차 가공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능성을 실험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감독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과 작품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일 텐데, 전파력이 강한 인터넷으로 실험을 해본 소감은 어떨까. 윤 감독은 “(소셜 네트워킹 미디어 환경이) 대세라고 하지만 내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는 새 경로가 하나 더 생겼을 뿐 그 가능성을 과소평가도, 과대평가도 할 수 없다”면서 “고추장이 맛있어야 이를 기본으로 쓰는 음식이 맛이 나듯 이야기가 재밌다면 어떤 플랫폼으로 보여줄 것인가는 그다음 문제”라고 대답했다. 그는 “시트콤에서 왜 대가족이 나오고 카페가 자주 등장하는지를 알게 된 것도 이번 실험으로 얻은 소득”이라고 덧붙였다.

아직까지 를 보지 못했다면 공식 홈페이지(indiesitcom.com)로 접속해보시길. 의 자매품인 짧은 영상물 ‘노 봇 노 섹스’도 놓치면 후회한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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