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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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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자위나 하라”고 말하는 세상

장애인의 성을 깊이 있게 다룬 영화 <미투> <섹스 볼란티어>
등록 2010-04-23 16:36 수정 2020-05-03 04:26
수많은 영화에서 지적장애인은 무성적 존재나 성범죄를 일으키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미투〉의 다운증후군 장애인은 ‘서로의 체온을 나눌 권리’에 대해 말한다.

수많은 영화에서 지적장애인은 무성적 존재나 성범죄를 일으키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미투〉의 다운증후군 장애인은 ‘서로의 체온을 나눌 권리’에 대해 말한다.

오늘날 성은 억압되어 있는가? 아니다. 오히려 부추겨지고 있다. 조 단위의 매출을 자랑하는 육체산업과 연예산업은 ‘성을 즐기라’는 복음을 전파한다. 그러나 성의 즐거움은 고사하고, 성적 존재라는 사실조차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들이다. 오랫동안 성적 권리는 이성애자 성인남성의 전유물이었지만, 이후 여성·동성애자·노인·청소년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의 성은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은 화두다. 마침 장애인의 섹슈얼리티를 깊이 있게 다룬 영화 와 가 잇달아 개봉한다.

<font color="#00847C">무성적 존재? 충동적 성범죄자?</font>

의 다니엘은 34살의 다운증후군 남성이다. 보통 다운증후군은 경도의 지적 장애를 보여,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의 학습단계를 마칠 수 있다. 지속적 훈련을 통해 직업 적응이 가능한 정도지만, 다니엘은 어머니의 특별한 교육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복지사로 취업까지 했다. 기능적 차원에서 보았을 때, 그는 장애가 없다. 그러나 다운증후군의 외모를 가진 그는 여전히 장애인으로 취급받는다. ‘야동’을 보고 여인의 가슴에 곁눈질하는 성인 남성이지만, 가족과 사회로부터 어린아이와 같은 ‘무성적 존재’로 취급받는다.

수많은 영화에서 지적 장애인은 무성적 존재로 인식되거나, 성욕을 통제하지 못해 성범죄를 일으키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의 초원이 얼룩말 무늬 치마의 여자 엉덩이를 만졌을 때, 불쾌해하는 여자에게 “우리 아이에겐 장애가 있어요”라는 대사가 외쳐진다. 그에겐 성적 의도가 없었으며, 그를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로 이해하고 ‘관용’할 것이 촉구된다. 에서 기봉은 사진관 아가씨를 사랑하지만, 성적 욕구와 행동은 생략된다. 에서 여주인공의 지적 장애가 드러나는 순간, 연애 감정은 보살핌으로 변질된다. 지적 장애인의 성욕은 가급적 상상에서 배제하는 것이 ‘정치적 올바름’인 양 간주되는 것이다. 반면 의 다운증후군 소년은 길 가는 여자 앞에서 바지를 내린 뒤 강제로 끌려가고, 와 의 지적 장애인은 성욕으로 소녀를 살해한다. 이로써 지적 장애인의 성범죄 가해자 비율은 일반인과 차이가 없음에도, 지적 장애인의 위험성이 부각된다.

그러나 는 장애인을 무성적 존재로 그리거나 충동적 성범죄자로 보지 않는다. ‘그들도 우리처럼’ 성관계를 포함한 연애 욕구가 있고, 이를 누릴 권리가 있는 주체로 그린다. 마음의 상처로 ‘원나이트 스탠드’를 즐기는 여성 라우라도 처음엔 다니엘을 아이처럼 취급하지만, 차츰 그를 편견 없이 대한다.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또 그가 납득할 수 있는 작별을 고한다. 에서 다니엘의 장애는 지적이거나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성적이고 심미적인 것이다. 이러한 성적 소외는 꼭 장애인에 국한된 것도 아니며, 영화 속 대머리 남성 역시 비슷한 소외를 겪는다. 에는 경도의 지적 장애를 보이는 보통의 다운증후군 커플도 등장한다. 교습소에서 공공연한 애정 행각으로 선생의 주의를 받고, 장애 여성의 어머니는 딸을 데려간다. 급기야 둘은 도망치는데, 이들을 찾아낸 다니엘은 둘만의 사랑을 나눌 시간을 주며, 콘돔 사용법을 가르친다. 영화는 장애인의 연애 권리와 더불어 적절한 성교육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한편 25살이나 된 딸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심경도 이해할 수 있는데, 이는 실제로 지적 장애 여성이 성적 학대를 당할 위험이 일반 여성보다 1.5~4배나 높기 때문이다.

“연애는 어려우니, 자위나 하라”는 형의 말에 영화는 다니엘의 입을 빌려 말한다. 그렇게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싶은 것이라고. 맞다. 성은 단순한 욕구 해소가 아니라 친밀감을 나누는 사회적 행위이며, 이는 장애와 무관한 성의 본질이다.

<font color="#C21A8D">‘섹스 자원봉사’ 어떻게 볼 것인가</font>

는 자위조차 불가능한 중증 장애인의 성을 다룬다. 영화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며, 대단히 논쟁적인 사건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성매매 혐의로 적발된 현장에서 여대생과 중증 뇌병변 장애인과 신부가 연행된다. 이들은 성매매가 아니라 자원봉사였다고 진술한다. 과연 섹스가 자원봉사에 포함될 수 있는가 하는 난제를 놓고, 영화는 여러 층위의 입장을 한 겹씩 탐문한다. 우선 애정과 분리된 성행위가 교환되는 건 성매매와 같은 논리이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 숙고된다. 경제성의 원리에 입각한 성매매가 시간·노력 대비 채산성이 떨어지는 중증 장애인을 거부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장애인의 성욕을 풀어주는 서비스가 성매매와 다른 논리에 기반함을 방증해 보인다. 또한 자원봉사 이전에 장애인의 이성교제가 권장돼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사기 결혼과 장애 여성의 아버지로부터의 문전박대 체험이 제시된다. 주인공과 전자우편을 교류하던 척수장애 여성은 월경 관리를 위해 부모의 결정으로 자궁 적출 수술을 받았고, 남성과의 대면을 봉쇄당한다. 사실 장애 여성의 성적 소외는 장애 남성보다 훨씬 심각하다. 장애 여성의 신체적 손상은 심미적 훼손과 직결되며,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장애 여성은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고 간주되기 때문에 여성성을 부정당한다.

(2005)가 장애 남성의 성구매 권리를 주창한 것과 달리, 는 검토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입장을 성실히 다루면서, 섣부른 결론을 유도하지 않는다. 영화는 선언문이 아니라 발제문에 해당되며, 판단은 관객 각자의 몫이다. 다만 분명한 건 섹스자원봉사의 찬반을 묻고 답하기 전에, 그보다 나은 해법을 찾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실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가 문전박대를 당하지 않고, 그녀를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성적 충만함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성기 중심의 성담론에서 벗어나 관계성을 중심으로 성을 사고할 때,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의 성이 비로소 제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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