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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 속 혼돈기’ 미국의 자화상

1950년대 냉전 시대 배경으로 한 ‘사회적인 사이코드라마’,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셔터 아일랜드>
등록 2010-03-19 15:32 수정 2020-05-03 04:26

영화 시작과 동시에 울리는 장중한 음악을 타고 침침한 바다 위 배멀미를 하는 연방수사관(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이 등장한다. 영화는 흡입하듯 주인공을 중범죄 정신병자들의 병원으로 들여놓는다. 1954년을 배경으로 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는 1940~5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살린 수사극으로 출발한다. 주인공이 섬에 온 이유는 자녀 셋을 죽인 여성 수감자 레이첼의 실종 때문이다. 그러나 수사를 할수록 미스터리한 기운이 감돌고, 폭풍우로 섬에 갇힌 주인공이 심한 두통에 시달리면서 죽은 아내의 환영과 2차 세계대전 참전 당시 목격한 홀로코스트의 악몽이 자꾸만 떠오른다.

<셔터 아일랜드>는 한 남자의 악몽 같은 경험을 담은 영화다. 테디 다니엘스(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존 코리 박사(벤 킹슬리)를 만나는 모습.

<셔터 아일랜드>는 한 남자의 악몽 같은 경험을 담은 영화다. 테디 다니엘스(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존 코리 박사(벤 킹슬리)를 만나는 모습.

영화는 두 번의 분기점을 지닌다. 첫 번째는 주인공이 아내를 죽게 한 레이더스를 찾아 이곳에 왔다는 말과 함께 점점 구체화되는 정신병원을 둘러싼 음모다. 극심한 중범죄자만 수감된다는 C병동에서 만난 살인자 조지는 의미심장한 말을 들려주지만, 주인공은 아내의 환영 때문에 귀기울이지 못한다. 주인공은 절벽을 기어올라 마침내 레이첼을 만나고, 냉전의 공포와 정신의학에 대한 불신이 담뿍 담긴 음모(론)를 듣고 탈출을 시도한다. 지금껏 스릴러의 외관을 띠던 영화는 주인공이 내면과 마주해 끔찍한 진실을 알아가는 두 번째 분기점을 맞으면서 사이코드라마로 변모한다. 여기서 주인공이 축조한 환상의 내러티브가 현실의 사건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살펴보면 놀라게 된다. 더 나아가 두 번째 분기점에서 드러난 개인적 망상이 첫 번째 분기점의 사회적 음모론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확인하면 더욱 놀라게 된다.

개인적 망상과 사회적 음모론의 결합

1954년 미국은 어떤 사회였나? 2차 세계대전 승전과 냉전체제 구축으로 국제정치의 패권을 거머쥐었고, 브레턴우즈 체제하의 기축통화 발권력과 마셜플랜하의 해외 원조로 세계경제를 장악한 시기였다. 비약적인 과학기술 발전과 생산력 증대에 힘입어 사상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던 ‘황금기’였지만, 정신적으로는 ‘혼돈기’였다. 남자들은 2차 대전의 외상이 치유되기도 전에 매카시 광풍과 한국전쟁에 내몰린 뒤였으며, 여성들은 전후에 일어난 ‘베이비붐’으로 교외에 마련된 ‘스위트 홈’에서 모성애를 요청받았지만, 전쟁 때 사회 참여를 체험한 이들은 아이들과 가전제품에 둘러싸여 숨막혀했다.

원폭 투하로 종식한 전쟁이 냉전으로 탈바꿈하자 수소폭탄에 의한 인류 절멸이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왔다. 스파이에 대한 공포와 정보기관의 감시에 대한 공포가 이중으로 작용했다.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미군 포로에게 행한 ‘유화(세뇌) 전략’은 (정보기관이 활용하려던) 투시나 최면 같은 초능력 연구와, 당시 막 태동한 신경약리학과 더불어 정신의학 전반에 걸친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기밀항공군사훈련은 로스웰 사건 이후 미확인비행물체(UFO) 웨이브로 이어졌고, 급속히 보급된 TV는 사람들의 환상에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불어넣었다.

물질적 풍요속 정신적 빈곤… 대한민국은?

1950년대 남자들의 망상증과 여자들의 조울증은 당시 영화는 물론이고 등 근작에도 잘 묘사돼 있다. 의 주인공 부부가 겪은 사건과 주인공의 환상이 구축한 음모론은 이러한 맥락에서 개인과 사회가 맞물려 있다. 수수께끼처럼 진실을 속삭이던 조지의 말처럼, “수소폭탄은 안으로 터진다”. 물질적 풍요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며 온갖 사회적 공포에 찌든 2010년 대한민국의 수소폭탄은 어떠한가?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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